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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2.03 20:49 수정 : 2010.02.07 11:31

드라마를 읽는다. 사진 한국방송 제공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수동적 시청 지나 대본까지 섭렵하는 적극적인 시청자들
노희경 등 인기작가 대본집도 큰 관심

잘 만든 드라마 한 편, 웬만한 테마파크 안 부럽다. 1시간짜리 드라마 한 편으로 24시간 동안 ‘원 소스 멀티플레이’를 하는 시대다. 디시인사이드 드라마 갤러리에 주로 서식하는 이들의 일과를 살펴보자. 본방사수-갤질(갤러리 이용)-움짤·짤방 만들기-다시보기-고화질 캡처-주장미(주요 장면 미리보기)-각종 습호(스포일러) 확인-배우·스태프 강림·인증글 확인-간식 보내기 이벤트 참여 등의 일정으로 매일을 가열차게 달린다. 드라마 종영 후에도 휴대전화 고리나 컵 등의 기념품과 리뷰북 제작 등 참여해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몇년 전만 해도 몇몇 마니아층 드라마에만 한정됐던 이런 식의 적극적인 드라마 시청의 경향은 점점 대중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어떤 드라마든 월화·수목·주말 드라마로 편성이 되면 어느 정도의 마니아층은 생기기 마련이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드라마 갤러(갤러리 이용자)들에게 일정이 하나 추가됐다. 대본 확인이다. 총체적 결과물인 드라마 영상만 보는 게 아니라 사소한 것까지 챙겨 분석하고 예측하는 것까지 드라마 즐기기의 범위에 들어가면서 대본은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드라마 작가의 ‘의중’을 파악하거나 연출가의 ‘의도’를 알아내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게 바로 대본이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끝나고 다시 보기와 대본이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오면 드라마와 대본을 비교하면서 대사가 어떻게 바뀌었고, 어떤 장면이 편집됐으며, 연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확인하는 글을 자주 볼 수 있다.

작가 의중, 연출 의도 파악까지도

사각 러브라인으로 하루하루가 총성 없는 전쟁이나 다름없는 문화방송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갤러리에서는 매일 대본에 관한 글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대본을 보고 지문 등을 통해 러브라인의 향방을 분석해보거나, 대본 속 지문과 실제 연기의 차이점을 두고 연기자들의 실제 열애 가능성을 점치거나, 대본과 연출의 미세한 차이점을 비교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지난해 종영한 <선덕여왕> 마지막회에는 대본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 <10아시아> 최지은 기자는 “<선덕여왕> 마지막회가 방송 분량 때문에 촬영분이 모두 방송되지 못했는데, 이를 아쉬워한 네티즌이 마지막회 대본에서 편집된 부분을 찾아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덕만이 죽기 전 춘추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덕만과 유신이 등장하는 장면 등을 찾아내 드라마에 대한 이해를 자발적으로 높였다. 대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에 비견되는 경우도 있다. ‘문학 작품을 읽는 것 같다’는 평을 받은 한국방송 8부작 드라마 <한성별곡> 대본의 경우 지금도 대본을 찾아 읽고 싶다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열심히 대본을 찾아 읽는 이유는 뭘까? 문화방송 드라마 <파스타> 갤러리에 올라온 글 중 ‘다들 대본은 왜 찾느냐?’는 제목의 글에 달린 댓글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댓글은 다음과 같다. ‘영상만 복습하기에 일주일은 너무 긺’, ‘대체 이 장면 지문이 뭐였길래 이 배우가 이런 좋은 연기를 하지? 이런 식의 의문이 생겨서 대본을 보게 되지 ㅎㅎ’, ‘대본이랑 맞춰서 보면 이 장면에서는 배우가 잘 소화해줬구나 이 장면에서는 연출이 좋았구나 이 장면에서는 대본 자체가 참 잘 빠졌다 이렇게 감상이 되어효’, ‘대사 없이 배우 표정만 있는 신에서 속마음을 알 수 있기도 하지 ㅎㅎㅎ 지문에 (억누르며) 이런 식으로 지문이 있어서 이해가 더 잘 되기도 하지 ㅎ.’

방송 후 바로 대본을 확인할 수 있는 건 방송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하는 대본 서비스 덕분이다. 한국방송은 무료로, 문화방송과 에스비에스는 200원에 유료로 대본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다고 모든 드라마의 대본이 서비스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엠비씨 이화정씨는 “일반적으로 대본 서비스는 제공하는 방향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와 연출자, 제작사의 의견에 따라 대본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대본에 대한 관심은 실제 출판으로도 이어진다. 지난해 10월 발간된 노희경 작가의 대본집 <그들이 사는 세상>(북로그컴퍼니 펴냄·이하 <그사세>)이 대표적인 경우다. 2008년 방영된 드라마 <그사세>는 시청률이 높지는 않았지만 솔직한 대사와 세련된 연출, 고른 연기 덕분에 마니아층이 형성돼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드라마다. 특히 노희경 작가의 대본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출간된 <그사세> 대본집 역시 찾는 이들이 많다. 북로그컴퍼니 조기준씨는 “기대했던 것보다 반응이 더 좋고, 특히 1권과 2권이 비슷하게 팔리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며 “대사를 외우고 다닐 정도로 <그사세>를 좋아했던 이들이 소장용으로 구입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음달에는 방송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특유의 생명력으로 여전히 마니아층을 모으고 있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거짓말>의 대본집이 출간될 예정이다.

지난달 25일 교보문고에서 <그사세> 대본집을 읽고 있던 회사원 박주은씨는 이렇게 얘기했다. “노희경 작가가 쓰는 대사와 드라마가 전하는 이야기를 워낙 좋아해요. <그사세> 역시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봤는데 대본집이 나왔다고 해서 구입하려고 왔어요. 드라마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모두 기억하는데 대본을 읽다 보니 머릿속에서 이미 봤던 영상을 제 나름대로 재구성하면서 읽게 되더라고요. 영상과 비교하면서 보기보다는 대본집만 읽으면서 대본집 자체를 즐기려고 해요. 대본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앞에 표기된 용어 설명을 읽으니까 이해하기 어렵지만은 않아요.”

<그사세> 이어 <거짓말> 대본집 출간 예정

지금까지 드라마를 ‘보기만’ 했다면, 이제 한번쯤 ‘읽어보는’ 건 어떨까. 대본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드라마와 제작진에 대한 오해를 부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밑줄 치며 눈으로 읽고 싶은 대사가 나오는 드라마라면 한번쯤 대본을 찾아보는 것도 드라마를 보는 또다른 재미일 테니 말이다.

출간 대본집 어떤 게 있을까?

⊙ <사랑이 뭐길래>(김수현 지음, 제삼기획 펴냄) | 1991년부터 1992년까지 5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6개월 동안 55부작으로 방영된 김수현 작가의 문화방송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의 대본집으로, 방송이 끝나고 1992년 9월 5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현재는 절판 상태. 인근 도서관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오리지널 시나리오 대장금>(김영현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 2003년 방영된 가장 한국적인 한류 드라마로,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방송되고 있는 문화방송 드라마 <대장금>의 대본집으로 2004년 출간됐다. 작가 김영현의 소개글과 등장인물 소개 등이 수록돼 있다. 54부작을 한 권에 담아 제법 두껍다. 절판됐지만 잘 찾으면 서점에서 살 수도 있고, 도서관에서 볼 수 있다.

⊙ <티브이드라마신인상 수상작품집>·<한국방송작가상 수상작품집>(시나리오친구들 펴냄) | 한국방송작가협회는 매년 ‘한국방송작가상’을 수상한 대본을 모아 책으로 발간한다. 드라마뿐 아니라 교양·라디오·예능 부문 수상작을 볼 수 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 역시 매년 ‘티브이드라마 신인상’ 공모를 통해 발굴한 작품을 모아 책을 펴낸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자료제공 북로그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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