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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0.03 18:38 수정 : 2018.10.03 19:06

전재우
무지개집 입주자

공동주택에 산다고 하면, 그것도 성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집이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나 기대를 하고 또 방문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그럴 때, 가장 염려되는 건 좁은 실내도, 전혀 특별하지 않은 살림살이도, 청결하지 못한 청소 상태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고양이들도 아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훅 들어오게 마련인 집의 냄새에 무엇보다 마음이 쓰인다. 행여 홀아비 냄새가 나는 건 아닐까, 고양이 배설물 냄새나 간장 끓이던 냄새가 남아 있진 않나, 에어컨 필터 냄새가 나진 않나 킁킁대며 연신 방향제를 뿌려대곤 한다. 그러고는 행여 방향제 냄새가 자극적일까 봐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느라 바쁘다.

후각은 생명체의 가장 오래된 감각이며 어류에서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생물체의 감각기관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인간에서는 시각과 청각에 상대적으로 밀려 과소평가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냄새는 식욕, 성욕, 행복감 등 인간의 욕망과 가장 빠르고 강렬하게 반응하는 감각이다. 또한 후각신경은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에 연결되어 감정과 기억에도 영향을 미친다. 냄새를 통해 추억을 복기하는 ‘프루스트 현상’도 이런 후각의 특징 때문일 것이다. 고향 집을 기억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냄새 아닌가.

집에서 나는 냄새를 맡아보면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 라이프스타일까지 알 수 있다. 공기청정기를 사용해서 일상의 냄새를 삭제한 집은 아무리 근사하고 쾌적해도 사람이 살지 않는 모델하우스 같아서 어쩐지 정이 가지 않는다.

한때는 이른 아침 드립커피 향으로 시작해서, 끼니때가 되면 밥 짓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곳, 저녁이면 벽난로의 장작 타는 냄새와 책 냄새가 은은하게 어우러지는 곳, 봄에는 흙거름 냄새, 꽃향기가 나고, 여름이면 풀 냄새가, 가을바람이 불어올 즈음엔 과일 향기가 나는 곳이 우리 집이길 바랐다. 한 200평쯤 되는 대지에 뒷마당엔 텃밭과 앵두나무도 있고, 넓은 주방과 서재가 있는 저택? 그만한 재력을 가졌을 리 없는 우리에겐 언감생심인 환상이다. 하지만 좀 작고 복잡하면 어떤가. 무지개집에는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이들의 땀냄새가 매일매일 풍겨오고 우리는 그런 서로의 냄새와 부대끼며, 서로에게 익숙해지며 살고 있다.

무지개집을 거쳐 갔거나 방문했던 이들은 어떤 냄새를 기억하게 될까. 적어도 하나의 냄새로 기억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층마다 풍기는 다양한 냄새와 그런 냄새를 만드는 이들의 생생한 모습을 떠올려본다. 요리를 좋아해서 고소한 기름 냄새가 밴 ㄱ의 주방과 청소에 일가견이 있어서 세제 냄새가 풍기는 ㄴ의 욕실, 식물을 잘 가꾸는 ㄷ의 베란다와 책을 사랑하는 ㄹ의 방, 그리고 문득문득 풍겨오는 반려동물의 냄새까지. 무지개집은 이미 고유의 냄새를 집 안 구석구석에 켜켜이 쌓아가고 있다. 무지개처럼 다양한 냄새가 드라마틱하게 움직이는 곳, 언젠가 무지개집을 떠올리면 그런 활기찬 냄새를 기억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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