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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를 지나치는 건 한 순간이다. 에어로포토스 회원들은 5분 동안 비행기를 기다려 5초 안에 찍는다.장석정(왼쪽에서 두 번째) 대표는 “대부분 비행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며 “편하게 항공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항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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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공항 근처 야산에 올라 비행기를 기다리는항공사진 동호회 사람들 “루돌프 떴다, 루돌프!” 영종도 갯벌 위로 빨간 점이 떴다. 중국 동방항공. 항공기 정면이 루돌프 사슴 코처럼 빨개서 루돌프다. 찰칵, 찰칵, 찰칵. 사람들의 카메라가 비행기를 따라 반원을 그렸다. 머리 위를 지나친 루돌프는 인천공항에 미끄러졌다. 상하이 푸둥 공항에서 출발한 MU503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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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미레이트항공 에어버스340. 장거리 전용으로 날개 아래 엔진이 네 개다. 긴 모양이 재밌어서 ‘소시지’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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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에로플로트항공 일류신(IL)-96-300. 구소련 일류신 시리즈를 혁신한 기체다. 멀리서 보면 에어버스340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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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뒤 유정현(52)씨의 에어밴드에서 관제탑과 기장 사이의 교신음이 들린다. “아시아나항공336편, 착륙 허가합니다. 활주로 33R로 착륙하세요(Asiana airline 336. Clear to land, runway 33R).” 사람들이 다시 카메라를 든다. 노란 기체가 다시 영종도 갯벌 위로 나타났다. 찰칵, 찰칵, 찰칵. 박진홍(16)군이 인천공항 홈페이지에서 출력해온 착륙 시간표를 읽는다. “지금 들어온 비행기는 상하이에서 출발한 거예요.” 항공사진 동호회 에어로포토(cafe.naver.com/aviationphoto)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찍는다. 이카로스의 꿈, 비행기의 U자형 곡선, 잡다한 항공기 지식. 일반인들에게 유별난 관심으로 보이지만, 이들에겐 소중한 취미다. 김장호(38)씨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찍으면서 자유를 느낀다”고 말했다. 비행기 사진을 찍다보니 공항과 항공을 알게 됐다. 보잉747의 엔진은 날개 밑에 네 개가 붙어 있다. 보잉 계열의 비행기는 조종석 맨 끝 창문이 육각형이지만, 에어버스 계열은 사각형이다. 유씨가 말했다. “중국에서 오는 비행기는 직진해서 들어오지 않아요. 서쪽에서 오다가 시화방조제 상공에서 북쪽으로 급선회하죠. 송도 국제새도시 상공에서 랜딩기어를 내립니다.” 에어로포토는 지난해 6월 결성됐다. 일 년 만에 517명이 찾아들었다. 회원들은 매달 한두 차례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 둘레에서 정기촬영 행사를 연다. ‘공식’ 전망대가 없기 때문에 공항 담벼락 아래나 근처 야산 등 비행기가 잘 보이는 지점에서 촬영을 한다. 촬영이 끝나면 홈페이지에 항공사진이 속속 올라온다. 사진을 올리고 나누는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볼 때마다 참 잘 빠졌다고 생각되는 에어버스330입니다. 항공기계의 전지현이라고 해주고 싶어요.”(장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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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푸둥에서 출발한 MU5033편. 빨간 도색 때문에 중국동방항공의 별명은 ‘루돌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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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트한자항공 에어버스3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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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에어버스300-600R. 대한항공은 이 기종을 점차 화물기로 변경 중이다. 에어버스 최초 생산 기종으로 7월부터 생산이 중단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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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버스380. 현존하는 최대의 기체로, 시범 운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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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무료 전망대도 운영 공항이 열려 있을수록 항공사진의 품질은 높아진다. 항공사진 동호회가 발달한 일본의 공항들은 일반인들에게 열린 구조다. 오사카 간사이공항(국제선)은 ‘스카이뷰’라는 무료 전망대를 운영한다. 활주로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착륙 시간표까지 걸어놨다. 오사카 이타미공항(국내선)은 일본 최고의 촬영 포인트. 유정현씨는 “32L 활주로 앞의 촬영 지점은 제트 엔진의 열기가 느껴질 정도”라며 “화각이 넓은 광각렌즈를 써도 비행기가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가깝다”고 말했다. 2005년 개항한 나고야 주부공항은 아예 공항 경관을 일반인에게 개방했다. 탑승권이 없는 관광객도 탑승 게이트 근처까지 들어갈 수 있다. 여객터미널 4층은 전망대로 열어뒀다. 이런 시스템 덕분에 일본에서는 항공사진 열기가 높다. <전국공항 전망가이드>라는 책이 정기적으로 나올 정도다. 자위대 공항을 포함한 모든 공항의 지도와 추천 촬영지점이 소개돼 있다. 이에 비해 한국 공항은 탑승권이 없는 사람을 차별한다. 공항 경관은 탑승권을 쥔 여행자들에게 독점돼 있다. 비행기를 자유로이 볼 수 있는 곳은 면세구역뿐이다. 상당수 지방공항도 군용으로 쓰이고 있어 통제가 심하다. 유정현씨는 “인천공항 같은 민간공항에서도 가끔 촬영을 제지받는다”며 “관리자 편의에 따라 일방적으로 제한만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공항 촬영은 보안상의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될 경우 ‘국가보안목표물관리지침’에 따라 제한된다. 하지만 비행기나 여객터미널 외관을 찍거나 작은 디지털 카메라로 기념 사진을 남기는 정도는 괜찮다. 남종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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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에스트항공의 AN-12. 프로펠러기로 1957년 이후 900여기가 넘게 제작돼 군용과 화물용으로 두루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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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공항 32R 활주로 끝에서 찍은 항공기 궤적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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