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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2.05 19:23 수정 : 2007.02.09 13:10

[육아백서④] ‘여유로운 노년’은 꿈속 애기

‘육아상경’·‘친할머니’·‘퇴직 맞춤출산’ 신풍속도
딸자식 육아법 잔소리에 ‘당장 데려가라’ 하고 싶지만…

#새벽에 깬 손자 도훈이가 우유를 조금 마신 뒤 20분 만에 겨우 잠들었다. 1년 전쯤 딸과 사위가 6개월 된 도훈이를 맡아달라고 할 때는 두말 없이 ‘그러마’ 했는데, 지금은 너무 힘들어 딸이 아이를 데려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아이가 점점 무거워지면서 오래 업고 있으면 허리도 지끈지끈하다. 기력이 딸리니 ‘내가 젊었을 때 아이를 어떻게 셋이나 키웠는지’ 믿기질 않는다. 취미 삼아 다니던 뒷산에도 못가고, 교회에서 맡은 일도 모두 그만뒀다. 주말에 온 딸이 ‘티브이를 보여주지 말고, 사탕도 먹이지 말라’거나 ‘다른 애보다 작다’며 먹는 걸 갖고 이런저런 트집을 잡으면, ‘당장 데려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아이가 넘어져 상처가 생겨도 사위 얼굴보기가 민망하다. 잠 못자고, 부실해진 반찬을 대해야 하는 남편도 덩달아 고생이다. 젊었을 때 애 한 번 보지 않았던 남편이 내가 잠시 나간 틈에 아이를 보느라 안절부절 못하는 걸 보면 웃음이 ‘픽’ 나올 때도 있다. (인천 계양구 조아무개(60살)씨 인터뷰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 달라진 풍경1. ‘외할머니’라는 말 드물어지고 ‘친할머니’ 새말 생겨나

할머니·할아버지가 아이를 키우는 모습이 우리 사회의 익숙한 풍경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손자·손녀의 출생이 ‘기쁨’보다 ‘의무’로 돌아오는 할아버지·할머니가 늘고 있는 것이다. 조씨같은 ‘육아노인’들에겐 여행을 다니거나 옛 친구들을 만나는 여유로운 노년은 꿈같은 이야기다.

‘육아노인’이 많아지면서, 과거엔 볼 수 없었던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부모에게 특히 친정(처가)에 육아를 맡기는 이들이 늘다보니, 요즘 아이들에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라는 말을 듣기가 쉽지 않다. 아이에겐 늘 돌봐줬던 친근한 사람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친가 쪽의 조부모는 거주지를 따서 ‘부산 할머니’, ‘광주 할아버지’가 되는 식이다. ‘외’자가 사라지는 현상은 차별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이런 육아 형태의 변화도 한 몫을 했다.


# 달라진 풍경2. 현업에서 은퇴하고 손주봐주기 위해 ‘육아상경’

[육아백서④] ‘여유로운 노년’은 꿈속 애기
현업에서 물러난 세대가 육아를 위해 지방에서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이사하는 이른바 ‘육아상경’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평생을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살았던 정혜자(63)씨는 지난해 초 경기도 광명 딸네집 근처에 전세를 얻었다. 정씨의 큰딸 희원씨는 “처음엔 아이를 순천에 맡겼는데, 주말마다 아이 보러 오는 내가 딱했는지 이사오겠다고 하시더라”면서 “다른 형제들도 서울에 있어 당분간은 수도권에 계실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처가나 친가로 들어가거나 근처로 이사를 하는 경우에서 더 나아가, 아예 부모의 도움 여부를 따져 출산 계획을 세우는 이들도 늘었다. 결혼 2년차 정형식(36·서울 관악구)씨는 “결혼이 늦어 빨리 아이를 갖고 싶긴한데, 장모님이 내년 초 장인어른 퇴직하면 키워주겠다고 해서 시기를 맞출 생각”이라며 “처가가 가까운 수원이라 안심도 되고 어려모로 편할 것 같다”고 말했다.

# 달라진 풍경3. 임신·출산도 시기조정 “장인어른 퇴직하면 애 키워주신다니…”

부모에게 육아를 의존하는 일이 많다보니, 형제간의 갈등을 겪는 일도 있다. ‘서로 아이를 맡아달라’는 다툼이 아니라, ‘왜 아이까지 맡겨 늙은 부모님 고생 시키냐’는 다른 형제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여성 공무원이 <한겨레>에 자신의 처지를 소개한 이메일의 한 대목을 보면, 부모 등 친지에게 육아를 의존하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사무실 20여명의 여직원 중에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 시누이, 여동생의 도움없이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서 달랑 3명뿐입니다. 그래도 (힘들어서) 그만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철밥통이라 지탄받는 공무원 사회도 이런데, 다른 사기업은 불보듯 뻔하겠지요.”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석진환 기자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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