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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집 입주자 가족이 무엇이냐? 혈연공동체? 기본사회집단? 경제공동체? 설마, 사랑의 공동체? 다양한 정의가 있지만 하나로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분명한 건 어떤 가족도 완벽하지 않고 영원하지 않다는 것뿐. 대안 가족이나 공동체 가족 등 다양한 가족 모델도 나름의 특별한 가치와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하지만 불안정한 것은 마찬가지다. 하물며 변덕스러운 게이와 고집스러운 레즈비언, 제도권 밖의 동성 커플들이 모여 사는 무지개집은 오죽하겠는가. 심지어 그들 중 상당수는 바람만 불어도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비정규직, 취준생, 시민단체 활동가들이라니! 사실 무지개집을 기획할 때 가장 우려했던 점 중 하나가 구성원들이 자주 바뀌면 어쩌나, 커플이 깨지거나 입주자들끼리 눈이 맞아 비밀 연애라도 하게 되면 어쩌나 하는 점이었다. 싱글들끼리 사랑이 싹트는 일이라면 축하받을 일이겠지만, 커플이 깨지는 건 그동안 맺고 있던 서로 간의 관계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일이라 가능하면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기도가 미래를 구원하진 않는 법. 작년 가을, 수년째 동거해온 커플이 깨지고 말았다. 몇 달 동안 관계가 소원해지는 게 눈에 보였지만, 둘의 사생활이라 아는 체하지 않고 지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둘은 연인 관계를 정리했다고 통보해왔다. 가족들이 많으니 뒷담화는 왜 없었겠나. 각자가 그들과 관계를 맺은 방식과 온도에 따라 누가 잘했느니 잘못했느니, 계속 같이 살아야 하는지, 누가 나가야 하는지 등 갑론을박했다. 하지만 선택은 본인들의 몫인걸. 두 사람은 그들 중 한 명이 최대한 빨리 집을 정리하고 떠나기로 결정했고, 다른 가족들은 그 결정을 존중하는 걸로 합의했다. 어떤 이유든 헤어짐은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기는 일이다. 무지개집을 지으면서부터 수년 희로애락을 같이한 가족을 떠나보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어떤 고통이든 유머와 삶의 의지로 당차게 승화시키는 게 성소수자들의 ‘기갈’(성소수자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는 말로, ‘성소수자의 한 맺힌 기개’라는 뜻) 아닌가. 분가도 출가도 가출도 아닌, 이름 붙이기 어려운 이별을 우리는 담담하게 맞이했고 그들의 새 출발에 기꺼이 축하를 보냈다. 지난 설 무렵, 그렇게 무지개집을 떠났던 친구가 선물 세트를 들고 찾아왔다. 평소에 집안 대소사를 전혀 챙기지 않던 친구였기에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분가를 감행한 자식이 집에 인사를 하러 오면 부모는 이런 기분이 들까? 그가 잘 살아주길 진심으로 바란다. 게이 커뮤니티에서 통하는 자조적인 농담 중 게이 인생 1년은 일반 인생 10년과 같다고들 한다. 20년간 파란만장한 무지개집에서 살아낸 사람이라면 어딜 가든 꿋꿋이 살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고 보니 벌써 세 명이 각기 다른 이유로 무지개집에서 출가했다. 어디에 살든 한때 가족이었던 그들의 인생에 격렬한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사랑은 변하고 가족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 지금 같이 얼굴을 맞대고 사는 이들을 소중히 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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