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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18 18:30 수정 : 2018.05.16 10:32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수원의 한 아파트 동대표 회장

아파트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국가의 운영원리와 아파트의 운영원리가 거의 같다는 점이다. 아파트는 나라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국가의 3요소가 영토, 주권, 국민이듯 아파트도 ‘단지’라고 하는 일정한 영토가 있고 주권을 가진 주민이 있다. 국민이 납부한 세금으로 나라를 운영하듯이 아파트도 주민들이 매달 납부하는 관리비로 운영한다.

권력구조도 대단히 흡사하다. 나라에 입법부와 행정부가 있듯이 아파트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관리사무소가 있다.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입법부와 입주자대표회의가, 행정부와 관리사무소가 서로 조응한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의결하면 관리사무소는 이를 집행하는 구조다.

구조가 같으니 비리의 양상과 본질도 똑같다. 4대강 비리, 자원외교 비리 등으로 나라 재정이 낭비되고 소수가 엄청난 부당이득을 취하듯이, 마을에서도 주민이 낸 관리비가 불필요한 공사 추진과 수상한 물품 구입 등으로 낭비되고 소수가 적잖은 부당이득을 챙긴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국가 단위의 적폐 청산에 전력하고 있다. 적폐 청산의 원동력은 누가 뭐래도 ‘촛불’이다. 촛불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과정, 즉 ‘국민’주권을 재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면 마을의 적폐 청산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국가 적폐가 청산되면 마을 적폐는 자동적으로 해소될까? 긍정적 영향은 미치겠지만 한계는 뚜렷하다. 마을 적폐에도 그 나름의 고유한 문법과 뿌리 깊은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마을 적폐도 ‘주민’이 주인이 되어야, 이른바 ‘주민’주권이 확립되어야 비로소 청산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한국 사회 문제의 본질을 ‘국민’주권과 ‘주민’주권의 부조화라고 할 수 있겠다. 국가 단위에서는 뭔가 긍정적 변화가 형성되는 것 같은데, 즉 국민이 주인이 되어 가는 것 같은데, 마을 단위로 내려오면 여전히 갑갑하고 주민은 주인이 아니라 누군가의 지배를 받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까닭에 (지방)정부가 ‘마을 만들기’라는 이름으로 적잖은 재정을 내려보내도 효과는 떨어지고 때로는 엉뚱한 사람만 이익을 보는 경우가 생긴다.

주인이 되는 과정은 만남과 참여의 과정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을 적폐 청산에 참여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희한하게도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사람일수록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이런 까닭에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탐욕스럽고 몰상식한 사람들의 놀이터로 전락했다. 그들은 주민들의 참여를 본능적으로 꺼린다. 참여를 통한 주민주권이 확립되면 자신들의 목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마을에 촛불이 필요한 때다. 누군가는 마을 적폐를 청산하면서,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의 장을 만들어 ‘참여를 통한 변화의 경험’을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가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나의 고통스러운 경험에 비춰 보건대 혼자 하지 말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도모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어떤 단체보다 ‘정의’, ‘이웃사랑’, ‘공동체’를 강조하는 종교가 이 일에 발 벗고 나서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이 바로 ‘주민’ 주권 확립을 통한 ‘마을’ 민주주의 실현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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