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5.15 16:36
수정 : 2018.05.15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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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 논설위원·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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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창간 30년-디지털 아카이브]
1989년 2월 17일 한겨레신문 5면 '전망대'
정운영 논설위원·경제평론가
아무 예고도 없이 순시에 나섰던 원님은 양지바른 곳에 마주 앉아 한참 고누판에 열중하고 있는 포졸 두 명을 적발했다. '직무태만 가중처벌' 조항에 의거하여 혼쭐을 낼 요량이었지만 우선 “그래 누가 이겼느냐”로 심문을 시작했다. 그중의 하나가 나서며 “첫판은 제가 이기지 못했고, 둘째 판은 상대가 이겼고, 세째판에서는 제가 비기려고 비기려고 했는데도 상대가 들어주지 않았읍니다”라고 유유하게 대답을 개어올렸다. 둘러대는 본새가 좀 능청스럽기는 해도 소싯적에 서당에서 논리학 강의를 들었는지 말의 앞뒤는 그럴듯하게 들어맞지 않는가? 처음에 안기려던 치도곤 대신에 정신이 번쩍드는 호령을 한바탕 내리고 원님이 슬며시 발길을 돌렸음은 물론이다. 만약에 그 대답이 “상대가 어찌나 잘 속이는지 질 수밖에 없었읍니다”라든가, 혹은 “상대가 하도 떼를 쓰는 바람에 져주고 말았읍니다”로 나갔던들 절대로 그 자리가 유쾌하지 못했을 터이고, 따라서 그 두 포졸은 볼기짝이 얼얼하도록 곤장 신세를 졌을 것이 틀림없다.
하루 4억 원의 이자를 내고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이란 문제를 놓고 정부와 기업이 줄다리기하는―혹은 하는 척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장면을 대하면서 문득 이와 같은 얘기를 떠올리게 되었다. 비록 기업의 경영이 부실하게 되어 정부에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에도 모두―원님과 포졸과 고을 백성―가 수긍할 수 있는 '논리'가 있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그 요청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고 지원을 결정하는 경우에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논리'가 필요하다. 만약 이 원칙의 문제에서 또다시 실패한다면 그토록 추악한 냄새를 마구 피워댔던 지난날의 이른바 '부실기업정리'의 속편을 한번 더 보게 될 것이 너무도 뻔하다.
대우조선은 6천 억원의 자본금과 1만2천여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국내 제4위 재벌의 계열기업이며 세계 굴지의 조선업체이다. 그러면서도 1조2천억 원의 부채를 안고 있으며 그 때문에 하루―한해, 아니 한 달이 아니고―에 4억원의 이자를 갚아야 하는 '부실경계' 기업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1초 동안에 불어나는 이자가 48만 원이란 말인데, 고혈압 증세가 있는 사람은 아예 이런 소식에는 접근하지 않는 편이 건강에 이롭다. 결국 1백원어치를 팔면 그중에 34원을 이자로 떼어내야 하는 형편이므로 경영은 자연히 부실로 치다를 수밖에 없게 된다.
자본주의는 한마디로 이 땅의 생존원리인데―이 나라의 가장 막강한 법률 국가보안법의 경제적 성분도 자본주의이다―바로 그 자본주의가 능력이 없는 기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대우조선에 달리거나 혹은 매달린 식구 20여만 명의 '밥줄'을 생각한다면 분명 그 방법은 지나치게 잔인한 대안이 된다. 물론 그러한 국민경제적인 명분만으로 대우조선이 닫고 싶은 문을 열어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산으로 물어야 할 8천억원의 벌칙금과 계열기업들이 서 준 1조원의 지급보증이란 구체적인 피해 때문에, 따라서 대우조선의 포기가 곧 대우그룹의 붕괴로 이어질는지 모른다는 절박한 위험 때문에 예의 그 '자본주의적 처방'을 거부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모처럼 '바른 소리'했다가
대우조선이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데에는 물론 상당한 근거가 있다. 1978년 당시의 옥포조선을 인수할 때에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의 출자 지분은 51:49였고 현재도 67:33의 분포를 보이고 있으니, 대우로서는 이 비율에 따라 모든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울 만하다. 그러나 정부는 경영부실의 결과까지 부담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고, 항간에서는 또 그 부실의 원인이 아주 석연치 않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원래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이 세상 인심이기는 하지만, 여하튼 지금 시정에는 인수 당시 4백억 원에 불과하던 빚이 불과 10년 만에 어떻게 30배 이상으로 불어날 수 있느냐는 둥, 계열기업간의 하청 단가가 너무 높아 선박의 t당 생산비가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잃었다는 둥, 이미 버릴 속셈으로 알맹이는 다 파먹고 껍데기만 남겼다는 둥 '허위사실성 유언비어'들이 많이 나돌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결코 대우조선이 출입문에 못질하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원치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 선후책은 모두가 용인할 수 있는 일관된 기준 위에서 강구되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려고 한다. 정부는 이제 지원의 원칙은 기정사실이고 지원의 규모만이 미결사항이라는 식으로 문제를 정리하고 있는데 여기서부터가 잘못이다. 지난해 11월 14일 당시의 부총리는 대우조선의 경영 정상화를 위한 지원은 최소한 국무회의의 의결이나 국회의 동의를 거치도록 하겠다고 모처럼 '바른소리'를 했었는데, 지금 거론되고 있는 방법들은 이 약속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 분명하다. 그때에도 세간에는 대우조선이 위치한 거제도 앞바다가 어느 야당총재의 고향이라느니, 또는 그 공장 근로자의 다수가 어느 야당세가 특히 강한 지역의 출신이라느니 하는 연고 관계가 들먹여지며, 바로 그런 사연 때문에 그 말썽 많던 정부 특혜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와도 야당의 전투력(?)이 현저하게 약화되리라는 '유언비어성 허위사실'이 난무했었다. 그러므로 시일이 다소 지연되드라도, 입법이나 국회의 동의 등 부실기업 지원에 대한 기본원칙을 먼저 확정하고 그에 따라 구체적인 절차를 논의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서 검토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정부가 제시한 1천5백억 원의 '의미'이다. 이 변변치 않은(?) 액수에 대우에서야 '조의금' 보내느냐고 펄펄 뛰겠지만 1백30만 생산농가의 가슴에 그 커다란 못을 박았던 '분노의 고추'의 수매대금이 고작(!) 1천1백억 원이었다는 사실도 같이 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지원자금의 효율성과 관련하여 산업연구원의 강철규박사는 1987년도 우리나라 제조업의 평균 부가가치 생산액을 1백원으로 잡을 때 조선부문에서는 그 액수가 87원에 불과하다는 계산을 해냈다. 다시 말해서 그 돈을 다른 부문에 투자할 때에는 적어도 13% 이상의 수입 증대가 예상되기 때문에, 대우조선에의 지원은 적어도 '경제적' 효과로만 따진다면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얻게 된다. 물론 조선 경기 호전의 전망과 더불어 이런 불리한 조건은 다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감격
실로 대우그룹은 스스로 결단하기에 따라서는, 즉 계열기업을 몇 개 처분함으로써 현재의 수모와 난관을 극복할 충분한 여력을 지니고 있다. 다만 그들이 매각 대상으로 지목한 업체들로써는 회생이 불가능하고, 반대로 회생을 위해 포기를 종용받는 업체는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가 얽히고설킨다. 결국 내 장도리는 벽장에 감추어놓고 이웃의 장도리를 빌려는 심산이라면, 우리는 여기서 지원 여부의 판정 기준으로 기업의 '도덕성'이란 또 하나의 변수를 추가해야만 할 것이다. 10억 달러의 정부지급보증이란 대천명(待天命)을 위해서 크라이슬러 자동차회사가 했던 진인사(盡人事)의 마지막 행위는 리 아이아코카 사장이 스스로 36만 달러짜리 자신의 연봉을 1달러로 깎은 것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리, 당신이 1달러를 벌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일하는데 나도 그렇게 좀 돕고 싶소”라면서 무료공연을 해주고 돌아갔다. “아아, 대우조선이 10원을 벌기 위해 저토록 열심히 노력하는데 뭐 좀 도울 일은 없을까”라며 우리로 하여금 자진하여 돕도록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늘은 물론 사람도 본래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돕는 법이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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