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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 소장·수원의 한 아파트 동대표 회장 새로운 변화는 과거의 불법을 바로잡는 개혁이 전제되어야 하고 개혁의 원칙은 두말할 것 없이 ‘신상필벌’이다. 그래야 마을 공동체에 해를 주는 일이 줄고 억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으며 공동체가 합의한 규칙을 지키는 문화가 뿌리내린다. 수난의 시기였던 첫 번째 회장 임기 2년 동안에는 나를 괴롭히는 동대표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개혁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저 모욕과 수치를 견디면서 명백한 불법을 막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개혁은 두 번째 회장이 되어서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내가 섭외한 상식적인 동대표들이 입주자대표회의의 다수를 차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에 단행한 조치는 마을 전체에 해를 끼친 전임 동대표들에게 ‘적극적으로’ 부역했던 관리사무소 직원들을 합법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도모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저항이 만만찮았고 시간도 걸렸지만, 결국 마무리되었다. 그다음으로 나는 그동안 불법적으로 지출한 관리비를 회수하는 일에 착수했다. 따져보니 드러난 것만 2500만원이 넘었다. 지금의 동대표들 다수는, 불법적 관리비 지출은 마을 주민들에게 명백한 손해를 입힌 것이기 때문에 응당 회수해야 하고 그래야 불법을 차단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현재까지 저들은 회수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결국 입주자대표회의의 결정을 이행하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론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제일 먼저 관리사무소 회의실을 주민 ‘소모임’ 공간으로 개방했다. 그동안 관리사무소는 소수 동대표들의 놀이터나 다름없었다. 수상한(?) 용도로 사용되던 ‘밀실’도 있었다. 하여 밀실은 폐쇄하고 관리사무소 회의실에 소모임용 테이블과 의자를 준비하고 마실 수 있는 차도 비치하여 주민 모임을 열 수 있도록 했다. ‘주민의견함’도 설치했다. 마을 관리와 운영에 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마을의 젊은 ‘엄마’들로 ‘놀이터개선위원회’를 구성했다. 놀이터 개선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동대표들도 아니고 관리사무소 직원들도 아니고 애들의 엄마다. 열정과 전문성에서 이들에 필적할 사람은 없다. 며칠 전 이 위원회가 그동안 준비한 개선 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구체적인 개선 사항과 비용 추산 등이 담긴 보고서는 마치 놀이터 전문 회사가 만든 자료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위원회 활동은 무보수다. 그런데 이들의 열정은 어디서 나온 걸까? 내가 살고 있는 마을 놀이터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일차적 원인이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간 안에 잠재되어 있는, 까닭이 자기에게서 나온다는 뜻의 ‘자유(自由)의지’가 작동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마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발적 참여를 통한 새로운 변화’의 장을 제공하여, 마을의 변화는 누군가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 가야 하고 또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경험’ 말이다. 우리 마을의 개혁과 ‘형성’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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