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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사이프 회원들이 함께 모여 웃고 있다. 국제 학생 동아리인 사이프가 우리나라에 처음 만들어진 건 2004년 연세대에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평한 경제적 기회를 갖도록 활동하는 것이 동아리의 목표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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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돌 창간특집] 다른 금융 다른 사회
캠퍼스 달구는 ‘사회적 경제’ 연구 바람
연세대의 ‘사이프’(SIFE·Students in Free Enterprise)가 가장 대표적이다. ‘세상을 바꾼다’라는 구호가 이들을 잘 설명해 준다. 경제적 약자들의 사회적 삶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를 짜서 구현하는 것이 이들의 활동이다. 좀더 거창하게 말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업 경험을 하는 것”이 목표다.
이들은 2005년과 2006년 새터민과 미혼모를 돕는 사업을 수행했다. 자본주의에 익숙지 않은 새터민 청소년들에게 허위·과장 광고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기초적인 경제교육을 하는 한편, 시장경제 원리를 직접 체험하도록 천연비누를 만들어 파는 사업도 벌였다. 미혼모 2명에게는 대학과 기업의 후원을 받아 인터넷 유아복 판매사업과 웹디자이너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도움을 준다’고 하니, 봉사활동 아니냐는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봉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게 사이프 쪽의 설명이다. “봉사는 자신이 가진 것을 쏟아내는 것이지만, 사이프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비즈니스 경험을 통해 자기 내부의 역량을 이끌어내고 이로써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컨설팅 중심의 사이프와는 달리 연구·분석 중심으로 움직이는 동아리도 있다. 지난해 9월 서울대에 만들어진 씨에스아르(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네트워크다. 박동천(사회복지학과 대학원 1년)씨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관심은 많았지만 마땅히 배울 만한 곳이 없어” 스스로 동아리 꾸리기에 나섰다. 대학에 거의 마련되지 않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강연회를, 직접 전문가를 초빙해 열어, 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10여명의 회원이 모였고, 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사회·환경·지배구조에 초점을 맞춰 기업 경영을 연구·분석하고 평가한다. 이를 바탕으로 직접 사회책임투자(SRI) 펀드를 운용하는 한편, 각 대학에서 활동 중인 기업의 사회적 책임 관련 동아리를 묶을 계획을 갖고 있다. 이 밖에 프로젝트로 지역사회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할 생각을 갖고 있다. 박씨는 “정부에서 정책이 나오지만 현재 시장 중심으로 환경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며, 기업도 정책을 만드는 중요한 기관이 돼 가고 있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사회적 관심은 계속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새터민’ 경제교육하고 사회책임 잣대 기업 평가
약자에 초점둔 벤처 창업도…“진보의 실용적 실천”
직접 사회적 벤처기업을 만드는 대학생들도 있다. 창업동아리인 서강대 블랙박스다. 일반 벤처 창업을 목표로 하며 꾸려진 동아리지만, 최근 한국쏘시얼벤처대회에서 동아리의 두 팀이 입상했다. 동아리 내 소팀인 ‘아이의 나이’와 ‘희노’ 팀이 각각 비만아동 전문 유치원 ‘블랙박스 보육’과 노인인력 전문 파견업체 ‘블랙박스 희노’를 만들어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이처럼 대학가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 쪽에 관심이 부쩍 늘고 있는 데 대해, 전문가들은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사회와 함께 변화의 발걸음을 맞추면서 동시에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은 “1970~80년대 대학생들이 지사적 방식으로 사회에 발언했다면, 이젠 대학생들의 발언 방식이 비즈니스맨 스타일로 바뀌는 것 같다”며 “과거 대학생들이 가치에 중점을 둔 데서 진화해, 진보적 가치를 이야기하되 실용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세계적으로 이런 흐름은 일반화되고 있다”며 “기업이나 투자 등 가치와 상관없을 것 같은 분야에 가치가 개입되는 흐름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쏘시얼벤처대회 사무국 집행대표를 맡고 있는 이철영 아크투자자문 회장은 “양극화 현상, 환경 파괴, 인간성 파괴 등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게 생겨나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자발적으로 시민사회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적 흐름이며, 이런 흐름이 한국에서도 생겨나고 있다”며 “대학생들도 이런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젊은이들이 개인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의 연결에 대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이런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이들이 기업을 만들거나 기업에 들어가서 일하게 되면 이런 이슈들이 더욱 확장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한균 국민대 교수(경영학부)는 “대학생들이 취업만 생각하다가 기업에 들어가 경영의 윤리적 측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고 한 3년 정도 지나면 그냥 순응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미리 고민할 기회를 가진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하지만, 체계적 교육 프로그램이 아직 없다는 게 아쉽다”고 짚었다. 노 교수는 “이런 학생들이 늘어나면 기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의식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며 “다만 윤리적 문제를 돈을 버는 또다른 기회로 생각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진철 윤은숙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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