등록 : 2018.05.14 18:40
수정 : 2018.05.14 19:39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8년 9월 22일 한겨레신문 1면 ‘한겨레 논단’
조영래 논설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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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논설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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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 개회식이 있던 날, 아침부터 텔리비전 앞에 못 박힌 듯 앉아 있던 나의 가슴속에는 실로 억만 가지 감회가 엇갈려 지나갔다.
가을 하늘은 드높았고, 현대 감각을 살린 기하학적 구조의 웅장한 외곽건물로 둘러싸인 올림픽 스타디움 안에서는 온 세계의 시선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려하고 다채로운 개회식 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텔리비전에서는 '민족의 영광'을 말하는 아나운서의 감격에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다. 외압과 침략, 분단과 폭압, 가난과 천대로 점철되었던 저 쓰라린 오욕의 역사를 딛고, 오늘 마침내 이 일을 보게 되다니. 어쩌면 이것은 하나의 꿈인 듯도 싶고 기적인 듯도 싶다.
천성이 매사에 굼뜨고 게으른 탓이라 개회식에 참석해야겠다든지 표를 구해봐야겠다든지 하는 생각을 이날껏 한 번도 못해 본 나다. 그러나 강 위로 실어 나른 큰 북이 대회장으로 입장하는 순간에는, 불현듯 대회장으로 달려가서 그 북소리를 직접 귀로 들어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12년 만에 동·서양 진영의 대다수 국가들이 참여하는 '화해'의 올림픽을 주관하게 된 우리 국민의 긍지에 어울리게, 동·서 각국의 선수단이 입장할 때에 대체로 고른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온 것도 옛날을 생각해 보면 우리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 이것은 분명 하나의 축제이며, 우리의 5천 년사에 기록될 하나의 엄청난 민족적 행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축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가슴 한구석에 무언가 풀리지 않는 응어리처럼 쓸쓸하고 쓰린 회한이 남아 있는 것은 웬 까닭인가?
지난 7년간 그토록 막대한 투자를 해가며 국력을 총동원하다시피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 온 이 엄청난 잔치가 막상 벌어지고 있는 이 마당에, 정작 주인인 우리들로 하여금 거리거리를 메운 축제의 감격으로 들끓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이 허전함의 정체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먼저, 북녘의 형제자매들이 초대되지 못한 때문이다.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 이 올림픽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진행되었어야 옳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되었건, 온 세계의 손님들이 초대된 이 축제에 정작 우리와 핏줄을 나눈 북녘의 동포들만이 유독 배제되는 그런 낯부끄러운 일은 결코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만약 어떤 형태로든 북한이 참가하기만 하였더라면 이 올림픽이 우리 통곡의 민족사의 아픔을 치유하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여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분하고 한스럽다.
남·북의 관계 당국이 이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은 민족사 앞에 엄정히 가려져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 이 잔치에서 밀려난 것은 북녘의 동포들만이 아니다. 이 잔치 때문에 일터나 살림터에서 쫓겨난 철거민들과 노점상들. 잔치에 혹 방해가 될까봐 더욱더 풀려나지 못하고 있는 양심수들, '평화구역' 속에 갇혀 삶의 고통을 호소하는 목소리조차 봉쇄당한 모든 소외된 사람들의 고뇌가 우리의 지척에 있기에, 우리는 축제의 감격에 열광하지를 못한다. 뿐더러, 아직도 버마의 일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민주화의 기반이 취약하다는 사실, '5공 비리'와 광주의 상처가 아직껏 아물지 않고, 잔치가 파한 뒤의 불안이 여전히 말끔히 가시지 않은 이 우울한 현실이 우리의 거리를 무겁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회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향한 거대한 희망과 확신이 서서히 우리의 가슴속에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느낀다.
잔치가 파한 뒤에 우리는 어떻게 되는걸까 하는 걱정은 더 이상 하지 말자. 무엇을 할 것인가만 생각하자. 국가적 지원이 가장 미미했던 민족문화행사가 전 세계의 이목을 압도한 사실, 개인적으로는 안 된 일이겠지만 전두환 씨가 끝내 개회식에 참석할 수 없었던 사실이 상징하듯이, 이것은 그들의 잔치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잔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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