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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 소장·수원의 한 아파트 동대표 회장 정기회의 때마다 다수의 동대표들에게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해야 했던 나의 목표는 회장직을 사임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것이었다. 임기가 종료되는 2017년 9월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그런데 1년 반 정도 되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봤던 아내는 그 힘든 걸 왜 또 하려느냐며 말렸지만, 나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회장을 다시 하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이렇게 끝내면 평생 한이 될 것 같았다. 2년 동안 내가 한 것은 고작 저들이 하려던 것 중 불법이 명백한 몇 가지를 못하게 막은 것뿐이었다. 나의 프로젝트라면 저들은 무조건 반대했다. 아파트라는 작은 단위를 변화시켜보는 경험, 말로만 듣던 ‘마을’ 민주주의를 경험하고 싶은 맘이 점점 커져갔다. 나를 괴롭혔던 동대표들이 중임 제한에 걸린 것도 중대한 이유였다. 한 사람이 10년 이상 회장 자리를 독식하면 아파트는 그의 왕국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주민들도 무관심하니, 다시 말해서 감시의 눈도 없으니 비리와 사고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당국은 아예 법으로 동대표를 두 번만 할 수 있도록 제한해 놓았는데, 그들이 거기에 걸린 것이다. 다시 회장에 나가기로 결심하고 함께할 동대표들을 물색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회장인 나에게 우호적이면서 상식적인 동대표들로 입주자대표회의가 구성되어야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2년 동안 나에게 응원 문자를 보내거나 회의 참관을 했던 입주민들, 혹은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던 분들을 접촉했다. 전화도 하고 꼭 필요한 사람은 찾아가서 간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선뜻 함께하겠다는 사람은 소수였다. 굳이 집에까지 와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이런 일에 참여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 못된 동대표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수 있다는 걱정도 상당했다. 이해가 되었지만, 이런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우리가 나라를 바꾸는 건 쉽지 않아요. 그 추운 날 몇 개월 동안 1500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나서야 겨우 대통령 한 명을 바꿀 수 있었잖아요. 직장의 변화, 이건 꿈꾸기도 어려워요. 그런데 여기 마을은 달라요. 우리의 생각이 바로 현실이 됩니다. 참여를 통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그리고 저를 괴롭혔던 그 악귀(?)들은 중임 제한에 걸려 더 이상 나올 수도 없어요. 함께 마을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나중에 동참한 동대표들에게 들어보니 “생각이 현실이 된다”라는 말이 맘을 움직였다고 한다. 또 어떤 동대표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2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한 내가 권하니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참여하게 되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입주자대표회의는 거의 내가 섭외한 사람들로 채워졌고, 나는 다시 회장에 당선되었다. 선거 과정에서 저들의 방해공작도 대단했다. 남기업 위주로 동대표가 꾸려지면 자신들이 개혁의 대상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저들의 만행(?)은 마을에 널리 퍼져서 효과는 별로였다. 우리 마을의 변화가 이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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