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04 18:05
수정 : 2018.12.30 17:25
김민정의
택시오라 aura
2년 전 관광버스 한대를 거의 채울 만한 수의 사람들과 며칠 교토를 다녀온 적이 있다. 정지용과 윤동주가 다녔다는 동지사(도시샤)대학에서의 여러 행사에 참여하게 된 참이었는데 나로서는 처음 방문하게 된 교토이기도 했다. 주최 측의 책임을 띤 선배가 버스에서 내리기 전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내일 아침 8시40분까지는 반드시 이 버스에 모두 올라주셔야 합니다. 동지사대학 교수님들과 학생들과 한 약속입니다. 필히요.”
홀짝홀짝 술을 마시며 밤을 보내다 눈을 번쩍 떴는데 시계가 8시3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소변을 보는 사이 1분이 흘렀다. 변기에 물을 내리는데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선배에게 전화를 거는 내가 있었다. “나 택시 한대만 불러줘요. 그거 타고 곧장 따라갈게요.”
얼마나 기다리면 되겠느냐, 숙소에서 학교까지 끝에서 끝인데 요금 생각은 안 하냐…. 선배의 걱정 어린 말을 뒤로한 채 9시 정각에 호텔 로비로 내려갔다. 50대 중반쯤 되셨을까 싶은 연배의 풍채 좋은 기사님이 나를 보자마자 꾸벅 인사를 하셨다. 덩달아 나도 꾸벅 인사를 하게 되는 상황 속에 번역기를 켰고 더듬더듬 그렇게 우리 둘의 대화는 시작됐다.
워낙에 한국을 좋아해 88년에 올림픽을 보러 서울에 간 적도 있다는 기사님은 한국말을 제법 구사하실 줄 알았다. 교토에 처음 와봤다는 나의 말에 뒤를 잠시 돌아보시더니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속도를 냈다 줄였다 하면서 멀리 솟아 있는 산 이름이며 창밖을 스쳐가는 건물의 역사며 달리고 있는 도로의 막힘이며 이것저것 설명하기 바쁘셨다. 번역기로 모자라 노트를 꺼내 단어들을 메모하며 기사님의 말을 어렵사리 좇는데 얼마쯤 지났을까, 갑자기 샛길로 들어간 차가 작은 가게 앞에 우뚝 서는 것이었다.
“교토 토박이들은 좀 알고 관광객들은 잘 모르는 우나기 집입니다. 슬플 때 저는 이 가게에 들릅니다. 위로가 되는 맛이거든요.” 나는 창문을 열고 가게의 외관과 간판을 사진으로 찍었다. 왜 가던 길을 멈추고 멋대로 도는가 하는 짜증은 전혀 일지 않았다. 진짜배기 교토의 맛을 느끼게 해주려는 기사님의 진심이 그의 골똘한 표정과 그의 빨라진 말에서 증명이 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가끔 꽃 들고 동지사대학에 갑니다. 윤동주 시비에는 늘 꽃이 있습니다. 정지용 시비에는 늘 꽃이 있지는 않습니다. 슬플 때 저는 윤동주 시인의 시를 읽습니다. 나보다 더 슬픈 사람이 있구나, 안도하게 되거든요.” 일본인 택시 기사의 입에서 듣게 되는 윤동주와 정지용의 이름이라니, 반가움에 나는 촐랑대며 이렇게 되묻고 말았다. “기사님은 슬픈 감정에 되게 솔직하신가봐요.” 저 앞으로 동지사대학의 정문이 보이는 가운데 기사님이 나지막이 답했다. “사랑하는 아내가 한달 반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싱글파파입니다. 저는 아직도 매일매일이 너무 슬픕니다.”
아, 하는 탄식 말고는 가방 속에 넣어 온 민음사판 윤동주와 정지용의 시집밖에 떠오르는 게 없어 “윤동주, 윤동주, 프레젠토, 프레젠토” 하며 기사님에게 윤동주의 시집을 건넸다. 기사님은 한껏 손사래를 치더니 기쁘게 받아주셨다. 그나저나 정지용의 시집도 함께 선물할걸. 그때 나는 대관절 무슨 눈치 속에 아꼈던 것일까. 얼마 전 서가를 정리하다 정지용의 시집 속에 꽂혀 있는 택시 요금 영수증을 발견했다. 바래고 바래 금액의 숫자가 희미해져버린 것에 새삼 안도를 하며 나는 저녁으로 장어를 먹으러 갔다. 파주 장어도 먹으면 위로가 되는 맛이니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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