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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은(33)·홍미란(30) 작가. 정용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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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김아리의 TV 내멋대로보기] 1. ‘환상의커플’ 자매작가 인터뷰
2000년에 한겨레신문에 입사해 사회부, 문화부, 국제부 등을 거친 뒤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는 강김아리 기자입니다. 지금까지 방송을 담당한 적은 없지만 평소 혼자 ‘비 맞은 중’처럼 중얼중얼거리며 TV 보기를 즐기는 터라, 주제넘게 이 코너 문을 열게 됐습니다. 코너명이 ‘TV 내멋대로 보기’인만큼 제 멋대로 쓰는 글들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강김아리 기자 ari@hani.co.kr MBC 인기 드라마 <환상의 커플>이 종영한 지 무려 1달 하고도 3주가 지났다. 이 시점에서 <환상의 커플> 작가 인터뷰를 내보내는 건 속보성을 생명으로 삼는 인터넷의 속성을 정면으로 배반하고도 남는 일이다. 하지만, 방송 종영 뒤 조금 늦게 연락을 했더니 때마침 작가들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인터뷰는 최근에야 겨우 이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의 차기작 ‘홍길동’을 소재로 한 코믹사극을 기다리지 못하겠다는 시청자들을 위해 다음달에 단막극 <오늘도 맑음?>이 방영된다는 사실을 단독 입수하기도 했다. 서울대입구역 근처 한 커피숍에서 만난 홍정은(33)·미란(30) 자매 작가는 상상했던 것과 달리 매우 차분하고 이성적인 스타일이었다. <쾌걸춘향> <마이걸> <환상의 커플> 등을 통해 뒤통수를 깨는 캐릭터와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대사를 선보인 작가들이 당연히 개그맨을 방불케 할 것이라는 예상은 선입견에 불과했던 것이다. 휴가지에서 30권의 책을 읽고 왔다는 괴력의 독서량을 자랑하는 이들 자매의 취미 역시 모범생스러운 ‘독서’였다. 하지만, 작품에서 드러나듯 “한 장면도 재미없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다”고 고백했다. 각각의 인터뷰 질문에 대해 두 작가 중 누가 답했는지 적시하지 않은 이유는 대부분의 질문에 대해 자매의 생각이 같았기 때문이다. 자매 작가는 이신전심의 경지였다.<환상의 커플> 올해의 드라마상등 4관왕 영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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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커플’에 출연한 한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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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커플> 종영한 뒤 뭐하고 지냈나?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다녀왔다. 책을 30권 들고가서 다 읽고 왔다. 지금은 만화책도 읽고 뒹굴뒹굴 지내고 있다. -MBC 연말 연기대상에서 <환상의 커플>이 올해의 드라마상 등 4관왕을 했는데? =올해의 드라마상은 시청자들이 200원을 내고 찍는 건데 우리 작품에 돈을 내고서라도 밀어준 데 대해 감동받았다. 시청자들에겐 돌아가는 것도 없는데 말이다. 그러고보면 베스트 커플상, 남녀인기상, 올해의 드라마상 등 시청자 투표로 하는 상은 다 받았다. -작가상을 받지 못했는데 서운하진 않았나?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데뷔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 햇병아리다. 한 20년 정도 하면 모를까.(웃음) -여주인공역을 맡은 한예슬이 수상소감으로 ‘쟁반짜장을 쏘겠다’고 했는데 드셨나? =못 먹었다. 종방연 이후 배우들을 만난 적이 없다. 이전 작품에서도 출연 배우들은 종방연 때말고는 거의 만난 적이 없고 전화연락 등 교류도 거의 없다. -시청률이 대박이라고 보기 어려운 시청률인데 비해 큰 화제가 됐고, 기사도 엄청나게 쏟아졌다. 시청률에 비해 큰 관심을 받은 작품은 최근 인정옥 작가의 <네멋대로 해라> 이후 처음인 듯하다. 그래서 작가들도 ‘스타 작가’로 불리며 화제가 됐는데 이에 대한 소감은? =사실 작품을 쓰는 동안엔 잘 몰랐다. 피디가 가끔 얘기해줬는데, 격려 차원에서 하는 얘기인 줄로만 알았다. 게시판 반응이 이전의 <쾌걸춘향>이나 <마이걸> 때보다 낮았다. 그때는 글이 20만~25만건이었는데, 이번은 5만건이었다. 반응이 썰렁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작품이 끝나 갈 때쯤 반응이 좋다는 걸 알게 됐다. -대본은 어떤 공정을 통해 만들어지나? =처음에 시놉시스 쓸 때는 서울에서 사람도 만나면서 쓰는데, 대본 들어가면 가족도 안 만나고 홍천이나 속초 등 지방에 방을 잡아 틀어박혀 지낸다. 2-3개월간 둘이서만 붙어서 산다. 거의 감옥 같다고나 할까(웃음). <마이걸> 땐 서로 한 회씩 번갈아 작품을 썼는데, 이번엔 대사를 서로 부르면서 타이핑해서 거의 한줄한줄 같이 썼다고 보면 된다. -<환상의 커플> 때는 강원도가 아니라 남해에서 작업했다고 들었다. =원래 바다를 좋아해서 속초, 홍천 등에서 일했는데, 이번엔 어차피 지방에서 일할 거면 작품 배경인 남해에서 하는 게 어떠냐는 피디의 제안에 남해에 틀어박혀서 일했다. -그렇게 작업하다보면 다투기도 하겠다? =일할 때는 전혀 다투지 않는다. 작품이 끝나고 할 일이 없을 때나 다툰다. “목숨 걸고 하는 배우가 최고다” -기존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환상의 커플> 속편 제작에 대한 요구를 단칼에 거절하시는데, 속편 제작을 완강히 거부하는 이유는? =<궁>이라는 작품은 ‘궁’이 있고, ‘입헌군주제’라는 설정이 있어서 계속 나올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설정이 없지 않나? 이어갈 스토리가 없다. -차기작이 고전 ‘홍길동’을 소재로 한 코믹사극이라고 들었다. 현재 진척 상황은? =시놉시스는 나온 상태다. KBS에서 내년 1월께 방영할 것 같다. -작품 홍길동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홍길동’은 퓨전 사극 활극이다. 정통 사극이 아니어서, 말투는 우리 대사를 살릴 것이다. 지금까지 여배우가 메인이었던 것과 달리 길동이가 메인이 되지만, 멜로가 있기 때문에 여배우 비중도 크다. -작품을 쓸 때 주인공역에 특정 배우를 상정하고 쓰나? =그렇지 않다. 상상의 인물에만 충실하게 쓴다. -캐스팅과 관련해 얼마나 영향을 끼치나? =원하는 배우가 있기 마련이지만 늘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웃음). 하지만 늘 보면, 원했던 캐스팅보다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최고의 캐스팅이었다. 목숨 걸고 하는 배우가 최고다. 처음에는 한예슬이 너무 어려서 가볍지 않을까 했다. 안나는 카리스마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소화를 잘해서줘서 좋았다. -좋아하는 배우가 있다면? =차승원을 좋아한다. 특히 CF에서의 차승원을 좋아한다. -함께 일하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소지섭, 조인성(웃음). -<쾌걸춘향> <마이걸> <환상의 커플> 등 지금껏 코믹극을 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코믹극이냐? =지금은 밝고 재미있는 게 좋다. 활기있는 분위기가 좋다. 나중에는 글쎄다. “인사를 하는등 그냥 흐르는 장면은 없다, 한장면도 재미없으면 안된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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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드라마 〈환상의 커플〉에서 나상실 역을 맡은 한예슬 사진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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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활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경력이 있다면 무엇인가? =TV 예능작가 경력이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홍 작가 자매는 둘 다 예능작가 출신이다) 예능분야에서 구성, 시트콤 등을 했다. 예능작가 시절 순발력, 집중력, 템포감 등을 습득한 거 같다. 방송은 다 패턴이 있으니깐. 우리 드라마에 반전, 비틀기 등이 많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드라마를 좋아하고 진행상 그냥 흐르는 장면, 예컨대 인사를 한다던가 하는 장면은 없고, 하나하나 각개 꽁트 개념이다. 한 장면도 재미없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원래 코미디를 좋아하나? =원래부터 특별히 코미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멜로, 홍콩 느와르 등 다양하게 좋아했다. -드라마 작가가 되리라고 예상했었나? =언니는 행정학을 전공하고 동생은 사범대 가정과를 나왔다. 그래서 부모님은 공무원과 교사를 원했다. 그런데 어찌하다 예능작가가 됐다. 예능작가를 하면서 막연히 드라마를 쓰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바빠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시놉시스 공모를 보고 둘이 함께 써서 냈다가 당선돼 여기까지 오게 됐다. -<쾌걸춘향> <마이걸> <환상의 커플> 중에서 애착이 가장 큰 작품은? =차기작 홍길동에 대한 애착이 크다.(웃음) <쾌걸춘향> 끝나고부터 하고 싶었는데 돈이 많이 들고 PPL(간접광고)도 안되서 하질 못해 <마이걸>을 했다. 그 뒤에 하려했는데 또 돈이 많이든다고 해서 <환상의 커플>을 했다. 아주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작품이라 애착이 크다. “세상에 그리 악한 사람이 있나? 뭘해도 이해받을 구석있어야 매력” -지금까지 작품을 보면 악역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게 특별한 원칙인 듯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 그리 악한 사람이 있나? 뭘해도 이해받을 구석이 있어야 매력이 있다. 멜로에서 사랑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 않는가? -작품을 쓰지 않을 땐 주로 뭐하나? =주로 책을 본다. 소설책.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면? =주성치 영화를 좋아한다. 주성치는 천재라고 본다. 우리 둘다 열광한다. 주성치 특유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환상의 커플> 여주인공처럼 혹시 오징어, 자장면, 막걸리를 좋아하나?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만큼만 좋아한다. 특별히 더 좋아하지는 않는다. -<환상의 커플> 여주인공처럼 자장면에 막거리를 먹어봤나 =먹어본 적 없다. 그건 안나 캐릭터에서 나온 것이다. 안나 캐릭터가 어울리는 여부를 보고 먹는 게 아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냥 먹는 캐릭터다. -지금까지 봤던 드라마 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은? =<발리에서 생긴 일> <12월의 열대야> -평소에 웃기다는 소리를 듣는 편인가? =그런 이야기 안 듣는다. 술을 먹으면 작두를 타기는 하지만.(웃음) -혹시 영화 시나리오 쪽에도 관심이 있나? =우린 방송이 더 맞다. 영화는 감독 몫이 더 큰 거 같다. 감독 데뷔 차원에서 시나리오 쓰는 사람들이 많고. 우리는 대본만 쓰고 싶다. -4자매 중에 첫째와 셋째로 들었다. 특히 둘이 어렸을 적부터 친했나? =아시다시피 식구들끼리는 별로 안 친하지 않는가.(웃음) 일하면서 친해졌다. 둘이 책을 좋아하다보니 한 사람이 책을 읽고 나서 재밌으면 권유하고 그러면서 친해졌다. “아시다시피 식구들끼리는 별로 안 친하지 않나?” -작가를 때려치우고 싶었을 때 없었나? =힘들 때 있지만 때려치면 뭐 먹고 사나. 이것밖에 할 거 없으니깐. 먹고 살려면 잘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다. 이제 나이도 들어서 힘도 없고 친구도 없어서 장사밑천도 없다. -차기작 ‘홍길동’말고도 차차기작, 차차차기작에 대한 아이디어 있나? =아이디어 있지만 장사밑천이라 비밀이다.(웃음) 지금까지 2년동안 3작품을 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젠 1년에 한 작품만 하고 싶다. -성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나? =성공했다는 자신감보다 노하우가 생기는 것 같다. <괘걸춘향> 때는 아무것도 몰랐다. 감독이 ‘이건 아니다’라는 얘기에 계속 다시 써서 한 회분을 4고까지 썼다.(4번 고쳐썼다는 말임) 지금은 삽질을 덜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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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김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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