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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원자력 관련 주요 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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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첨단산업이 뛴다] 1부 ‘자주적 과학기술’의 저력
핵무기 만들던 기술로 육종·신약개발까지
중국 쓰촨성 청두는 해발 3000m가 넘는 어메이산 등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천혜의 요새인 까닭에 <삼국지>의 유비가 제갈공명의 훈수에 따라 숨어들었던 곳이다. 신중국 성립 이후 중국공산당은 이 요새지에 당시 중국이 가장 중시하던 핵 관련 시설을 숨겨뒀다. 중국핵동력연구설계원, 핵공업서남물리연구원, 중국공정물리연구원 등이다. 이들은 국가 기밀기관이었기 때문에, 과거엔 언론에 드러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사정이 달라졌다.
시장에 뛰어든 기밀기관들=지난달 3일 청두에서 ‘핵’과 인연이 있는 연구기관 30곳이 모여 ‘쓰촨성 핵기술 응용협회’를 구성했다. 여기에는 핵동력연구설계원 등과 더불어 쓰촨성 원자핵응용기술연구소, 생물·핵기술연구소, 쓰촨대 원자핵과학기술연구소, 청두이공대 응용핵기술학원 등이 참가했다. 천하오 쓰촨성 원자핵응용기술연구소 소장은 이날 “이 단체를 구성한 목적은 청두를 핵기술 응용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청두의 원자핵응용기술연구소는 90년대부터 방사선 피폭을 통한 종자개량을 진행해, 2003년 기존 종자보다 수확량이 3~8% 더 많은 개량종 벼 ‘II여우838’을 개발하기도 했다. 쓰촨성은 핵 응용산업을 좀더 본격화해 2010년까지 100억위안(약 1조2500억원)의 부가가치 창출을 목표로 삼고 있다.
쓰촨성이 핵기술 응용산업에 적극 나설 수 있었던 건 2200여명의 대량 연구·기술진과 경수로 실험로 등 연구설비를 완비한 핵동력연구설계원 덕분이다. 이 연구원은 1965년 설립돼 70년 중국 최초의 가압수로형 핵동력반응로 설계와 80년 아시아 최대의 고출력 동위원소 실험로 설계에 성공하는 등 40년 동안 꾸준한 연구성과를 쌓아왔다. 앞으로는 이런 기술과 경험을 방사선을 이용한 검측·육종·신약 개발 등 산업화에 응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핵기술 응용에 눈을 돌린 건 쓰촨성만이 아니다. 후난성 정부도 지난해 9월 중국핵공업집단과 협약을 맺어 후난성 이양시에 핵기술 응용산업 기술구를 설치하기로 했다.
각 지방정부가 핵기술 응용산업 유치에 적극 나서는 건 2004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민간용 비동력 핵기술 산업화 계획’을 발표하고 나서부터다. 차이샤오쥔 국가발전개혁위 항공우주핵에너지산업추진사무실 주임은 “5년 안에 중국 핵기술 응용산업을 1000억위안(약 12조5000억원) 규모에 이르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야흐로 중국에서 새로운 산업 하나가 약동하는 순간이다.
체르노빌의 공포여, 안녕!=중국의 핵기술 응용산업은 걸음마 단계지만 폭발적인 성장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맨발로 뛰어든 게 아니라 핵무기와 원전 개발 등 40년 이상 쌓아온 연구경험과 두터운 연구·기술진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장종화 한국원자력연구소 원자력수소사업추진단장은 중국 핵산업의 강점으로 △국가의 전폭적 지지 △완비된 하드웨어 △오랜 연구와 경험 있는 연구진 등을 꼽는다.
선진기술의 중간도입 전략을 택한 한국과 달리, 중국의 핵산업은 설계에서 제작·운영까지 거의 자체 기술로 해결했기 때문에 관련 하드웨어를 완비하고 있다. 가령 한국은 원자력연구소 안에 핵연료 없는 ‘연구로’가 한 기 있을 뿐이지만, 중국은 가스로·고속로·핵융합로·일체로·경수로·중수로 등 종류별 실험로를 모두 확보하고 있다.
중국의 또 한가지 강점은, 핵설비 분야의 ‘거장’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자로 건설 같은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복잡한 설계도면을 업무별로 분장해줄 수 있는 지휘관이 필요하다. 중국엔 그런 ‘시스템 인테그레이터’들이 적지 않다. 불행히도 한국엔 아직 한 명도 없다. 우린 그런 대형 설비를 스스로 만들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강점을 배경으로 2004년 칭화대 원자력연구원은 세계 최초로 고온가스로를 제작해 안전성 시험에 성공했다. 고온가스로는 원자로의 온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가동이 중단되더라도 체르노빌이나 드리마일처럼 폭발사고를 일으키지 않고 스스로 식도록 설계된 피동형 원자로다. 2004년 칭화대 연구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전문가들 앞에서 실험로 온도를 높인 뒤 냉각용 제어봉을 뽑아버리는 실험을 했다. 냉각제가 없음에도 고온가스로는 폭발하는 대신 서서히 식은 뒤 스스로 멈춰, 높은 안전성을 갖췄음을 증명해냈다. 지금까지 경수로나 흑연감속로는 대량의 냉각수가 필요해 주로 바닷가나 큰 강가에 세웠으나, 고온가스로는 내륙지방에도 세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핵무기와 핵잠수함 등 국책 연구에서 핵산업의 하드웨어를 건설한 중국은 이제 원전과 핵기술 응용산업 분야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첨단 중국’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청두·베이징/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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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 도심에서 100㎞ 떨어진 창핑 부근의 칭화대학 원자력연구원에는 중국이 자체 기술로 설계한 세계 최초의 고온가스로 실험로 등이 설치돼 있다. 연구원 쪽은 ‘국가 기밀 단위’이기 때문에 외국 기자의 취재 신청을 받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베이징/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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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융합기술 중국한테 배워야” 핵 응용산업 선진국 수준
원자력 수소 등 협력 필요 송순자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은 2004~2006년 세 해 동안 베이징의 한·중원자력수소생산센터 소장으로 근무하면서 중국 원자력산업을 살펴보고 돌아왔다. 지난달 9일 대덕 연구단지에서 만난 송 연구원은 “국가 차원의 꾸준한 추진력이 오늘날 중국의 원자력산업을 뒷받침하고 있다”며 “적어도 핵융합기술 등 분야에선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배울 게 많다”고 말했다. -핵무기 이외에 중국의 원자력 산업 수준을 한국과 비교하면 어떤가. =중국이 앞서 있다. 중국은 이미 상업용 원전과 중수로 연구로를 수출한 바 있다. 중국은 1991년 300MW급 원전 친산 1호기를 독자 기술로 설계·건설해 세계 7번째 원전 기술 보유국이 됐다. -중국은 원전 기술을 어떻게 확보했으며 어느 수준인가. =중국은 프랑스의 프라마톰(Framatome), 캐나다의 캔두(CANDO), 러시아의 가압수형경수로(VVER) 등 다양한 원자로를 도입해, 비교 분석 연구해왔다. 최근엔 미국의 피동형(고장이 나도 스스로 냉각돼 정지하는 방식) AP1000의 기술을 저장성 하이옌 친산 3호기(CNP1000)에 도입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AP1000을 통해 중국 독자 모델인 CNP1000의 기술적 문제를 보충하면 중국은 더 이상 외국의 원자로를 도입하지 않고 독자 설계로 수출까지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핵기술 응용산업은 어느 수준인가. =중국은 11차 5개년 계획 기간(2006~2010년)에 핵기술을 정보통신·재료·의학·생물·환경 등과 교차 융합 연구를 추진해 공업·농업·의료·위생·환경·자원탐색·공공안전 등 분야로 응용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최근에는 반도체 가공, 의료용 영상기, 방사선 치료, 식품 가공, 고분자 가공, 방사선 육종, 의료기기 등 분야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특히 육종산업은 식량 증산의 필요 때문에 이미 선진국 수준이다. 과학기술부가 원자력 인력 양성을 위해 해외 연수기회를 줄 때 많은 연구원들이 서방국가를 희망했으나 그는 “칭화대에 원자로가 3개 있다는 얘길 듣고 중국을 희망했다”며 “원자력 수소처럼 한국이 절실한 항목을 중심으로 중국과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연구자들과 3년간 동고동락한 고된 연수기간을 ‘행운’이라 여기는 송 연구원은 “영어가 전혀 안 통하는 중국 원로 과학자들과도 격의 없이 중국어로 소통하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한국 원자력계의 ‘중국통’이다. 대덕/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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