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4.19 20:59
수정 : 2019.04.19 10:05
권혁란의 관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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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있는 요양원 마당에 핀 살구나무. 할머니들이 꽃이 예쁘다고 좋아하신단다.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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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라는 책 제목을 본 것은, 딱 그 상황이 내 것이 될 수도 있을지 몰라 불안이 생겨날 즈음이었다. 책이 나온 2015년 7월엔 스리랑카에 있었으므로 듣도 보도 못했고, 연세 지극하신 엄마도 노환은 있었을지언정 건강하신 편이었고, 곁엔 큰오빠 내외가 있었다. 스리랑카에 있는 2년 동안 여러 사람이 부랴부랴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는 걸 봤다. 가족 중 연로하신 분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었다. 우리 가족은 무고하고 무탈한지 안부를 물어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음력 5월5일, 단옷날이 되면 바나나·파파야 같은 열대과일 몇 송이와 스리랑카 향과 초를 켜고 아버지 기일을 기억하는 혼자만의 상을 두 번 차렸다. 귀국을 한 달 정도 앞둔 날에야 엄마의 병을 알게 되었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셨으나 의식을 찾으셨으니 그 멀리서 걱정할까 봐 부러 알리진 않았다고 했다. 봄날, 꽃들이 환한 길을 따라 구순이 다 돼가는 엄마가 계신 요양병원을 찾아간 것이 귀국 후 첫 외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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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와 놀이를 겸한 색칠공부시간. 유치원과 똑같다. 오래 그리고 이름을 써붙인다.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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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만 있어 납작하게 눌린 희고 짧은 머리칼, 헐렁한 자루 같은, 디자인이라곤 병원 이름 타이포그래피밖에 없는 색 바랜 환자복, 하루 반 넘게 주무신다는 옆 침대 할머니의 하얀 자작나무 껍질 같은 팔다리, 휠체어에 옮겨 앉기까지 한참이구나 싶게 느린 움직임과 생각을 뒤집는 엄청난 무게로 얹혀 오는 엄마의 몸을 만났다. 아니나 다를까. 구순의 엄마는 눈이 짓무를 만큼 눈물바람을 일으켰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 속 ‘봄밤’에 나오는, 맨날 눈물로 시작하고 눈물로 끝나는 늙은 엄마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눈물은 습관일 뿐 이유가 없는데. 누군가 돌보지 않으면 안되는 존재, 목숨을 타인의 손길에 맡겨야 살 수 있는 존재, 애기와 노인. 엄마는 애기와 다름없이 되었지만 불행히도 애기가 갖고 있는 절대의 무기 ‘귀여움’이 없는 노인이었다. 머지않아 모든 인간이 겪어야 할 과정일 뿐. 엄마 침대와 나란한 네 개의 침대에 누운 할머니를 돌보는 간병인과 인사하고 아래층에 가서 노래봉사를 나온 사람들의 율동을 구경시켜드렸다.
간병과 수발을 포함해 돌보는 일을 가리키는 개호(介護). 이 단어를 <나 홀로 부모를 떠안다>에서 처음 배웠다. 노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돌보거나 노인끼리 서로를 돌보는 ‘노노 개호’, 치매 노인을 돌보다 함께 인지장애를 겪게 되는 ‘인인 개호’, 개호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돌보던 이를 살해하는 ‘개호 자살’ ‘개호 살인’까지, 일본 르포지만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는 걸, 바로 내 앞에 닥친 일이라는 걸 바로 알았다. 주위 사람들도 똑같이 겪고 있었다. 누구는 치매에 걸린 부모 중 한 분을 모실 요양원을 찾고 있었고 누구는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요양원을 찾아가고 있었다. 뵐 때마다 쇠락해지는 부모를 보면서 느끼는 죄의식과 애달픔, 자식들끼리의 역할분담과 비용분담 사이에서 벌어지는 민망한 다툼이나 갈등은 흔한 이야기지만 고통과 부담은 각각 온전한 개인의 몫이었다. 애절한 사모곡·사부곡이 여기저기 흘러넘쳤고 얼마 후면 담담하나 텅 빈 부고가 들려왔다. 각자 짊어진 노인 돌봄의 짐은 무겁지만 매듭은 헐거워 다들 추스르느라 허둥지둥하고 있었는데, 짐을 진 나이 든 당사자들 옆으로 장수시대를 넘어 ‘백세 시대’를 부르짖는 소리가 울렸다. 그렇게 우리 또래는 거의 부모를 요양원에 보냈거나 보내야 하거나 가까운 어느 날 그곳으로 갈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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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시간엔 노래도 하고 체조도 하고 물리치료도 한다. 만화영화를 보시는 할머니들. 사진 권혁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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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가시기 전에 여섯 자식이 한 달에 얼마를 낼 것인지 어디로 정할 것인지 의견을 모았다. 쓰러진 엄마를 업고 뛰던 나이든 큰아들도 뇌경색이 와서 수술한 환자에다 칠순이 되었고 40년 넘게 시부모와 함께 살던 며느리도 충격에 이어 우울증을 앓게 되었으므로 엄마가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환자이자 노인인 셋이, 계단 많고 의료시설이 없는 시골집에 살기는 어려웠다. 남은 다섯 자식도 집으로 모셔가지 못할 상황은 차고 넘쳤다. 서로를 향한 기대와 원망이 엇갈렸다. 오빠는 아들이잖아, 언닌 맏딸이잖아. 언니네 집은 방이 많잖아. 나는 막내잖아. 내 속에 들었는지도 몰랐던 생각들이 민망하게 튀어나왔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던 시절 왠지 그립고 애잔하고 슬펐던 엄마에 대한 감정은 사라져갔다. 마침내 살구나무 꽃이 환하게 핀 요양원에 모셨다기보다는 넣어드린 후, 박연준 시집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의 ‘뱀이 된 아버지’ 첫줄, ‘아버지를 병원에 걸어놓고 나왔다’ 부분을 완벽하게 공감했다. 어쩔 수 없었다는 죄의식과 집보다 안전하고 자식보다 요양사와 간호사와의 관계가 편안할 거라는 정당한 합리화가 뒤범벅이 되어 시의 마지막을 읽었다. “나는 원래 느리단다. 나처럼 길고, 아름답고, 축축한 건 원래가 느린 법이란다. 그러니 얘야,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어둠이 고개를 다 넘어갈 때까지 눈을 감으렴.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해주렴.” 나이 듦과 시간, 죽음에 대한 속 깊은 성찰은 언감생심,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건 갈 때마다 늘어나는 엄마 몸의 흑반점과 당혹스럽게 다시 닥친 내 엄마와 풀어야 할 숙제였는데, 이미 나도 나이 들어가는 엄마가 되어있었다. (계속)
권혁란 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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