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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3.11 19:26 수정 : 2009.03.13 17:14

임금님은 아침밥도 두번. 한겨레 자료사진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이른 아침 죽, 늦은 오전 12첩 수라상 올리던 조선시대 왕의 상차림

조선시대 왕들은 이른 아침의 초조반상(初朝飯床)·아침 수라·점심 낮것상·저녁 수라 등 모두 네 차례 밥을 먹었다. 초조반상은 아침 7시 전에 죽·미음과 젓국찌개·동치미·마른 찬을 함께 낸 죽상이다. 죽은 쌀에 잣·깨·채소·고기 등을 넣어 만들었다. 동치미 등 국물이 많은 물김치붙이, 소금이나 새우젓으로 간을 한 맑은 조치, 두세 가지 마른 찬을 곁들였다. 아침 수라는 오전 10시께 먹었다. 점심 땐 낮것상이라고 하는 면·다과상을 받아 먹었다. 저녁수라는 오후 5시께 먹었다.

수라상은 기본적으로 12첩 반상 차림이다. 양반가는 9첩이나 7첩 반상 차림으로 먹었다. 12첩은 반찬이 12가지임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는 밥·국 등 기본 음식 7가지를 뺀 숫자다. 수라(흰밥·팥밥 두 가지)·탕·조치(찌개를 가리키는 궁중용어), 육류·생선찜, 전골·김치·장류 등이 기본 음식으로 상에 올랐다. 여기에 12가지 찬품(반찬)을 더한다. 육류·어류 등 더운 구이, 김·더덕 등 찬 구이, 전유화(전), 숙육(편육), 숙채(나물), 생채, 조리개(조림), 장과(장아찌), 젓갈, 포·자반·튀각 등 마른 찬, 수란 등 별찬이다.

독극물을 가려내기 위해 수저는 은으로 만든 것을 사용했다. 음식이 준비되면 수라 상궁이 왕이나 왕비 옆에서 음식 뚜껑을 벗긴다. 기미 상궁은 빈그릇에 음식을 조금 덜어 맛 본 뒤 해가 없으면 “젓수십시오”라고 말했다. 남은 음식은 다음 끼니에 상궁들이 먹었다.

프랑스 대혁명으로 궁중 요리사들이 직업을 잃고 대중식당을 열기 시작하면서 프랑스 요리는 꽃피기 시작했다. 한국도 비슷하다. 조선왕조가 몰락하던 1909년 궁내부 주임관이 궁궐을 나와 서울 종로구 세종로에 최초의 음식점인 명월관을 열었다. 관기 제도가 없어져 직업을 잃은 궁중 기녀들이 명월관으로 모여들었다. 인사동에 생긴 음식점 태화관에서 민족대표는 1919년 기미 독립선언을 낭독한다. 궁중 음식은 서민의 음식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음식 문화는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흐르고 역류하며 형성된다.

고나무 기자·참고 <궁중음식과 서울음식>(한복려·대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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