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②
뱅크시, ‘당신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군요’
초등 2학년인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이른바 ‘혁신학교’. 그래서 그런지 수업 풍경이 내가 학교 다닐 때와 사뭇 다르다. 지난봄에는 학교에서 봄맞이 패션쇼까지 열었다. 패션쇼가 열리기 전날, 아이가 설레어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봄 느낌이 나는 옷을 골라 입고 가야 돼!”라며 옷장에서 옷가지들을 다 꺼내놓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뭘 입고 가야 할지 궁리하던 아이. 결국 당일 아침에야 아이는 파스텔 색상의 옷과 하늘색 모자를 성심껏 고른 뒤 신나게 학교에 갔다.
그날 오후, 담임 선생님께서 직접 동영상으로 찍은 아이들 패션쇼를 보내주셨다. 몽환적인 음악을 배경에 깔고, 책상을 다 이어 붙여 만든 무대 위에서 멋지게 워킹을 선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났다. ‘엄마 미소’를 지은 채 한창 보고 있는데 몇몇 아이의 패션이 눈에 띄었다. 봄과 어울리는 옷을 입으라고 했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얼굴의 반을 덮는 커다란 마스크를 낀 칙칙한 모습의 아이. ‘큭큭. 어떻게든 삐딱하게 장난치려는 애들이 있게 마련이지’ 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며칠 뒤 엄마들 모임에서 의외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에겐 그게 바로 봄과 어울리는 옷차림이었다는 것. 봄은 그냥 미세먼지와 황사가 찾아오는 괴로운 계절일 따름이고, 미세먼지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온몸을 꽁꽁 싸맸다는 이야기였다. 그랬구나. 봄이라고 하면 화사한 꽃부터 먼저 생각나는 어른들의 봄이랑 다를 수밖에. 겨우 아홉살, 이 아이들이 겪어온 대부분의 봄이 ‘봄꽃놀이’와 별로 관계없는 ‘오염된 봄’이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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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시, <당신은 아름다운 눈을 가졌군요>. 200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2시간 동안 전시되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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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리 예술 분야 전문 작가.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검은 미술관> 등의 책을 썼다. 앞으로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코너에서 ‘여자사람’으로서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던 것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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