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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15 14:42 수정 : 2018.05.15 19:20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8년 8월 13일 한겨레신문 2면 '전망대'

정운영 논설위원·경제평론가

정운영 논설위원·경제평론가
"어린이 여러분, 보통의 반대말이 무엇이지요"라고 선생님이 묻자, "예, 선생님, 곱빼기요"하는 대답이 즉시 튀어나왔다. 그는 짜장면집의 아들이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이 젖어있는 습관이나 스스로 처해 있는 상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여러 가지 '행사'가 각별히 많은 5월이 되면 흔히 '위기설'이 한바탕 나돌고, 거리에서 학생들과 노동자들의 함성이 조금만 높아져도 으레 '중대 조치설'이 한 바퀴 휘저어야 직성이 풀리던(?) 우리의 정치관습도 따지고 보면 이 '보통과 곱빼기'의 웃음거리와 다를 바 없다.

'보통'의 반대는'곱빼기'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 거기에도 어김없이 이 조건반사의 원리가 적용된다. 예컨대 "올림픽 이후에는 '쎄게' 나올걸"(불안!), "올림픽 끝난 다음에는 다 끝나는 거 아냐"(초조!), 혹은 "올림픽이 지나도 가만 놓아둘까"(의문!)라는 등속의 물음과 대꾸가 요즈음 신문 이라도 읽는 사람들의 소일거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정치권 일각에서 띄우고 있는 정치 휴전의 제의 역시, 예컨대 끝까지 밀어부칠 수도 있지만 외국에서 손님들도 오고 했으니 한번 '봐준다'는 것인지, 아니면 앞뒤와 위아래를 다 재고 난 다음에 한 발짝 비켜서려는 것인지 그 허허실실의 내막을 속속들이 분간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나, 다만 올림픽 이후에 대한 걱정에는 집권세력의 의중과 태도가 과연 무엇이냐는 의문과 관련된 사항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다.

물가는 기다리지 않는다

더구나 경제까지 거기에 덩달아 '올림픽 이후'의 타령에 한몫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사정은 무엇인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정치와 구별되는 여러 가지 특징 가운데 하나로, 경제행위에서는 시간이 스스로 그 행위의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추가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정치문제는 올림픽 이후로 미루자면 미루어질 수가 있고, 또 경우에 따라서 없던 것으로 하자면 없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에는 그와 같이 편리하고 편안한 대응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물가가 오르거나, 외국사람들이 돌아갈 때까지 중단했다가 투기가 다시 시작되는 따위의 일은 생각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물가가, 투기가 혹은 다른 무엇이 위험신호를 발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에 그것에 대비해야지 결코 올림픽 이후의 걱정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

사태가 복잡하게 얽힐 때는 오히려 상식에서 출발해서 단순하게 풀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올림픽은 무엇보다도 운동경기이며, 만일 조금 더 범위를 넓힌다면 문화행사가 된다. 물론 거기에 국제정치의 역학이 작용하고 경제적 이해가 개입하지만, 올림픽은 우선 체육행사로 치러져야 한다. 피에르 드 쿠베르탱의 선언을 들어보아도, 국제올림픽위원회의 헌장을 읽어보아도 이것은 전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올림픽을 앞에 놓고 야박하게 원가계산을 해가며 그 손익을 따지거나, 혹은 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를 셈하기 위해 거창하게 컴퓨터를 두드려대는 행위는 모두 인류의 평화와 친선을 도모한다는 올림픽 정신을 크게 욕되게 하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않다고 우기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한번 말해두거니와, 올림픽은 돈을 쓰고 우정을 나누는 행사이지, 우정을 담보로 돈을 버는 행사가 아니다. 제발 이 상식에서 벗어나지 말기로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서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을 무사히 마치고 나서 일약 선진국으로 부상했다는 등의, 그야말로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자꾸 하려거든,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른 멕시코는 어찌하여 지금 저 모양인지에 대해서도 할 말을 찾아내야 한다. 따라서 올림픽이 끝나면 우리나라의 경제가 갑자기 선진 대열에 올라선다든지, 아니면 적어도 올림픽 특수경기에 의해 고사 떡이 시루째 굴러오는 횡재를 만난다든지 하는 따위의 씨알머리 없는 미련은 아예 버리는 것이 좋다.

위험한 '올림픽 최면 현상'

지금은 오히려 올림픽이 몰고 오는 가공할 초과수요 현상과 그 부조리에 대해 시급하고 심각하게 대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올림픽과 관련한 투자 규모는 당초 2조4천억 원이었으며,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의 예산만도 8천8백억 원에 이른다. 그런데 올림픽 투자액은 국내 총투자액의 1.6%에 지나지 않으며 더구나 그 투자지출이 7년에 나누어 집행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초래할 '과열'의 위험은 일단 무시해도 좋다는 식의 주장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투기는 실제의 투자규모에 환각적인 심리상태를 더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가계도, 기업도, 정부도 바로 이 올림픽 최면에 걸려 더 없이 즐거워하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 때문에 멀쩡한 아파트가 페인트 칠갑을 하고, 올림픽 때문에 모두가 잠든 집에도 밤새 불을 밝혀야 하고, 올림픽 때문에 미제 쇠고기를 수입해야 하고, 올림픽 아파트에 프리미엄이 1억 원이 붙고, 올림픽 입장권 구입에 1천3백억 원의 돈이 몰리고, 아아 올림픽, 올림픽 때문에……. 이 모두가 사실은 대부분 정부가 앞장서거나 부추긴 결과였다. 이 모든 초과수요들이, 이 모든 과잉지출들이, 그리고 제 자리를 못 잡고 거리를 헤매는 이 모든 돈들이 물가와 투기로 둔갑해서 우리에게 보복할 것은 한 치도 어긋나지 않을 냉엄한 사실이다. 다시 강조하자면 그것들은 모두 지금 당장의 문제이며, 바로 그래서 올림픽 이후의 문제라는 것이 따로 있을 리 없다.

'내림픽' 같은 것은 없다

경기예측은 일기예보와는 달라서 아무리 비가 내린다고 예보를 해도 아니 올 비가 오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경기가 나빠진다고 입을 모아 떠들게 되면 때로는 좋아질 경기가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쓸데없이 '올림픽 이후'를 걱정하다가 먼저 경제적 경기를 악화시키고, 마침내 '정치적 경기'마저 엉뚱한 방향으로(?) 유혹하는 비극은 막아야 한다.

"올림픽 이후, 정말 괜찮을까요?"

"괜찮습니다. 절대로 괜찮아요."

"그래도 왠지 자꾸 불안이…."

"올림픽이 끝나면 다음 올림픽이 또 있으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올림픽 다음에 '내림픽' 같은 것은 없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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