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1.16 05:00
수정 : 2019.01.1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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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교하지구 주민들이 지난달 27일 지티엑스 A노선 착공식이 열리는 고양 킨텍스 앞에서 ‘변경노선 결사반대’를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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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3기 새도시
②주거지 위협·환경 파괴, 사고 위험 GTX
시민 건강·환경파괴 충분한 협의없이 졸속 추진
전문가 “지하 50m 재난사고 땐 피해 상상 불가”
“모든 길은 강남으로” 강남 집중현상 강화될 듯
정부, B노선 예타 면제카드 ‘만지작’…갈등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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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 교하지구 주민들이 지난달 27일 지티엑스 A노선 착공식이 열리는 고양 킨텍스 앞에서 ‘변경노선 결사반대’를 외치며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박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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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3기 새도시의 광역 교통 대책으로 제시된 수도권 급행철도(GTX)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에선 지티엑스가 개통하면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 도심까지 20~30분이면 갈 수 있어 교통 인프라가 부족했던 수도권 외곽의 교통 환경이 크게 개선될 것이란 기대가 크다. 하지만, 다른 편에선 수조원이 투입되는 지티엑스가 안전과 환경, 강남 집중 등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안전성 우려 속 일사천리 강행
지난달 27일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지티엑스 에이(A)노선 착공식에서 정부가 내건 슬로건은 ‘여유로운 아침, 함께하는 저녁’이다. 지티엑스를 개통하면 서울로 출퇴근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정부가 3기 새도시 부지를 지티엑스 노선 주변으로 잡고 착공을 서두른 것은 서울 주택 수요를 분산시켜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확실한 신호를 부동산 시장에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첫 삽을 뜬 지티엑스 A노선에 대해 안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티엑스가 지하 40m 깊이에 터널을 뚫어 최고 시속 180㎞의 고속으로 달리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대응이 쉽지 않다.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지하 50m 대심도 터널에서 화재 등 사고가 날 경우 그 피해는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티엑스가 지나는 지역의 주민들은 지반 침하를 우려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A노선이 지나는 서울 강남·용산구, 파주 교하 주민들은 열차가 주거지 밑을 관통해 안전이 우려되고 주거환경을 침해한다며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강남구 청담동 주민들은 지난 9일부터 세종시 국토교통부 청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이어가는 중이다.
노후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해온 용산구 후암동, 갈월동, 동자동 주민대책위는 “주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지티엑스 노선이 원안과 다르게 바뀌었다”며 국토부에 지티엑스 A노선 변경에 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파주 교하 주민들도 “애초 하천 밑을 지나도록 설계된 노선이 열병합발전소와 1026가구가 거주하는 아파트단지를 관통하도록 변경됐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 환경파괴 우려와 공론화 부족도
지티엑스 A노선이 북한산국립공원을 관통할 뿐 아니라 36종의 법정보호종이 서식하는 곳에 차량기지를 만들고, 도심을 포함해 총 24개의 환기구가 설치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환경단체들이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전국 48개 환경단체가 소속된 한국환경회의는 지난달 27일 성명을 내어 “정치적 성과를 뽐내기 위해 절차적 민주주의를 망각한 졸속 착공”이라고 비판했다. 한국환경회의와 참여연대 등은 다음 주께 지티엑스 A노선의 추진 과정 전반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할 방침이다.
안전이나 환경 파괴와 관련한 우려가 큰데도 지티엑스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우용 서울환경연합 사무처장은 “지티엑스 건설로 인한 소음, 진동, 분진 등 문제는 용산과 강남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시민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부가 이런 문제에 대해 충분한 검토나 협의 없이 사업을 추진했다”고 말했다. 신영철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도 “일반적으로 민자사업 절차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면 최소 6개월~1년간 협상을 거쳐 실시협약을 체결하고, 금액·수익률 등이 정해지면 그 범위 안에서 1년 정도 실시계획을 만든다. 그런데 국토부는 실시협약과 실시계획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애초 제안했던 것보다 민간사업자에 더 많은 돈을 지원해줬다. 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밝혔다.
■ 모든 길은 강남으로…‘강남 불패’는
지티엑스는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남북과 동서를 엑스(X)자 형태로 잇는 3개 노선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착공한 지티엑스 A노선은 파주~일산~삼성~동탄을 잇는 83.1㎞로 2023년 말 개통할 예정이다. 양주~삼성~수원을 잇는 C노선(74.2㎞)은 지난해 말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 기본계획을 수립 중이다. 유일하게 강남을 지나지 않는 B노선(인천 송도~서울역~남양주 마석)은 아직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지티엑스가 개통되면 지하철로 80분 걸리는 일산~강남 삼성 구간은 20분으로 단축되고, 의정부~삼성 구간은 현재 74분에서 16분으로 줄어든다. 수원과 동탄에서 삼성까지는 각각 22분, 19분이면 갈 수 있을 전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삼성동은 지티엑스 2개 노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서울시는 삼성동 지티엑스 환승역에 잠실야구장 30배 크기인 16만㎡의 초대형 지하도시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강남을 향하고 있는 지티엑스 2개 노선이 이동 시간을 단축해 업무, 쇼핑, 문화 등 분야에서 강남권 집중을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박원갑 케이비(KB)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지티엑스가 서울 주택 수요 분산 효과는 어느 정도 거두겠지만, 강남 접근이 쉽고 빨라지니 1~3기 새도시와 수도권 외곽 상권, 지역 경제는 타격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도 “서울의 주택이 부족하다며 주변에 공급을 늘리고 지티엑스와 같은 광역교통망을 만들어 접근성을 높이면 오히려 중심지로 인구가 더 몰려들 수 있다”고 말했다.
■ 정부, B노선 예타 면제 카드 ‘만지작’
정부가 3기 새도시 남양주 왕숙지구의 광역교통 대책으로 제시한 지티엑스 B노선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예타 면제)를 놓고도 갈등이 빚어진다. 기획재정부가 진행 중인 예타 조사와 별개로 대통령 균형발전위원회도 B노선의 예타 면제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 노선은 인천 송도~서울역~남양주 마석을 잇는다. 인천 연수·남동·부평·계양구와 경기 부천·남양주·구리시, 서울 구로·중랑구 등 수도권 9개 지자체장들은 B노선 예타 면제를 촉구하는 주민 54만7220명의 이름이 담긴 서명부를 지난 15일 기획재정부에 전달했다. 이들은 “수도권 동·서부 지역의 교통 수요는 꾸준히 늘어 현재의 교통인프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지티엑스 B노선은 수도권 지역 주민들의 교통 접근성 향상과 함께 수도권 전역의 상생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이민원 광주대 교수(혁신도시 특별위원장)는 “예타 면제는 비수도권에 한정해 논의해야지 수도권을 대상으로 검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국가균형발전위원)는 “긴급하지 않은 수도권 교통 시설에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면 곳곳에서 균형 발전을 내세우며 예타 면제를 요구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예타 자체의 실효성이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인철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국장은 “지티엑스와 같은 갈등 유발이 큰 사업일수록 절차를 충실히 밟고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이런 갈등 요소들에 대해 개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만 김미향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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