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2.22 06:00
수정 : 2019.04.1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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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걸이 된 스리랑카 열두 살 소녀 따루. 사진 성창기, 권혁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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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생각] 권혁란의 관계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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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걸이 된 스리랑카 열두 살 소녀 따루. 사진 성창기, 권혁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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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여섯 시 이십칠 분이라고 했다. 열두 살의 작은 소녀가 ‘빅 걸’(Big Girl)이 되는 의식으로 첫 목욕하는 시간. 어떻게 소녀가 초경을 시작하고 끝나는 날을 딱 맞춰 리틀 걸에서 빅 걸이 되는 성인식을 치르는 걸까 궁금했는데, 우리말로 길일, 손 없는 날, 상서로운 날을 스님이나 영매가 택일한다고 했다. 아름답고 훌륭하다. 받아놓은 박명의 그 시간, 소녀는 집 뒤꼍 우물에서 하얀 옷을 입은 채 목욕을 시작했다. 머지않아 아기를 낳을 거라는 소녀의 이모가 한 손으로 부른 배를 아우르며 흑단 같은 소녀의 머리칼 위로 연거푸 물을 뿌렸다. 열대의 나라라 한들 새벽 우물물은 얼마나 차가울까. 맨발의 소녀가 덜덜 떨었다. 정한 기운을 품은 온갖 약재를 넣어 우려낸 물로 딸의 몸을 씻어주면서 이제 어른이 되었다는 것을 온천지에 알리는 일은 엄마의 큰 기쁨이라는데, 소녀의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들었던 대로 엄마는 깊은 병중이었다. 성치 않은 얼굴을 감추느라 딸의 기쁜 성인식에 나서지 못하고 자꾸 뒷걸음질로 숨었다.
물방울을 떨구며 한 손에 향불을, 다른 손엔 흰 천에 싸인 끼리밧을 들고 나온 소녀가 엄마의 맨발에 엎드려 큰절을 했다. 창졸간 초대받은 다른 나라 낯선 이인 나마저도 들이단짝 중요 하객인 양 축하를 들이대는 순간에도 진짜 엄마는 이웃집 구경꾼보다 더 뒷자리에서 서성거렸다. 아빠와 삼촌이, 언니와 사촌들이, 이웃 사람들이 모두 ‘이제 엄마가 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했다’고 축하하며 파란 드레스로 바꿔 입은 소녀의 사진을 찍었다. 스리랑카 남쪽 시골 마을 빅 걸 파티의 주인공 따루(별이란 뜻의 소녀의 애칭)는 연예인 부럽지 않을 모습이었다. ‘정말 행복하다’며 따루는 수줍은 와중에도 잘 웃었는데 엄마와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자랑스럽지 못해서 차마 나서지 못하는 엄마, 다가가려다 멈칫거리는 아직 앳된 얼굴의 딸. 처음 보는 정경인데도 익숙하기 그지없는 까닭은 어린 날의 나와 내 부모의 모습이 저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남과 달랐던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자식들의 기쁜 날들을 함께하지 않았고, 못했다. 사돈의 팔촌까지 다 오는 결혼식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마스크를 하지 않고 장에 나온 아버지를 피해 걸었다. 굳이 본 척도 하지 않음으로써 아버지는 나와 어떤 관계도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엄마는 어린 날 용암 같은 불에 데어 형체가 뭉그러진 조막손을 갖고 있었다. 평생 손수건으로 감싼 엄마의 오른손은 오히려 더 두드러져 보였다. 감출수록 드러나는 부끄럽고 아픈 부위를 가진 사람, 차라리 부재하고 싶어 존재를 지워버리는 사람의 딸로 자란 탓에 따루와 따루 엄마가 떨어져 있는 거리와 몸짓의 의미를 한꺼번에 다 알 것 같았다. 이봐요들, 믿어지지 않겠지만 손잡을 시간이 많지 않아요. 아픈 얼굴 만져줄 시간이 없어요. 금빛 해가 떠오르고 웃음소리 낭자한 파티의 정점에서 엄마를 딸들 옆에 앉게 하고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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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라 소녀의 빅걸 파티. 두 딸을 둔 엄마로서 내 딸들의 성인식인 양 축하해주었다. 권혁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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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엄마가 돌아가신 지 26일째. 완전한 비움과 완벽한 소멸로 향해 가는 혼수상태의 엄마 병상에서 한 일이라곤 부끄러움마저 놓아버린 엄마의 조막손을 잡은 것뿐이었다고 말하진 않았다. 따루에게 불러주고 싶은 노래는 촬영이 끝난 후 혼자 불렀다. I am a big big girl in big big world. It is not a big big thing, if you leave me. 이프 유 리브 미.
작가, 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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