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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7월 10일 한겨레신문 3면 '전망대'
정운영 논설위원·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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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논설위원·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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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월요일'은 반전 신호
'장마 걷히고 하늘이 갬', 금년 하반기의 국제경기에 대한 전망은 대체로 이렇게 요약된다. 비는 확실히 걷히지만 쾌청의 약속까지는 다소 주저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1974년에 시작된 불황의 긴 굴을 완전히 벗어난 세계의 자본주의경제는 대략 작년 하반기부터 확장국면에 접어들었다. 혁명에는 으레 최후의 반동(테르미도르)이 따르듯이, 지난해 10월 미국 투기자들의 증권 뭉치를 휴지 다발로 바꾸어버린 소위 '검은 월요일'의 공포는 바로 이 경기의 반전에 따르는 마지막 진통으로 보아야 한다. 여하튼 소심한 경제전문가들이 당초에 진단했던 다소 우울한 전망과는 달리, 올해 하반기의 국제경기는 상반기에서와 마찬가지로 여러 경제지표에서 착실한 전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우선 24개의 선진공업국가로 구성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체 전망에 따르면, 금년도 이 기구 회원 국가들의 국민총생산 증가율은 대체로 3%에 도달해 '안정지향적 성장'의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이 수준을 크게 상회한 일본은 내수확대를 요구하는 미국의 협박과 애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장지향적 성장'의 자세를 고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으로 국제경기의 견인 수단이 소비진작에서 투자증대로 교대되고 있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체의 체면을 몰수하고 막무가내로 버티고 있는 달러의 평가절하로 미국 기업의 경쟁력이 회복되면서, 그 수익성의 개선과 함께 투자 기회가 넓게 열리고 있다. 유럽공동체 국가들도 대량 해고를 동반했던 소위 산업의 '구조조정'의 결과로 생산설비와 고용에서 상당한 확장의 여유를 확보했기 때문에, 고정투자의 열기는 아주 치열할 조짐을 보인다. 올해의 투자증가율은 미국과 일본이 각각 9.5%와 10.2%, 그리고 인플레이션에 남다른 공포를 느끼는 서독을 예외로 한다면 유럽공동체 국가들에서는 대략 8%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자극에 힘입어 세계의 교역량도 당초의 기대를 넘어 7%가량 증대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고용과 물가에서는 이미 경기과열의 초기증상이 비치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가들의 평균 실업률은 7.9%로서 아직도 높은 편이지만, 미국은 이미 그 위험수위 밖에 있으며 일본은 경제학 교과서가 정의하는 완전고용 수준에 돌입한 상태이다. 이 회원 국가들의 물가상승률도 벌써 3.5%를 넘어서 인플레이션의 우려마저 낳고 있다. 작년에 물가의 '하락'을 기록했던 일본이 금년에는 꽤 큰 폭의 상승을 예고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의 잠재적 위험이 가장 큰 미국의 경우 내년도 물가상승률은 드디어 4%대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고용·투자·교역 호조
하반기의 국제경기는 이렇게 생산, 고용, 투자, 교역의 측면에서는 호조의 진행이 예상되지만 그것이 호황으로, 말하자면 쾌청으로까지 진입하겠느냐는 가능성 여부를 타진하기 위해서는 다음 몇 가지 사항에 대한 이해와 검토가 필요하다.
첫째로 국제경기의 향방이 아직도 압도적으로 미국 경제의 성장과 쇠퇴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눈사태처럼 불어난 미국의 재정적자가 해외자본의 막대한 유입으로 메워지는 한, 국제경기의 활성화는 크게 기대할 수 없다. 안팎의 따가운 눈총과 압력으로 한때 2천억 달러가 넘었던 재정적자 중에서 5백억 달러를 덜어낼 수 있었던 작년의 '놀라운' 실적을 바탕으로, 미국은 지난 6월 토론토 경제정상회의에서 앞으로 4년 동안 매해 4백억 달러 규모의 지속적 삭감을 '선언'했지만 경제전문가들은 올해부터도 이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믿지 않는다. 기껏해야 1백50억 달러의 절약에 그칠 것이라는 유럽공동체 쪽의 전망이 사실로 나타난다면, 세계경제는 미국 정부의 소비와 낭비를 돕기 위해 성장을 멈추어야 한다는 지금까지의 역설을 되풀이하게 된다.
다만 미국 행정부가 '빈말로나마' 고수해온 감세의 주장을 누그러뜨리고 세수증대에 동의한 사실은 긴박한 재정수지에 다소 위안이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하반기 국제경기의 애로는 수요의 변동보다는 오히려 공급 요인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로 달러가치의 지속적인 하락이 몰고 올 부정적인 효과에 주목해야 한다. 달러의 안정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한 <루브르협정>에 따라 지금까지 각국의 중앙은행은 거의 '의무적으로' 화폐시장에 개입해왔다. 그러나 경기가 과열의 기미를 보이는 현재의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달러 매입은 국내 유동성의 증대와 함께 인플레이션의 위협을 유발한다. 다시 말해서 불황기에 각국이 미국에 협조했던 공존의 논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고 또 통용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무역마찰 더 심해질수도
지난 4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3년 반 이래 최소 주준을 기록했다. 그러나 여기서 미국의 무역적자가 감소되면서 교역 상대국들의 반발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새로운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상품의 공세가 무역수지 흑자로 고민하는 일본이나 독일로 향하지 않고, 대미경쟁력이 약한 주로 제3세계로 파급될 경우 경기쇠퇴를 동반한 세계의 외채위기가 다시 폭발할 여지가 충분하다.
셋째로 평가절하를 무기로 무역수지의 악화를 개선하려는 미국의 고집이 계속되는 한, 물가의 상승과 이자율의 인상이 불러올 새로운 불황의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작년도 선진공업국가들의 물가상승률은 지난 20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는데, 이는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실질임금의 완만한 증가가 상쇄했기 때문이다. 비용인상에 의한 인플레이션 요인이 임금부문으로 전가되어버린 아주 '교활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처럼 물가상승의 압력과 임금인상의 요구가 동시에 발생해서 그 효과가 증폭될 경우, 세계경제는 다시 한번 그 지긋지긋했던 스태그플레이션의 주술에 묶이게 된다. 더구나 곡물수입국의 입장에서는 이번 여름 가뭄의 결과로 이미 그 발생의 징조를 보이고 있는 곡물가격 파동에 대비해야 한다.
넷째로 물가를 제어하기 위해 각국이 경쟁적으로 펴고 있는 고금리 추세의 확산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해 10월 금리에 손을 대려다가 증권시장만 결딴내고 혼이 났던 미국에서조차 인플레이션 심화의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우대대출금리(프라임 레이트)와 재할인율의 인상을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다. 지난 5월 이미 우대금리를 0.5% 인상한 바 있으며, 더구나 오는 11월에 대통령선거라는 '악재'까지 끼어있어서 금년 하반기가 금리조정의 적기가 아니라는 반론이 있지만, 물가만은 잡아야 한다는 연방준비이사회의 결심이 아주 단호해서 그 인상은 불가피할 것 같다.
소나기 구름 몰고 올 것인가
자본유출을 막으려는 미국의 압력으로 작년 11월 이래 두 차례에 걸쳐 0.55%의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었던 서독의 연방은행은 지난 6월 말 0.25%의 재할인율 인상을 단행했고, 이어 일본도 어음 금리의 상승으로 그 뒤를 따랐다. 이미 일차적으로 금리조정을 끝낸 프랑스와 영국의 중앙은행도 인플레이션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머지않은 시일 안에 그 재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이렇게 다시 고금리 시대가 도래할 때, 그것이 일시적으로 과열된 경기를 냉각시키는 효과를 넘어, 외채에 허덕이는 제3세계 국가들에 치명적인 타격으로 발전되지 않도록 하는 대안과 장치의 준비가 시급하다.
쾌청의 하늘을 가리는 미국의 재정적자, 무역마찰, 물가, 금리 등의 소나기구름만 적당히 피할 수 있다면, 하반기의 국제경기는 비교적 순조로운 항진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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