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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 이문옥 감사관이 첫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한겨레에 제보해 폭로한 뒤 기밀누설 혐의로 구속되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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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30년, 한겨레 보도-5]
1990년 이문옥 감사관의 양심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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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 이문옥 감사관이 첫 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그는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한겨레에 제보해 폭로한 뒤 기밀누설 혐의로 구속되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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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자료가 언론에 나가면 선생님은 공직사회 풍토상 배신자로 낙인 찍혀 계속 있을 수 없을 겁니다.”이문옥이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결심이 이미 섰습니다.”이봉수가 말했다.
“정말 그렇다면…기왕이면 자료를 더 많이 가져오십시오.”이문옥 감사관은 며칠 뒤, 재벌그룹 소속 23개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취득 실태와 국세청의 과세 실태 관련 자료를 통째로 이봉수에게 전했다. 자료를 건네받은 이봉수는 이홍동 기자와 함께 경기도 용인 일대의 토지등기부 등본을 확인하는 등 추가 취재를 거쳐 1990년 5월 11일치 1면에 관련 기사를 특종보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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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5월 11일치 한겨레 1면에 실린 감사원 로비 관련 특종 기사.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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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옥 감사관의 구속 사실을 알린 한겨레 1면 기사.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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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상 취득한 기밀을 누설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감사원의 이문옥(52) 서기관이 사실상 백지화돼 있던 대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조사 결과를 <한겨레신문>에 제보한 것은 오로지 감사원의 파행적인 운영을 막자는 충정에서였다.
이 때문에 이 서기관은 이와 관련된 기사가 보도된 뒤에도 스스로 출근, 제보자는 자신이며 자신의 본뜻은 감사원이 올바른 감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음을 당당하게 주위의 동료와 상급자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서기관이 23개 대기업에 대한 조사결과를 <한겨레신문>에 제보키로 마음을 먹은 것은 올해(1990년) 초. 그는 지난해(1989년) 8월 중순부터 한달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이 일반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다는 것을 밝혀냈으며, 조세당국의 이에 대한 감시 역시 여러가지 이유에서 대단히 미온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나 한창 진행돼가던 조사는 중도에 갑자기 중단됐고 그동안의 조사결과는 묵살됐으며 이어 12월 말 인사에서는 자신 뿐 아니라 상급에 있는 과장·국장까지 ‘좌천’되고 말았다. 상사로부터 감사중단의 배후에 재벌기업의 로비가 개입돼 있다는 말을 들은 그는 감사원기능의 독립성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품게 됐다.
이달 초 <한겨레신문>에 조사 내용을 알려온 그는 지난 11일 기사가 보도될 때를 택해 휴가원을 제출하고 마음을 정리했다. 휴가를 떠나기 직전 중학교 3학년인 아들에게 “아빠를 이해해달라. 우리나라와 감사원을 위해 한 일이다. 용서하라”고 다독거렸다고 부인(46)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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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옥 감사관의 구속적부심에서 새롭게 폭로된 사실을 다룬 1990년 5월 24일치 한겨레 1면.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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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창간 30돌을 맞아, 한국사회를 바꾸는 데 기여한 특종이나 기획 기사의 뒷이야기를 <창간 30년, 한겨레 보도>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디지털 역사관인 '한겨레 아카이브'에 소개된 내용의 일부입니다. 한겨레의 살아 숨쉬는 역사가 궁금하시다면, 한겨레 아카이브 페이지(www.hani.co.kr/arti/archives)를 찾아주세요. 한겨레 30년사 편찬팀 achiv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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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옥 감사관이 왜 한겨레에 제보했는지를 알리는 한겨레 홍보전단지. 한겨레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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