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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5.30 18:07 수정 : 2018.05.31 11:16

새집에 들어와 살면서 겪은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이웃들의 민원이었다.

“왜 그렇게 파티를 자주 해요?”, “죄송합니다. (흥과 끼가 많은 퀴어라서 그래요.)”

“집들이를 도대체 몇 번 하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열네 명이 사는데 아직 네 번밖에…)”

“공사를 왜 그렇게 자주 해요?”, “죄송합니다. (우리도 보수공사 없이 살고 싶어요.)”

이런 건 이웃에서 충분히 불편해할 수 있는 문제라 양해를 구하거나 사과드린다. 하지만 안전등 불빛이 너무 밝으니 소등하라, 배수구 물소리가 시끄러우니 안 나게 해 달라, 골목이 좁으니 집 앞 주차는 하지 마라 등의 요구는 우리의 의식주나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 어떻게 수용해야 할지 곤혹스럽다.

어릴 적 살던 동네는 골목 입구에 평상을 내놓은 구멍가게가 있었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앉아 가게를 들락거리는 사람들에게 이웃의 소식을 전해주곤 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이웃들처럼 친밀해지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굳게 닫힌 철문과 콘크리트 벽으로 구획당한 채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바라지도 않을 이야기다.

우리 역시 옛 어르신들처럼 속살을 내보이며 살고픈 마음은 없었다. 다만 민원은 줄이고 싶었고, 행여 성소수자들이 사는 집이라 알려져서 호모포비아를 가진 이들이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여 시작된 이웃 만들기 대작전!

작전이래서 특별한 것은 아니고, 낯선 동네와 친해지는 각자의 생존법들을 공유하는 것이 전부였다. 단골 미용실과 커피숍 정하기, 동네 병원, 편의점, 술집 정보공유, 캣맘끼리 친해지기, 골목 청소로 호감 얻기, 주민센터 행사 참가, 교회나 성당 분위기 파악 등 한 명이 하나의 정보만 공유해도, 한 명씩만 친해져도 합치면 열이 넘는 이웃이 생긴 듯 든든해졌다.

한편 동네 성소수자들을 초대하는 번개도 개최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역 정보가 활발히 오가는 에스엔에스(SNS)에 초대의 글을 올렸다. 몇 시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아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괜찮으세요? 너무 상처받지 마세요”라는 문자메시지였다. 뜬금없이 무슨 말인지 물어봤더니, 내가 올린 글에 혐오성 댓글이 달렸다는 거다. 성소수자인 게 뭐 자랑이라고 동네 커뮤니티에까지 알리냐고 비난하는 내용이라고.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겁도 나고 화도 났다. 하지만 속상함의 시간은 짧았다. 다시 에스엔에스에 접속했을 때 이미 혐오 댓글은 자진 삭제되어 있었고, 혐오 글에 대한 비판의 글뿐 아니라 다양성의 가치를 이해한다, 성소수자들과 이웃이 되어 좋다는 등 격려의 글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참으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선거철이 다가오니 호모포비아 세력이 또 활개를 친다. 종교를 빙자해서 인간혐오를 부추기는 무리들, 거기에 편승해서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은 어쩌면 좋을까. 국민 정서를, 동네 민심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제발, 정신들 좀 차리시라. 무지개집 입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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