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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9.19 18:20 수정 : 2018.09.19 19:29

전재우
무지개집 입주자

한때 무지개집 1층에는 ‘남자가한밥’이라는 작은 도시락집이 있었다. 야근과 회식만 반복되는 지루한 직장생활을 접고 청년기업인의 꿈을 키우던 입주자 ㄱ씨가 부푼 꿈으로 개업한 곳이다. 오랜 자취생활로 요리에 자신이 있었던 그는 손끝 야무진 입주자 ㄴ과 의기투합했고, ‘자연주의 도시락’ 배달업을 시작했다.

출발은 활기가 넘쳤다. 재래시장 상인회와 손잡고 지역사회 홍보에도 정성을 들였고, 광고지를 들고 가가호호 방문선전도 했으며, 매스컴도 타는 등 대박의 조짐을 보였다. 다만 공간이 문제였다. 짧은 시간에 많은 도시락을 포장해야 하는 일의 특성상 대여섯평 남짓한 1층 커뮤니티룸에서 조리와 포장까지 하기엔 무리였다. 해서 주차장 한쪽에 칸막이를 만들고 조리대를 놓아 사용하기로 했다. 무지개집의 주차공간은 네 대가 사용하도록 만들어졌는데 실제로 차가 있는 집은 두 가구밖에 없어서 우리로서도 전혀 불편한 일은 아니었다. 주차장에 테이블을 놓거나 개조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를 인근에서 많이 본 터라 문제가 될 줄도 몰랐다.

그러나 순진한 판단착오였다. 어느 날 우리는 구청으로부터 ‘건축물 부설주차장 위반사항 시정명령 통보’를 받게 된다. 인근 주민 누군가 민원을 넣지 않았나 짐작한다.

어쩔 수 없이 ‘남자가한밥’은 무지개집을 떠나야 했다. 하필 근방이 트렌디한 맛집 명소로 뜨면서 부동산 거품이 극에 달하던 시점이었기에 저렴한 가격에 좋은 영업장을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 그러나 한창 영업에 가속도가 붙어야 할 시점에 가게 문을 닫아둘 수는 없었던 터라 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급히 근처에 매장을 열었다. 다만 매장과 도시락 배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엔 무리라고 판단해 배달은 접고 매장 영업만 하기로 했단다.

우리는 이전 후에도 ‘남자가한밥’이 승승장구하는 줄 알았다. 점심시간에 가보면 늘 만원이었고, 저렴한 가격에 조미료를 쓰지 않고 매일 반찬이 바뀌는 집밥 같은 음식에 대한 손님들의 평도 좋았다. 무지개집의 혼밥족들이 구내식당 혹은 학생식당을 이용하는 기분으로 부담 없이 한 끼를 해결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던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이 들렸다. ‘남자가한밥’이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사정인즉 매일 준비한 재료가 떨어질 때까지 매출을 올려도 비싼 월세와 종업원 임금을 감당하기 어려워 빚이 늘어만 갔단다. 단골들은 아쉬워했고, 지켜보는 우리도 안타까웠다. 3년 만에 꿈을 접어야 했던 ㄱ의 마음은 얼마나 쓰라렸을까.

‘남자가한밥’만 그런 경험을 한 건 아니다 이 동네는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식당과 카페가 생기거나 없어지거나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건물주의 배를 불렸을지 모르나 근근이 영업을 해오던 소상공인들은 하나둘 동네를 떠나게 만들었다. 더 딱한 것은 불과 일년 만에 부동산 거품이 빠지면서 이제 새로 단장한 건물에는 빈 공간이 넘쳐난다는 것.

ㄱ씨는 다시 바쁜 직장인이 되었다. 따박따박 급여가 들어오니 곧 빚도 갚을 테고, 신메뉴 걱정, 매출 걱정 안 해도 되니 다행이라 말하는 그의 얼굴이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은 건 기분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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