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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7 18:19 수정 : 2019.11.28 02:35

권도연 ㅣ 샌드박스네트워크 크리에이터 파트너십 매니저

그룹 소녀시대의 대표곡 ‘지’(Gee)를 처음 들었던 날을 기억한다. 수능 준비로 한창이던 겨울 독서실,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의 마지막 신청곡이었다. 별이 쏟아지듯 차르르한 도입부 음악과 이어지는 경쾌한 멜로디 라인, 단순 반복적인 가사가 귀에 꽂혔다. 이내 집으로 돌아와 본 뮤직비디오는 눈길까지 사로잡았다. 알록달록한 스키니진은 첫눈에 보기에도 예뻤고, 무대는 유독 화려하고 반짝거렸다. 그리고 화면 속엔 내 또래의 아이돌 스타가 있었다.

“어제 그 신곡 들어봤어?” “거봐, 내가 뜰 것 같다고 했지!” 교실은 여느 무대에 비해 조용하지만 제법 시끌벅적한 공간이다. 공부와 유행의 속도를 함께 따라가는 일은 여간 바쁜 일이 아니다. 진득해야 했고, 동시에 기민해야 했다. 우리는 틈날 때마다 새로 나온 신곡과 떠오르는 신예 스타들을 이야기하며 교실 밖을 상상했고 동경했다. 그 공간에서 아이돌 스타는 충분히 우정의 대상이었다.

원더걸스, 빅뱅, 카라 등 2세대 아이돌 그룹의 전성기와 함께한 학창 시절을 곱씹어본다. 인터넷의 출현으로 손쉽게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역사가 다음 카페에서 시작됐다. 각 소속사는 꾸준히 낮아진 데뷔 연령대와 늘어난 그룹당 멤버 수를 선보였다. 음원 시장마저 디지털화되어 정규 앨범보다는 수록곡이 적은 싱글 앨범이 보편화됐다.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등장은 대중이 느끼는 아이돌 스타와의 거리감을 좁혔다.

밀레니얼의 아이돌 스타는 친근했다. 신곡도 자주 나왔고, 방송도 자주 나왔다. 연령대도 유독 비슷했다. 수능시험을 치러 가는 아이돌 스타의 등교 사진이 연예면 기사로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부터 같다. 다수의 또래들이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걸 지켜보며 동경과 환상, 응원이 섞였다. 어린 스타의 화려한 전성기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또래의 연예인이 브라운관을 넘어 나와 친근감을 형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기에 노출됐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가수 설리가 생전 어느 대학 교수들의 허락을 받아 청강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해당 수업의 학생들은 평범한 대학 생활을 하고 싶은 것 같으니 사진이나 사인을 요청하지 말자고 서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다. 그는 자신을 연예인으로 대접하지 않고 하나의 사람으로 대해줘서 굉장히 고마워했다고 한다. 교실로 돌아가고 싶어 한 무대 위 스타. 그리고 그에 응해줬던 학생들. 이들 사이의 감정을 나는 우정이라고 생각한다. 교실에서 우리에게 전해준 즐거움과 대리만족감으로 쌓아 올린 고마운 감정이다.

잇따른 참담한 소식에, 모두가 막막한 슬픔과 패배감을 느끼는 이유도 동일하다. 같은 세대를 살아왔으나 다른 공간을 살아온 이들이다. 이제 얼핏 사회의 어려움을 알 것도 같은 나이가 되어서야 그들의 고충도 조금씩 공감되기 시작했다. 우리의 동경 너머에 끝없는 어려움이 있었겠다는 걸 깊숙이 알게 될 즈음 별이 된 그들. 사회적으로 성공한 친구의 죽음을 본 것만 같은 황망함과 우울감이 큰 파도처럼 덮쳐왔다.

기술은 스타와 대중의 간극을 좁히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호가 소비의 큰 축을 차지하게 된 현대 사회에선 더욱 당연하다. 다만 방송 매체가 확대된 지금, 인플루언서라는 이름으로 익명의 다수에게 노출되는 어린 스타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가까워진 거리감만큼 감정의 배출에도 거리낌 없다. 지켜보고 있자면 마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오토바이처럼 아슬아슬하다. 올바른 가치관과 자존감을 가질 역량을 준비하는 시기를 제대로 거치지 못한 채로 대중에게 나를 비춘다는 건 그만큼 위험한 일이다.

‘악플을 보니 도저히 잠이 안 오더라’는 고민을 털어놓던 지인이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는 말로 안부를 전해온 적이 있다. 어떻게 익숙해지고 괜찮아질 수 있는 것들인지 이해할 수 없어 그 말을 듣는 것만으로 왠지 미안했다. 수없이 많은 우리의 인터넷 스타들은 오늘도 비슷한 고민을 했을 것이다. 혼자 두려움에 떨며 눈물 흘렸을 모습이 눈에 선해서 동시에 슬퍼진다.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우리 가까이에 있다. 가까워진 간극만큼 의리의 책임도 커지는 법이다. 우리는 ‘친구’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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