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05.16 18:31 수정 : 2018.05.17 13:03

한국 사회의 주거 불안정은 특정 집단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닐진대 굳이 무지개집이라는 이름 아래 성소수자들이 공동주택에 모여 살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티 내며 살아서 얻는 게 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무지개집이 생기기 몇 해 전의 이야기다. 30대 초반의 A씨는 부모님에게 커밍아웃을 한 뒤 심한 가정불화를 겪다가 갑자기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당시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 중이었던 그는 당장 잘 곳이 없었고 집에서는 한 푼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비슷한 집안 문제를 겪은 바 있던 성소수자 친구 한 명이 선뜻 룸메이트로 받아줬고 A는 겨우 노숙자가 될 신세를 면했다.

20대 후반의 B씨는 독립해서 살며 비교적 자유로운 게이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가끔 부모님이 그가 어떻게 사는지 살피러 들르긴 했지만 그들은 당신들의 자식이 고지식하게 직장생활에만 열중할 뿐이며, 언젠가는 당신들이 정해주는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릴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느 날 아들 집에 들른 어머니에게 옆집 아줌마가 B는 남자와 동거 중이라고 고자질하기 전까지는. 그날 이후 B에게 벌어진 일은 지면상 생략한다. 첩보 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할 만큼 드라마틱했다는 사실만 전한다.

이번에는 무지개집이 생긴 이후의 이야기. 서울 인근에 살고 있던 20대의 C씨는 몇 달 전 동성 파트너와 헤어졌다. 그러나 헤어진 전 애인의 스토킹에 가까운 집착과 협박으로 신체적인 위협과 불안을 느꼈고 집 안에 홀로 있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혈연 가족이나 일반 친구, 혹은 경찰에 위기 사실을 설명할 수 없었던 C는 상황을 바로 이해해줄 수 있는 무지개집에 도움을 요청했고 무지개집 식구들은 기꺼이 그를 게스트룸으로 불러들였다. C는 무지개집에서 며칠 부대끼고 살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던 우리가 무지개집에 모이게 된 이유는 아우팅, 고립, 신체적인 위협, 소수자 스트레스 등 비성소수자라면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와 어려움을 공간의 공유 및 재구성을 통해 조금이나마 덜어보고자 해서다.

집의 기능은 누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집, 믿을 수 있는 이웃이 있는 집을 선택했을 뿐이다. 물론 같이 산다고 해서 각자의 문제들이 한 방에 해결될 리는 없다. 오히려 혼자라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짐을 떠안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집에서만은 소수자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길을 선택했다.

참고로,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와 고려대학교 보건과학과 김승섭 교수 등이 진행한 ‘2016 성인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건강연구’에 따르면 한국 성소수자 인구집단의 우울증상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4.76배 더 높고 최근 1년간의 자살 생각은 7.51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같은 연구에서 성소수자 커뮤니티와 연결성이 높은 집단의 경우 낮은 집단보다 삶의 만족도가 2.07배 높았다.

이 정도면 같이 사는 이유로, 이 땅에 살아남기 위한 이유로 충분히 설득력 있지 않은가! 무지개집 입주자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아주 보통의 마을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