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5 16:20
수정 : 2018.05.15 19:17
[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9년 1월 6일 한겨레신문 2면 '전망대'
정운영 논설위원·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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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논설위원·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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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좀 점잖은 글을 쓰고 싶었다. 아니 점잖은 글을 통해서 사람마저 좀 점잖아지기를 바랐는데, 이 간절한 결심이 새해 벽두부터 깨지게 된 것은 참으로 엉뚱하게도 방자한 언사로 이 땅에 재앙을 예고하고 떠난 어느 '대사의 소리' 때문이었다. 오늘날까지 그 오명이 전해지는 트로이의 카산드라는 흉사를 '예언'하는 일만 했을 뿐이지만, 이임 선물로 남긴 미국대사의 발언은 무고한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재난을 '선동'할 수도 있기에 한층 더 불길하고 악의적으로 느껴진다.
우선 대사란 무엇인가? 서양의 한 익살대로 그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외국에 파견된 정직한 사람”이다. 외교라는 직업이 그 그럴듯한 간판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다른 나라들을 상대로 하는 도박판에 출전하는 것이라면―외교관과 마술사가 꼭 같이 '실크 해트'를 쓰는 습관은 전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확신한다(!)―정말만 하는 정직한 사람을 그리 보내 보아야 적성검사 과정에서 선천성 부적격 판정을 받기가 십상이라는 점에서 '대사의 거짓말'에 다소의 정상은 참작되어야 하리라.
다음으로 주한 미국대사는 어떠한가? 1883년 주조선 미국공사관이 1949년 주한국 미국대사관으로 승격된 이래, 이 나라의 온갖 크고 작은 영욕 중에 그와 무관한 것이 없을 만큼 그 자리는 무소부지하고 무소불위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한마디로 작은 일을 처리할 때는 '외교관'이었지만 큰일을 결정할 때는 흔히 '총독'이 되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바로 그 총독이 정상참작이 허용되는 기준 이상의 '거짓말'로 우리에게 불안한 새해를 맞게 한 데서 새로운 분노와 고통이 시작되고 있다.
대사와 총재의 음산한 대화
마지막으로 제13대 주한 미국대사 제임스 릴리는 누구인가? 중국에서 출생하여 중앙정보국(CIA)의 요원으로 다년간 아시아지역에 근무하면서 그는 요인 암살이나 정부 전복 등으로 크게 '소란했던 현장'들을 두루 거쳤다. 특히 중앙정보국의 그 '추악한 음모', 이른바 DDT(Dep't of Dirty Tricks) 공작이 맹위를 펼쳤던 라오스 캄보디아 필리핀 등지에서의 그의 '전력'이 5공 말기 한국의 상황에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듯하여, 1986년 11월 그의 부임이 비상하게 정가의 촉각을 곤두세운 적이 있었다. 여하튼 부시 행정부의 고위직에 내정되었다는 소문이 있고, 그리고 비록 의전관례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수교훈장 광화장까지 받아 갔으니 한국에서 그의 임무수행은 합격점을 훨씬 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 릴리 대사가 지난 12월 30일 공화당의 김종필 총재와의 요담 중에 “내년 봄 한국에서 좌우충돌이 예상되는데 좌익은 결집력이 강해 그들 나름대로의 공동전선을 펴게 될 것이다”라고 '진단'한 뒤에, 이에 맞서 “보수세력들의 단결된 대응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그 '처방'까지 내려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의전절차(프로토콜)에 따라 미국대사관 대변인에 의한 '사실무근'의 성명이 곧 나왔지만, 바른대로 말해서 릴리 대사가 그런 장사 처음 해보는 풋내기가 아니겠고 김 총재 또한 대소변 가린지가 어제오늘이 아닌 다음에야, 아니 한쪽은 미국 중앙정보국의 민완 요원이었고 다른 한쪽은 한국의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그 우두머리를 지낸 인물인데, 아 글쎄 그게 어떤 얘기라고 있지도 않은 일을 함부로 꾸며내고 감추어야 할 말을 멋대로 퍼뜨린단 말인가? 그래서 더욱더 으스스한 것이다.
우선 릴리 대사가 지목하는 '좌익'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대사 자신이 잘 알겠지만 한국에서 좌익이란 감옥에만 존재하는―아니 감옥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혹독하고 처절한 개념이다. 그런데 그 삼엄한 대공 기관들과 가차 없는 국가보안법 그리고 포장마차 기둥에까지 붙어 있는 즐비한 '반공 방첩'의 감시망, 그 어디를 뚫고 공동전선을 펼 만큼 숱한 좌익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지 밝혀주길 바란다. 릴리 대사는 한때 1866년에 발생했던 셔먼호 격침사건까지 끌어들여 반미주의의 근원을 설명하려는 왕성한 의욕을 과시했는데, 혹시 이번에는 사회 일각에서 일고 있는 반미의 물결을 '대사만이 아는' 좌익의 소행으로 전가하려는 발상이 아닌지 모르겠다.
반미와 좌경 혼동 말아야
1백23년 전 대동강변에서 양이의 침노에 돌팔매를 날렸던 그 어진 백성들의 '반미'를 마침내 함대의 포격 시위로 무마한 데 만족하거나, 혹은 지금 '문화원'이란 아주 잘못된 이름을 달고 있는 미국공보처(USIS) 건물을 점령한 학생들의 '반미'를 좌익의 사주로 착각하거나 강변하는 한 한국에서의 반미라는 불행한 매듭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이다. 실로 반미와 좌경은 전혀 별개라는 인식에 선선히 동의할 때에만, 그래서 반미를 외치는 한국인을 좌익으로 도색하려는 험악하고 초조한―그래서 다시 한번 실패가 뻔한―시도를 자제할 때에만 문제의 핵심을 바로 파고드는 눈이 뜨이게 된다.
더구나 백 보 아니 백만 보를 양보하여 한국에 좌익세력이 존재한다고 한들, 어떻게 외국의 대사가 그에 대해 '단결된 대응'을 권유할 수 있단 말인가? 대사의 권고가 식민지 시대 총독의 지시보다 훨씬 더 막강한 권능을 발휘하고 있는 지금, 그러한 발언이 그대로 무시무시한 유혹이 되고 무지무지한 선동이 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아니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권고를 빙자해 그런 암시를 보냈을 터이다. 이왕 그렇게 된 바에야 그 단결과 대응의 구체적 내용까지 한목에 알려주었더라면 그의 의중을 더듬는 수고를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반공청년단의 환생인가, 중앙정보부의 부활인가, 아니면 긴급조치와 계엄령의 재연인가?
무례한 유혹과 선동의 의미
여기서 한가지 분명히 정리해야 할 일은 이 땅에서 좌익에 대한 수락과 거부의 판단은 오로지 한국인 자신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에 상황이 바뀌어 주미 한국대사가 미국의 어느 야당 대표를 만나 “흑인들이 참여한 민권운동의 발전으로 내년 봄 미국에서 흑백충돌이 예상되는데 '쿠 클럭스 클란'(KKK)을 무장시켜 이를 진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면, 과연 미국은 거기에 어떤 반응을 보였겠는가? 바로 이 점에서 릴리 대사의 발언은 크게 경솔했고, 크게 무례했고, 또 크게 교만했었다.
미국대사야 '성능이 확실한 스피커'를 골라잡고 평소 별러오던 얘기를 툭 털어놓은 후 훌쩍 떠나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그 상대는 한때 이 나라의 대통령을 꿈꾸던 사람이라면 나라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여보 대사, 그거야 우리의 내정문제 아니요? 생각해주는 거야 고맙지만 지나친 간섭은 삼가시오”라고 의젓하게 한마디 던졌던들…에이 고약한! 새해에는 나도 점잖은 글만 쓸 수 있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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