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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06.27 17:27 수정 : 2007.06.28 14:59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뻔한 스토리 속에서도 운명과 싸우는 한 인간의 전형이…

“앗!”, “윽!”, “펑!”, “욱!”, “크윽” 하면 벌써 한 페이지가 넘어간다. 당시 대본소용 무협지는 세로쓰기가 대세였고, 문단이라는 게 없이 한 문장을 한 행으로 독립적으로 편집했다. 그러니 당연히 결투 장면에서는 외마디 비명 소리가 한 페이지를 장식했고, 선혈을 한 모금 토하고 나면 결투는 끝난다. 그러니까 위의 비명 소리에서 맨 마지막 대사는 선혈을 토하는 소리다.

선혈은 주로 장풍을 맞고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 서너 장 뒤로 물러나면서 토하게 마련이다. 무협지에는 그런 설명이 꼭 나온다. 요즘 나오는 김용의 무협지나, 건궁인, 사마달 같은 고급스런 무협지와는 사뭇 달랐다. 종이는 누런 갱지였고, 천 페이지가 넘었다. 내용도 항상 같았다. 주인공이 기연을 얻고, 고강한 무공을 쌓는다. 그리고 복수에 나서서 원수들을 처단하는데, 그 시체가 항상 산을 이루고 피가 강물처럼 넘쳐난다. 주인공에게 조직은 없다(모든 문파의 무공을 불과 몇 시진 만에 익힌다). 주인공은 항상 혼자다.

2천 페이지가 훌쩍 넘는 무협지를 다 보는 데 들이는 시간은 불과 7시간 정도. 저녁때 밥을 먹고 산책 삼아 대본소에 가서 12권짜리를 빌려 오면 다음날 새벽에 끝난다. 그리고 잔다. 오후에 일어난다. 다시 저녁을 먹고 산책 삼아 대본소에 간다. 이런 식으로 한 달을 하면 폐인이 된다. 그런데 왜 무협지를 좋아하는가?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읽을 뿐이다. 끊임없이.

우리가 즐기는 주전부리 중에도 그런 게 있다. 맛이라고는 특별할 것도 없는데 계속 손이 가는 것들이 있다. 그런 것들은 대강 씹을 때 바삭한 소리가 나고, 촉감이 가벼우며, 특별한 맛이 없다. 무협지가 꼭 그렇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자기의 능력을 알지 못한다(주인공의 몸은 무공을 위해 맞춤형으로 태어난다). 부모가 억울하게 죽는다(사파가 아닌 정파에게 꼭 죽임을 당한다). 기연을 얻는다(절벽 밑의 동굴 같은 곳이다). 따르는 여자가 무수히 많다(원수를 갚고는 항상 이 여자들과 표표히 사라진다; 심심할 때마다 어떻게 알고는 꼭 정사 장면이 나온다; 그런 부분에서는 책장이 안 뜯어질 때가 많다). 꼭 무림지존으로 등극한다. 원수를 갚는다. 더군다나 정사 장면은 여자가 남자에게 작업을 걸거나 남자가 여자에게 작업을 거는 게 아니라, 적에게 당한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동정을 지닌 여자의 순음지기가 필요해서라는 점이 각별하다.

이 플롯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와룡생도 마찬가지였다. 가짜 와룡생이 워낙 많아서 내가 읽은 작품의 진위는 어떤지 알 수 없지만 김용의 작품도 이 플롯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한데도 무협지는, 아니 바로 그 점 때문에 나는 무협지를 읽는다. 왜냐하면 그 뻔한 이야기 속에서도, 천륜을 믿고 인륜을 지키며 운명과 싸우는 한 인간의 전형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카잔차키스가 조르바라는 전형을 만들고 셰익스피어가 햄릿이라는 인간의 전형을 만들어냈듯이, 한 장르 전체가 만들어낸 인간의 전형이다. 없는 실을 억지로 꼬아서 임금님에게 입히는 소설가나, 그 임금님을 보고 칭송의 변을 늘어놓고 있는 평론가들이 난무하는 작금의 소설보다 훨씬 정직하기 때문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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