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5 15:24
수정 : 2018.05.15 19:19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8년 11월 1일 한겨레신문 2면 '전망대'
정운영 논설위원·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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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논설위원·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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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그(민권)당 각료의 절반은 당나귀들입니다." 토리(보수)당의 벤자민 디스렐리 당수는 윌리암 글래드스톤 내각을 이렇게 몰아붙였다. 하기야 당나귀보다 못한 사람들이 숱한 세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근엄과 허례가 존재의 규범이 되다시피 한 19세기 후반의 영국 의회에서 이러한 언사는 도저히 묵과될 수 없는 야만이었다. 그래서 다시 발언대에 선 디스렐리는 "이전의 언행을 사과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각료의 절반은 당나귀가 아니었읍니다"라고 의젓하게 한마디 하고는 하단해 버렸다. 의원들이 폭소를 터뜨렸는지 잉크병을 날렸는지는 그 후의 기록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했다. 좌우간에 어떤 이들은 한 가지 사실을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는 일종의 익살과 기지의 본보기로서 이 삽화를 기억하겠지만, 그러나 나에게는 이렇게 하거나 저렇게 하거나 간에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이 얘기의 더 중요한 측면이라고 생각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의 구자경 회장은 지난 26일 출입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아무 당의) 12명의 의원은 자유 시장경제 체제를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산주의자와 다를 바 없다"는 그야말로 듣기만 해도 오싹오싹한 메가톤급의 핵폭탄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당에는 정치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빅토리아 왕조 시대의 당나귀는 그저 '못난 녀석' 정도의 의미로 끝났지만,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 치하에서의 공산주의자나 혹은 공산주의자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은 그 신세가 당나귀보다도 훨씬 더 고달프다는 사실을 구 회장인들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실언, 와전, 왜곡 따위의 그 흔한 '도피성' 꼬리표 한 장 붙이지 않는 그의 정직한(?) 자세에서, 우리는 이번의 주장이 아주 확고부동한 소신이었고 또한 다분히 계산된 발언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여하튼 회장은 하고 싶던 말을 다 해서 만족할 것이고, 다수의 회원들은 차마 내 입으로 하지 못했던 말을 회장이 대신해 주어서 통쾌할 것이다. 오오, 회장님, 우리 회장님!
법전 뒤져 가며 따지자면 한량 없겠으나 그 줄거리는 대충 두 가지로 정리된다. 그 하나는 구 회장이 지적한 '열두 탕자들'의 소행이 과연 어떠했는지 전부 헤아릴 길은 없으나, 다만 우리가 본 대로라면 요컨대 시장경제에 대한 모든 비판은 공산주의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위협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 돈 내 맘대로 쓰는데 자꾸 시비하지 말라는 경고였다고 할 수 있다. 앞의 사항은 추상열일의 사직당국이 가릴 일이어서 용훼할 계제가 아니나, 뒤의 항목에 대해서는 그의 생각이 크게 잘못되었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하겠다.
우선 '내 돈'이란 조목부터 살펴보자. 굳이 '재산은 절도다'라든가 '재산은 착취다'라는 으스스한 이론을 꺼내지 않더라도, 굳이 재벌기업들이 그 본원적 축적과정에서 저지른 '원죄'를 일일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과연 그것이 나만의 돈인가? 1960년대 군사정권의 비호와 결탁 아래 출현한 독점재벌들의 성장과정을 잠시만 훑어보아도, 그저 신문을 거꾸로 드는 무지만 면한 사람이라면 그 대답이 무척 궁색해질 것이다. 공공요금, 금융, 세제 등의 가지가지 특혜로 한때 수출 대전의 25%를 국내의 보조금이 차지하고 있었다. 실로 1달러어치의 수출에 75센트만 외국의 수입상이 내고 나머지 25센트는 국민들이 보태주었다는 말이 된다. 수출증대의 신화에는 그런 희생이 따랐고, 바로 그것이 축재의 바탕이 되었다. 10조 원의 자본을 가진 30대 재벌그룹은 52조 원의 부채를 안은 채 은행 여신의 3분의 1을 몰이해다 쓰고 있으며, 이른바 78개의 부실기업 정리에 한해 정부 예산의 반이 넘는 10조 원의 특혜가 베풀어졌다. 그래서 부실해진 은행은 한국은행이 특융으로 지원했고, 그래서 부실해진 한국은행은 마침내 국민의 부담으로 남게 된다. 그래도 나만의 돈이라고 우길 터인가?
내 돈이란 조건에 결격 사유가 있다면 '내 맘대로'라는 결론도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몇푼의 임금인상 요구에 구사대를 끌어들이면서도 전직 대통령 내외가 관련되었던 세 개의 재단에 무려 1천억 원을 갖다 바친 그 '내 돈 내 맘대로'의 자유에 대해서 더이상 트집부리지 말라면 앞으로 간섭하지 않겠다. 그러나 전경련이 특정 정당만을 골라서 지원하겠다는, 그래서 내 돈이니 내 맘대로 정치를 주무르겠다는 실로 험악한 발상과 거기에 내재한 참으로 위험한 자유만은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과거의 1당 내지는 1.5당의 독재체제 아래 형성되었던 정치자금과 이권 사이의 편안한 동반자 관계에 익숙해 있는 전경련으로서는, 상황이 조금은 달라진 지금 그 새로운 관계가 다소 불편하고 그 처신이 다소 거북하리라는 사정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짜증이 나고, 그래서 멀쩡한 사람이 공산주의자로 보인다면, 요컨대 전경련의 태도는 한 사람이 사실상 종신으로 집권하면서 돈과 권력을 마음대로 요리하던 그 신나고 편리한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이해할 도리가 없다. 전경련이 그토록 역설하는 자유란 결국 독재에의 복귀라는 역설을 여기서 만나게 된다.
세무사찰, 품행사찰, '충성사찰' 등등을 통한 온갖 압력으로 야당의 정치자금 조달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여건에서 선별 지원의 선언은 요컨대 정치를 하고 싶으면 내 말을 들으라는 폭언이며, 동시에 그들을 의원으로 선출한 유권자의 민주적인 의사를 정면으로 짓밟아버리는 폭거에 해당한다. 더구나 그것이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간헐적으로 들리던 이른바 '우익 총궐기' 의 한 조짐이 아닌가 싶어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여하튼 내 돈 내 맘대로의 '자유'에 도사리고 있는 반민주적인 망령이 제거되지 않는 한, 혹시 "(아무 당의) 나머지 59명의 의원은 공산주의자와 다른 데가 있읍니다"라고 고쳐 말하더라도 그것이 결코 위로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제 불공정 거래뿐만이 아니라 '불공정 언사'도 규제 품목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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