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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널고 있는 여인. 사진 험프리 스펜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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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시대의 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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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의 민첩한 손놀림은 랭커셔의 대규모 면직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이 지역의 눅눅한 공장들이 뽑아내고 엮어낸 면직물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임금은 고작 주당 몇 실링에 불과했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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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두 노동자의 자녀들이 런던 이스트엔드에서 자선단체들이 나눠주는 구호품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 폴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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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경 빈민가 아이들이 상당히 저렴하지만 그들의 형편으로는 꿈도 꾸지 못할 진열품들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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휫비에 있는 에스크 강에서 일꾼들이 최초의 전기 케이블을 설치하고 있다. 사진 프랭크 메도 서트클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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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 제조공이 장차 비극적 운명을 맞이하게 될 타이태닉 호의 오른쪽 프로펠러축을 장착하고 있다. 이들은 비교적 임금수준이 높았지만 작업환경은 매우 위험했다. 배가 점차 커지면서 리벳공들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30미터 높이의 허술한 작업대에서 일해야만 했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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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트의 틸먼스톤 탄광에서 일하는 이 광부들은 서 있는 것만 해도 행운이었다. 비좁고 허름한 수많은 갱도에서 열기와 먼지에 휩싸인 채 희미한 어둠속에서 무릎으로 기어 다니며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사진 사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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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과 고용주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격렬한 산업분쟁이 확산되었다. 1914년 7월에 석탄 운반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동안 런던의 세인트팬크라스에 서 있던 한 아마추어 광부의 모습이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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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9월, 철도 파업 참가자들이 철도 정상운행에 협조하는 자원봉사자들과 마찰을 빚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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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존 불〉에 매력적인 광고가 하나 실렸는데, 그것은 사기였다. 이 잡지의 편집인이자 소유주인 하원의원 호레이쇼 보톰리는 사실 이 시대의 위대한 허풍선이였다. 그는 당첨자 없는 복권과 상환금 없는 채권으로 독자들을 속였다. 또 다른 사기꾼인 로버트 맥스웰의 선임자 격이었던 그는 결국 1922년에 사기 혐의로 유죄선고를 받았다. <북폴리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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