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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 소장·수원의 한 아파트 동대표 회장 2015년 9월 어느 날 내가 사는 마을(아파트)의 한 지인이 말을 걸어왔다. “‘사회정의’를 입에 달고 다니는 당신은 왜 ‘마을 정의’엔 관심이 없냐? 마을에서부터 정의가 실현되어야 나라의 정의도 비로소 가능한 게 아니냐? 그러니 같이 동대표로 활동하자!”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지만 왠지 부담스러워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런데 그는 나와 같은 사람이 아파트에 필요하다며, 활동에 많은 시간이 드는 것도 아니라면서 설득했다. 나의 맘을 흔든 건 무엇보다 자기가 살고 있는 마을에 무관심하다는 질책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나의 연구 주제인 ‘토지 정의’라는 국가 단위의 개혁도 결국 마을 단위의 건강한 변화가 누적되어야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결국 참여 쪽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동대표 선거에서 지인은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만 당선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그는 내친김에 회장 선거에도 출마하라고 했다. 한달에 한번 회의 주재하고 두번만 결재하면 된다고 하면서. ‘순진한’ 나는 그 말을 믿고 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그런데 덜컥 회장에도 당선된 것이 아닌가. 당시 회장이었던 상대 후보는 회장만 세번 했다고 알려진 ‘거물’이었고 나는 동대표 경험도 전혀 없는 신출내기였는데도 말이다. 솔직히 나는 관리사무소가 어디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마을 일에 무관심했던 사람이다. 아파트에 이런저런 갈등이 있다는 소릴 듣긴 했지만,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한마디로 아파트에 대해서 아는 게 전혀 없었다. 당선 후, ‘착하게’ 생긴, 나하고 같은 대학을 나온 15년 선배라며 자기를 소개하는 관리소장에게 회장 업무에 관해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그런대로 친절했다. 임원으로 함께 당선된 감사 2명과 선거에서 패한 ‘거물’ 회장도 만났는데, 소문처럼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10월20일 회장이 주재하는 첫번째 정기회의가 열렸다. 선출된 동대표 15명 중 11명이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바짝 긴장했지만 회의는 가볍게 끝났다. 3명의 이사를 선출할 때는 11명의 동대표들끼리 짜고 들어온 느낌이 있었지만, 크게 거슬리진 않았다. 회의 끝나고 기념사진을 찍고 기분 좋게 회식도 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지인의 말처럼 회장직을 수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11월20일 두번째 정기회의에서 감사가 희한한 문제를 들고나왔다. 동대표들의 동의 없이 왜 회의록을 공개했느냐, 아파트 공사 현장에 왜 회장이 와보지 않느냐면서 거칠게 나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나는 회의록 공개는 관리규약에 의무로 되어 있다, 공사 현장에 가보면 좋겠지만 직장이 있기 때문에 갈 수가 없다, 그리고 회장이 공사를 참관하는 것이 의무도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분위기는 더 험악해졌다. 나를 반대한다고 알려진 동대표 11명 거의 전부가 내가 잘못했다고 고함을 치고 삿대질을 해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것은 다가올 환난(?)의 전조에 불과했다. 아파트 동대표 회장은 나처럼(?) 선량한 보통사람의 무덤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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