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9.11 05:00
수정 : 2018.09.11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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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베트남 껀터 지역에서 만난 ‘한-베자녀’ 지원·여진 자매는 외조부모와 함께 산다. 한국 국적의 지원이와 무국적자인 여진이를 염려하는 것은 외할머니 당티탄투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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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지도를 잇다] ③베트남 귀환여성의 눈물
한국인 아빠·베트남 엄마 한-베자녀
베트남에서 ‘불법 체류' 경계에
한국 국적 자녀 체류연장 난관
한국 아빠 둔 지원·여진 자매
베트남서 태어난 여진은 무국적
"양국 정부 전향적 비자정책 펴야"
베트남서도 외로운 아이들
엄마 돈벌러 타지로 떠나고
아이 절반 이상이 외조부모 손에
한국 친가는 대부분 연락두절
할머니 야채장사로 근근이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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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베트남 껀터 지역에서 만난 ‘한-베자녀’ 지원·여진 자매는 외조부모와 함께 산다. 한국 국적의 지원이와 무국적자인 여진이를 염려하는 것은 외할머니 당티탄투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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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여진이는 왜 나처럼 한국 사람이 아니야?”
지원(가명·7)이의 질문에 할머니 당티탄투이(50)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눈치가 빨라 아버지에 대해선 묻지 않는 지원이지만, 이것만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나 보다. 지난달 29일 만난 지원·여진 자매는 베트남 껀터 중심지에서 차로 1시간20분 거리에 있는 톳놋구에서 배를 탄 뒤 10여분 들어가면 나오는 떤록섬에 살고 있다. 지원이 자매는 한국인 남성과 베트남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한-베 자녀’다. 아빠는 교통사고로 숨졌고 엄마는 돈 벌러 말레이시아에 가 외조부모가 두 자매를 돌보고 있다. 한국 국적의 지원이와 무국적자인 여진(가명·6)이를 염려하는 것도 외조부모의 몫으로 남겨졌다.
■ 여권·비자 연장 못해 ‘불법 체류’ 경계 넘나들어 한국에서 태어난 한-베 자녀는 엄마를 따라 베트남에 오면서 외국인 신분으로 거주하게 된다. 외국인이 합법적인 체류 조건을 충족하려면 한국 여권으로 비자 신청을 해야 한다. 올해 초 코쿤껀터가 껀터와 허우장성 지역에 거주하는 한-베 자녀 113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를 보면, 일정 기간마다 체류 조건을 유지해야 하는 한국 국적의 한-베 자녀가 81.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태어난 지원이는 한국 국적이지만, 여권이 만료된 지 오래다. 체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5년에 한번씩 여권 유효기간을 연장해야 하는데 엄마가 생계로 인해 고향으로 쉽게 돌아올 수 없어 아직 필요한 서류를 챙기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원이는 친권자인 엄마가 고향에 오면 바로 여권 연장 절차에 들어갈 수 있지만, 아빠가 친권자인 아이들은 아빠가 여권 연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연락이 두절되면 여권 연장을 할 수 없다. 여권 연장에 성공하더라도 3~6개월에 한번씩 체류 비자를 연장해야 하는 어려움이 또 기다리고 있다.
여진이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딸이니 지우라’는 시어머니의 압박을 피해 베트남에서 태어난 여진이는 생후 2개월 때 아버지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출생신고를 반려당해 국적이 없다. 고작 다섯살을 넘긴 자매는 미등록 체류자 신세가 됐다. “여진이가 베트남 국적을 얻는다 해도 걱정이에요. 자매인데 국적이 다르면 안 되잖아요. 애들한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투이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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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베트남 껀터 지역에서 만난 ‘한-베자녀’ 지원·여진 자매는 외조부모와 함께 산다. 지원이는 한국국적, 여진이는 무국적자로 베트남 체류 연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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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외국 국적자인 한-베 자녀들은 불안정한 체류 신분 탓에 교육받을 권리, 치료받을 권리에서 소외돼왔다. 다행히 지난해 말 껀터시 인민위원회 긴급지침으로 외국 국적 자녀들도 베트남 아동들과 동등하게 현지 공교육 혜택과 의료 혜택을 받게 됐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경우에는 한-베 자녀들의 수는 물론 체류 및 취학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응오티반프엉 코쿤 상담가는 “공교육 혜택이 공식화된 만큼 아이들이 베트남에 안정적으로 체류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비자정책 등에 대한 전향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아빠는 연락두절, 엄마는 돈 벌러… 외조부모 돌봄뿐 사회적 시선과 경제적 빈곤 문제로 귀환 여성이 고향에 정착하지 못하고 아이를 외조부모에게 맡긴 뒤 재이주를 감행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한-베 자녀의 절반 이상이 외조부모의 손에서 자라는 것으로 나타났다(64.4%).
지난달 28일 만난 한국 국적의 한-베 자녀인 성현(가명·10)이도 외조부모와 산다. 엄마는 성현이를 맡기고 타지로 돈을 벌러 나갔고 1년에 한두번씩 고향에 얼굴을 비친다. 외조부모는 친척 땅을 빌려 채소를 키워 판 돈으로 근근이 생활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성현이의 친가는 연락이 두절된 상태로 경제적 지원은 한푼도 못 받고 있다.
코쿤의 실태조사를 보면, 귀환 여성이 아이 양육비 전액을 부담하거나 외조부모와 공동부담하는 비율이 76.9%를 차지했다. 한국에 있는 친부가 양육비를 부담하는 비율은 7.7%에 그쳤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의 연락 빈도를 물었을 때 연락이 두절된 경우(66.3%)가 가장 많았다. 성현이 할머니의 소원은 하나뿐이다. “바라는 것은 제 건강이에요. 병에 걸리거나 갑자기 죽으면 성현이 옆에 있을 사람이 없어요. 제가 건강해야 성현이를 돌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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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베트남 껀터에서 만난 한베자녀 성현군은 외할머니(왼쪽), 외할아버지와 산다. 엄마는 가정폭력을 피해 성현군을 데리고 베트남에 돌아왔다. 성현군을 외조부모에 맡기고 타지로 돈을 벌러나간 엄마는 1년에 한두번씩 고향에 얼굴을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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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베트남 껀터에서 만난 한베자녀 성현군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산다. 엄마는 가정폭력을 피해 3살이던 성현군을 데리고 베트남에 돌아왔다. 한국어를 배운 지 3개월이 된 성현군이 한국어 공책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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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거주하는 한-베 자녀를 지원하는 정부 차원의 정책은 전무한 상태다. 지난 5월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과 여성가족부, 외교부 등 4개 정부부처가 베트남 껀터를 다녀갔지만 이렇다 할 후속 대책은 아직 나온 게 없다. 다문화가족 지원정책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다문화가족지원법에 의한 지원 대상에 해외에 있는 다문화가족은 포함돼 있지 않다”며 “현재 지원 필요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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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년 기획취재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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껀터/글·사진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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