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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유수유 막는 몇가지
화장실에서 짠 모유 먹이려니 ‘찜찜’
집 나서면 수유 공간조차 없어 “모유 좋은거 알지만…”
#1. 점심 시간이 막 지난 오후 1시30분. 다시 젖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책상 밑에 놓아 둔 유축기와 아이스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죄를 진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유축기와 아이스박스를 들고 살며시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왠지 부장이 째려보는 것 같아 뒤통수가 찌릿하다. 여직원 숙직실에 들어가 임시방편으로 마련된 칸막이 뒤에서 젖을 짜기 시작했다. 잠을 자고 있던 한 여직원이 유축기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시끄럽다고 투덜대며 휴게실을 나간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젖을 짠 후 황급히 사무실로 돌아왔다. 아무리 빨라도 30분은 족히 걸린다. 자리를 자주 오래 비우는 것에 대해 부장이 언젠가 한 말 할 것 같아 걱정이 된다. (김미경·33·회사원)
#2. 지방출장이 두렵다. 유축기와 아이스박스를 바리바리 싸들고 가도 막상 젖을 짤 공간이 없다. 관공서를 포함해 어느 곳도 수유공간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지하철 화장실에 들어가 젖을 짰다. 하지만 불결한 공간에서 짠 젖을 아이에게 먹일 수 없어 짜놓은 젖을 다 버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모유가 건강에 좋다고 말만 하지 모유 수유를 할 공간이 없는데 어쩌란 것인가. (이은영·32·공무원)
#3. 3개월의 출산휴가를 끝내고 회사에 복직하면서 모유 수유를 포기했다. 산부인과에서 호르몬제를 처방받아 젖을 끊었다. 출퇴근시에 모유수유 기구들을 가지고 다니는 불편함은 둘째치고 직장 상사의 눈치, 공간 문제로 불가능에 가깝다. 본인 의지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박순미·30·회사원)
모유 수유는 전업주부에게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 핵가족에서 모유 수유를 지도해줄 가족의 도움도 없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모유 수유를 몇 번 시도해보다가 이내 ‘장난’이 아님을 깨닫는다.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모유수유 교육센터가 급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물며 ‘워킹맘’들에게 모유 수유는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모유 수유의 걸림돌은 신체적 문제와 사회적 문제로 나뉜다. 신체적 문제는 ‘젖몸살’과 같이 모유수유를 포기하게 만드는 육체적 고통을 말한다. 실제 많은 여성들이 젖몸살의 고통으로 인해 호르몬제를 처방받아 젖을 끊는다. 모유수유교육센터 ‘아름다운 엄마’에 따르면 모유 실패 사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젖몸살 때문이다. 이밖에도 유두열상(유두가 까지고 피가 나는것), 함몰유두와 같은 신체적 문제도 모유 수유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체적 문제들은 적절한 치료와 상담을 통해 호전 될 수 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적응되기 때문에 충분히 ‘극복 가능한 고통’이다. 정작 문제는 사회적 문제다. 집밖을 나서면 마음 놓고 아이에게 수유할 수 있거나 젖을 짤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다는 게 직장에 다니면서 모유수유를 시도한 엄마들이 말하는 실패의 주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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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의 모유수유방. 항시 개방이 아닌, 필요한 사람이 열쇠를 타와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이정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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