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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 일제 소독의 날에 하하농장을 찾아온 정부방역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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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김성만의 슬기로운 육식생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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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 일제 소독의 날에 하하농장을 찾아온 정부방역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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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금지명령’에 농장일도 전면중지 우린 다른 걱정에 앞서, 돼지 사료에 섞어 쓰고 있는 미강이 당장 없다는 게 생각이 났다. 그 날 정미소에 미강을 가지러 가게 돼 있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신선한 미강을 사료에 섞기 위해 최대한 빠듯하게 미강을 가지고 온 게 문제였다. 일단은 발효시켜놓은 사료와 유기농 배합사료를 최대한 써야 했다. 자의적 판단으로 이동은 금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이하의 벌금’과는 별개의 문제다. 지금은 힘 모아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 두 번째는 정육점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문제였다. 우리 농장 트럭은 돼지농장에서 돼지와 사료를 실어나르는 큰 역할을 하지만, 정육점 공사에서도 자재를 실어나르는 중역을 맡고 있다. 몇 가지만 마무리하면 공사가 다 끝나지만 그것도 최소 이틀 뒤로 미루어야 했다. 세 번째는 ASF가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정부에서는 최선을 다해 방역하겠지만,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린 3년여 준비 기간을 거쳐 이제 판매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준비하는 동안 쓴 자본들이 우리 부부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거의 없고, 농협에서 빌려온 것들이다. 순조롭게 팔아야 이자며 원금이며 갚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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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중인 정육점 공사도 최소 이틀 뒤로 미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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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돼지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ASF 아프리카돼지열병은 원래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야생돼지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예를 들어, 영화 라이언킹의 품바(혹멧돼지, warthog)에게는 이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무증상’이다. 감기 같은 증상도 없다. 병도 아닌 셈이다. 그런데 아프리카에 사육돼지들을 옮겨가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1921년 케냐에서의 일이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바이러스는 낯선 돼지 속에서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돼지 질병이 되었다. 병에 걸린 돼지들은 ‘돼지고기’가 되어 바다를 건넜고, 인간이 남긴 돼지고기는 돼지밥으로 재사용됐다. 바이러스는 그렇게 옮겨갔다. 아프리카를 떠난 바이러스는 사육돼지, 야생돼지 가리지 않고 감염을 시켰고, 폐사했다. 1960년대 서유럽을 강타하고 90년대에 잠잠해졌지만, 다시 2007년 동유럽을 강타하며 동아시아, 동남아시아까지 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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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비치고, 맑은 바람이 부는 넓은 공간에서 건강하게 자라도 전염병에는 속수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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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번씩 되뇌이는 “제발” 구제역이든 AI든 관계가 없을 때는 안타까움 뿐이었다. ‘병을 빨리 잡아야 할 텐데…’, ‘더는 퍼지지 않기를…’ 하면서 소들, 돼지들, 닭들, 농가들 어쩌나 싶었다. 양돈 농가가 된 지금은 안타까움에 간절함이 더해졌다.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문장 앞뒤에 “제발”이 수십 개, 수백 개 더 붙은 상황이랄까? 확진되고 하루 이틀 조용하면 이제 끝나는 건가? 하다가 또 늘어나고, 늘어나고 그렇게 지금껏 총 다섯곳으로 늘어났다. 한 군데씩 늘어날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암담하다. 정부의 방역이 성공적이길 간절히 바라며, 농장 자체적인 방역계획도 세웠다. 다른 차량의 농장 진입을 막고, 우리 트럭은 꼭 소독을 하고 들어온다. 이전에는 갈아신지 않던 신발도 외부에 다녀오면 꼭 소독한 신발로 갈아신고 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조하고 착잡한 마음은 사라지질 않는다. 글·사진 김성만 하하농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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