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8.12.30 17:24 수정 : 2018.12.31 09:42

김민정 시인

2018년의 마지막 날. 누군가는 바다에 가고 누군가는 산에 간다 했다. 일몰과 일출 보기로 제 한해의 살아옴과 새 한해의 살아감을 복습하고 예습하기 바쁠 하루. 나는 오늘 같은 말일이면 집에 콕 처박혀 일년 동안 쓰고 모은 영수증 정리에 마침표를 찍곤 한다. 신용카드 문자 알림 서비스를 토대로 나는 그때그때 놓쳤던 일이랄까 마음이랄까 그 덕분에 ‘내 사람’을 다시 살피게도 되는데 묘하지, 고맙다는 말의 뒤늦음과 미안하다는 말의 모자람을 차분히 되새기는 데 퍽이나 유용함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영수증을 한데 담아두는 함을 뒤집어 그 한해살이 정리라는 역주행을 하다 보면 고객용 택시 영수증을 모으는 데 유독 잰 손의 나를 느끼곤 한다. 다른 것들에 비해 택시 영수증이 유독 크기가 작은 까닭이기도 하다. 날짜별로 시간대별로 거래 일시나 승하차 시간이나 결제 요금에나 관심이 있던 나는 무슨 호기심이 번졌는지 운수회사 상호에 형광펜을 긋기 시작했다. 유풍상운, 흥덕기업, 화인택시, 승진통상, 동일운수, 오복운수, 은성택시, 세기상운, 상신운수, 예스택시, 하늘바람교통, 낙원교통, 안전한택시, 신창운수, 삼기통상, 조양흥진, 동고택시, 공신통운, 무진택시…. 많기도 많아라, 중략하고 개인택시 보태니까 헉헉.

그런데도 내내 인력난에 시달리는 게 택시업계의 고질병이라고 했다. 엊그제 늦은 저녁 서울역에서 파주로 오는 콜택시를 탔을 때 만난 기사님의 얘기다. 기사님은 내가 차에 오르자마자 잠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좀 한 뒤에 출발해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향긋한 꽃향기는 못 피워도 꾸리꾸리한 전 내는 되도록 안 나게 하려는데 냄새처럼 어려운 게 없어요.” 잠시 창을 내리자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싸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새삼 환기라는 단어가 환기되는 기분이었다. “요즘 택시로 불편함이 많으셨죠? 그런데 저희들도 참 어렵거든요.” 파업과 분신과 카풀 등등 자칫 예민할 수 있는 단어들이 나와 기사님 사이를 오갔다. 묻지도 않았는데 택시 해서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오랑우탄 가슴 치듯 당신의 한탄을 쌍욕을 섞어가며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기사님을 만날 경우 더는 물러날 데가 없는데도 좌석 뒤로 엉덩이를 점점 밀어냈다면 어느새 앞좌석을 향해 한층 앞당겨 앉고 있던 나였다. “하루에 10시간을 넘게 일하는데 사납금 채우기도 어려워요. 작년에 하루 16만원을 벌었는데 그 가운데 13만원을 사납금으로 냈어요. 한달에 200만원 못 가져간 날이 태반이에요.” “네? 그런 사납금이 그게 말이 되는 거예요?”

사납금. 말 그대로 회사에 내는 돈. 특히 택시 운전사가 매일 수입에 상관없이 일정하게 회사에 납부해야 하는 금액. “택시회사가 사납금 그거 줄여주면 안 되는 거예요? 아니다, 맞다, 기사님들 모두 월급제도로 바꾸면 승차거부 그런 일도 안 생기지 않을까요?” 업계 사정을 전혀 모르니 내뱉을 수 있는 천진한 말이었음을 안다. 그저 웃지요, 체념에 가까운 듯한 한숨에 미소를 섞은 기사님은 목적지에 내리려는 내게 말했다. “하여튼 간에 제 말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제가 잘 몰라서 미안했습니다.” 고마울 게 없는데 고맙다고 하시니 미안해져서 미안하다고 할 수밖에.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 빤한 말을 끌어내는 건 그러고 보면 서로에 대한 관심이구나. 관심은 결국 서로에 대한 깊은 공부에서 오는 이해일 터. 네네, 새해부터는 택시 공부부터 좀 해보겠습니다!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김민정의 택시오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