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지개집 입주자 벌써 2년 전이다. 한 번도 자기 집을 가져보지 못하고 전월세, 고시원 등을 전전했던 열다섯 명의 사람들과 유기묘 출신 고양이들이 망원동 한구석에 공동주택 무지개집을 마련했다. 다양한 가치를 내건 공동주택들이 있지만, 우리 집이 다른 점이 있다면 입주자들이 전부 성소수자라는 점이다. 성소수자들이 왜 모여 사는지에 대한 설명은 다음에 차근차근 풀겠다. 무지개집 입주자들의 평균 나이는 33.2살! 국내 최초주택마련 나이의 평균이 38.8살(2016년 국토교통부의 주거실태조사)임과 비교한다면 젊은 나이에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억세게 운 좋은 사람들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평균 월수입이 200만원도 안 되었던 우리 처지에 어떻게 이런 거사를 치러낼 수 있었을까? 처음엔 십시일반으로 각자 모아둔 돈, 전세금, 월세보증금을 터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모인 돈은 한 가구가 살 집을 짓기에도 부족한 금액이었다. 전전긍긍하던 차에 우연히 ‘개인의 주거 문제는 공동이 해결하자’는 가치를 추구하는 함께주택협동조합을 알게 되었고 우리는 집단으로 조합에 가입했다. 그리고, 조합의 도움으로 사회투자기금에서 융자를 얻어 부지를 마련하고 공사를 시행할 수 있었다. 빚을 갚으려면 수십년 걸리고 그때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아몰랑! 어떻게든 되겠지. 일년 가까이 진행된 공사가 끝나 마침내 입주한 날, 고생은 끝나고 무지개색 미래만 펼쳐질 줄 알았다. 하지만 집이란 무방비 상태의 아기와도 같았다. 부족한 데는 없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끊임없이 살피고 돌봐주어야 하는 애물단지였다. 배수로 시공 착오로 발생한 입주 직후의 1층 공동공간 홍수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장마철이 되자 유리 재질의 외벽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새는 구멍을 찾기 위해 의심 가는 틈마다 막고 때워봤지만, 물이 어떤 길로 들어오는지는 오리무중, 비가 좀 왔다 하는 날은 어김없이 실내에도 비가 왔다. 몇 달을 버티다 결국 조합에서 거금을 차입해서 외벽 공사를 재시행하고서야 물난리는 끝이 났다(고 믿는다). 길었던 여름이 물러간 후 더 이상의 보수 공사는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겨울도 우리 편은 아니었다. 혹한기가 계속되면서 눈에 띄는 관들은 모두 보온재로 싸매고 수시로 물을 흘렸음에도 보일러는 얼어붙었고 열풍기 등 각종 열기구를 총동원해서야 겨우 보일러를 녹일 수 있었다. 그나마 안도감은 잠깐. 이튿날에는 얼어붙은 기름덩이가 배수구를 막아서 엄동설한의 홍수를 한 번 더 겪기도 했다. 이런 힘든 과정들을 혼자서 겪었다면 진작 이사를 갔을 것이다. 그러나 공동생활은 위기에서 힘을 발했다. 위기 상황에서 2층 사람들이 바쁘면 3층에서 뛰어나와 손을 보태주고, 4층 사람들이 열 받으면 5층에서 위로와 삼겹살을 제공했다. 이사 가고픈 충동이 일 때면 고양이들의 묘기와 통장 잔고를 보며 현실과 타협했다. 집이라는 거대한 숙제 앞에서 돈독한 조직력과 동지애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이 집에 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무지개집의 가장 소중한 자산은 지금 같이 집을 돌보며 살고 있는 이들임은 확실하다. 물론, 더 이상의 보수공사는 부디 없길! *남기업씨의 ‘아주 보통의 마을’이 끝나고 전재우씨의 연재가 시작됩니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