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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투발루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푸나푸티 공항 활주로에서 잠을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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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우리가 상상하는 공항 말고도 다른 공항이 있습니다. 공항은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 되기도 하고, 일에 지친 광산 노동자가 고향에 돌아가는 터미널이 되기도 하고, 가진자 못가진자가 함께 노는 광장이 되기도 합니다. 적도의 투발루에서 알래스카 오지와 북극 가까운 섬까지 세계의 이색 공항을 소개합니다.
별이 쏟아지는 활주로에 누워봐요
평등하고 아름다운 투발루 푸나푸티의 낭만을 아십니까
투발루 푸나푸티 공항의 공항코드는 펀(FUN)입니다. 그래서인지 투발루 사람들은 공항에서 ‘즐겁게’ 놉니다. 축구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잠을 자지요. 서울 여의도 광장도 옛날엔 활주로였다지요? 활주로가 광장이 돼서 서울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았듯이, 투발루 사람들은 푸나푸티 공항에서 그렇게 놉니다. 다만 푸나푸티 공항에선 지금도 비행기가 뜨고 내린다는 점이 다르지요.
개들이 낮잠을 자고 돼지가 뛰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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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에 가끔씩 돼지가 돌아다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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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월요일과 목요일 12시30분에 착륙합니다. 비행기가 들어오기 30분 전, 푸나푸티 섬에는 ‘앵~’하고 사이렌이 울리지요. 그러면 섬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택시를 타고 공항 건물로 몰려듭니다. 가족과 친척·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푸나푸티 섬 인구는 4500명밖에 되지 않거든요. 한 사람 건너면 친구이고, 두 사람 건너면 친척입니다. 그래서 매주 두 번, 섬사람들은 공항에서 만납니다.
잠깐! 투발루가 어디냐고요? 남태평양의 섬나라입니다. 피지에서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2시간30분 거리에 있지요. 그 사이엔 아무 것도 없어요. 세계지도를 펼쳐보세요. 태평양의 푸른 여백에 검은 점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 점 중에 하나가 바로 투발루입니다. 아마 지구 온난화로 말미암은 해수면 상승 때문에 곧 사라질 거라는 얘기를 신문이나 방송에서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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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행 항공기 ‘에어피지’의 급유가 늦어지자 기장과 승무원이 그늘 아래서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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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도 안 되는 짧은 활주로여서 비행기는 굉음을 내며 브레이크를 밟습니다. 활주로의 왼쪽 끝에 착륙해서 오른쪽 끝에서 가까스로 기체를 세우지요. 그리고 360도 돌아 다시 달려와 단층짜리 공항 건물 앞에 섭니다. 비행기 문이 열리면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주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휴가 나온 열댓 명의 젊은이들이 걸어 나옵니다. 세관원들은 이들의 바다색 투발루 여권에 입국 도장을 후닥닥 찍어주고, 옆 사무실로 건너 가서 출국 도장을 찍어줍니다.
45분 뒤, 다시 비행기가 젊은이들을 싣고 떠나면 공항은 한산해지지요. 활주로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릅니다. 하루 중 가장 더울 때입니다.
오후 4시 태양이 한풀 꺾이면, 활주로는 다시 붐비기 시작합니다. 공 차러 나온 사람들, 산책 나온 사람들, 하릴없이 나온 사람들까지. 공항은 광장이 됩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덮치지 않을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이렌은 사흘 뒤, 목요일 낮에나 울리거든요.
오늘은 축구공을 차는 사람이 많습니다. 줄을 맞춰 높이뛰기를 하고, 공을 주거니받거니 연습을 합니다. 주말에 섬 대항 축구대회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푸나푸티가 투발루의 수도인데, 투발루는 푸나푸티 말고도 유인도 7곳이 더 있습니다. 섬 여덟곳에서 온 사람들이 모여 토너먼트를 벌이지요. 푸나푸티 섬과 누쿨래래 섬이 전통적인 강호입니다만, 올해는 누가 우승컵을 거머쥘까요?
개들도 공항을 좋아합니다. 해질녘 동네 개들은 공항 건물 앞 잔디밭에 모여 낮잠을 잡니다. 가끔씩 돼지 막사에서 뛰쳐나온 돼지들이 활주로를 가로지르기도 합니다. 사람만 보면 초고속으로 줄행랑치는, 세상에서 제일 빠른 ‘유기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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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가 되면 활주로는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로 ‘종합운동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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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의 바람이 식혀주는 아스팔트
어둑어둑해지면 운동하던 젊은이들은 흩어지고 또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활주로에 모여듭니다. 혼자 온 노인도 있고, 아이를 데려온 가족도 있습니다. 활주로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서입니다. 공항은 섬에서 유일하게 훤히 뚫린 공간이라서 그 어느 곳보다 시원하거든요.
투발루 사람처럼 활주로에 누워 봅니다. 흙냄새가 묻지 않은, 수평선 너머 수평선에서 불어 온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칩니다. 한낮에 달궈진 아스팔트는 이미 대양의 바람을 맞아 식었습니다. 오돌토돌한 잔돌의 질감이 온몸을 시원하게 해줍니다.
탑승권이 없어도, 공항세를 내지 않아도, 보안 검색을 받지 않아도 투발루의 모든 사람들은 아름다운 공항을 즐길 수 있습니다.(심지어 강아지도요.) 세상에 이처럼 평등하고 아름다운 공항이 있을까요? 살풋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셀 수 없는 별들이 쏟아집니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류우종〈한겨레21〉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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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틱빌리지 공항. 건물이 없어 활주로에 서서 비행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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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너 없이는 못 살아
알래스카인들에겐 세상의 유일한 입구, 부시 공항
“돈 루트씨! 수전 웨스트씨! 남종영씨! 다 타셨어요? 그럼 출발합니다.” 조종석에 앉은 기장이 승객 이름을 차례로 불렀다. 승객들이 손을 들어 “네!”하고 답하자, 그제서야 9인승 경비행기의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했다.
알래스카 페어뱅크스를 이륙한 비행기는 2시간30분 만에 아크틱빌리지 상공에 진입했다. 착륙에 앞서 비행기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용무가 있는’ 사람들은 프로펠러의 기계음을 듣고 공항에 나오라는 소리다. 비포장 활주로에다 공항 건물 한 채 없지만, 아크틱빌리지 공항은 인구 147명인 마을보다 크다.
비행기를 착륙시키자마자 기장은 짐칸에 실린 화물을 내리기 시작했다. 비행기 앞에는 우체국 직원과 택배 물건을 받으러 온 주민들, 도시로 떠나는 승객들이 기다리고 있다. 기장을 보면서 인도의 버스 운전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조종사이자 승무원이자 배달부다. 10분도 채 안 돼, 기장은 낑낑거리며 화물을 싣고, 다시 출석을 부른 뒤 하늘로 사라졌다.
아크틱빌리지의 공항버스는 주민들이 끌고 온 사륜 오토바이(ATV)가 대신한다. 보통 5달러를 쥐어주고 얻어 탄다. 얻어 타는 것이니, 돈을 내지 않아도 태워 준다. 툰드라의 활주로에 외지인을 혼자 두고 떠나진 않으니까.
알래스카에서는 이처럼 도로로 연결되지 않은 지역을 ‘부시’(bush)라고 부른다. 오직 비행기로만 접근이 가능하다. 부시를 연결하는 비행기를 ‘부시 비행기’라 부르고, 기장을 ‘부시 조종사’, 공항을 ‘부시 공항’이라 부른다. 알래스카에는 이런 부시 공항이 많다. 전체 땅의 75%가 차량으로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배로·놈·코제뷰 등 인구가 많은 마을의 공항은 아스팔트가 깔렸고 관제탑도 있어서 제트기 접근이 가능하지만, 6~9인승 경비행기가 뜨는 아크틱빌리지나 베네티·누익서트·카크토비크 등은 비포장 활주로가 공항 시설의 전부다. 부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공항은 주민들에게 더없이 소중하다. 세상의 유일한 입구인 까닭이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류우종〈한겨레21〉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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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백야의 롱이어바이엔 공항. 만년설이 공항을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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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밤이거나 언제나 낮!
민간 여객기가 내리는 세계 최북단 지점, 롱이어바이엔 공항
롱이어바이엔 공항은 북극점에서 불과 1338㎞ 떨어져 있다. 북위 78도12분, 노르웨이 스발바르 섬. 민간 여객기가 내리는 공항 중 가장 북쪽에 있다.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보다 북극점이 더 가깝다.
공항 이용객의 대부분은 광산 노동자들과 지구 온난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 탐험가형 관광객들이다. 1900년대 초반 제국주의 열강들의 석탄 채굴 경쟁으로 한때 흥성거렸던 이 북극해의 섬은, 석탄시대가 지나고 석유시대가 오면서 파시를 맞았다. 현재 남은 광산은 단 세 곳. 스발바르에서 가장 큰 도시 롱이어바이엔과 스비어그루바, 러시아 광산촌인 바렌츠버그다. 매주 초 일부 노동자들은 공항에서 ‘통근 비행기’를 타고 스비어그루바로 떠난다. 일주일 교대 근무다.
1975년 건설된 롱이어바이엔 공항은 노동자들에게 축복이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노동자들은 북극해가 얼지 않는 여름에 배를 타고 섬에 들어왔다가 이듬해 여름에야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공항 건립과 여객기 취항 덕분에 노동자들이 주말을 쇠러 오슬로로 떠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항 풍경은 황량하다 못해 삭막하다. 따뜻한 고향에서 온 관광객들에겐 시각적 충격으로 다가온다. 공항은 4월19일부터 8월23일까지 언제나 대낮이고, 10월28일부터 2월14일까지는 언제나 밤이다. 공항 앞바다는 얼어 있고(9월~5월), 피오르드 건너로 보이는 산은 빙하에 갇혀 있다. 가끔씩 공항 주변에서 순록이 풀을 뜯고, 아주 가끔씩 북극곰이 먹이를 찾는다.
공항 맞은편 호수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세계에서 온 조류학자들이 망원렌즈로 철새들을 관찰한다. 북극제비갈매기는 남극 대륙에서 날아 온 장거리 여행자다. 여기서 여름을 나고 다시 남행한다. 땀에 젖은 작업복을 벗고 석탄 가루를 씻어낸 노동자들도 주말 새벽 공항으로 모여든다. 토요일 새벽 5시, 공항엔 북극을 떠나 오슬로로 돌아가는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다.
글 사진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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