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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03 19:22 수정 : 2010.03.07 15:35

‘쩌리짱! 병풍반란시대’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쩌리짱 정준하에서 게스트 정보석까지 모아본 가상프로그램 ‘쩌리짱! 병풍반란시대’

말이 없다. 재치가 없다. 눈치가 없다. 옆에 있는 사람 말에 맞장구를 자주 친다. 웃고 있는 얼굴이 주로 나온다. 뭐든 시키면 열심히 한다. 그런데, 잘하진 못한다. 재미는 없다. 없어도 별다른 티가 나지 않는데, 어딘가 허전하다. 쩌리들의 공통점이다. 이런 쩌리들이 모인 가상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떨까? 가상 프로그램의 제목은 <아이돌! 막내반란시대>를 본떠 <쩌리짱! 병풍반란시대> 정도면 좋을 것 같고, 편성은 아무래도 공중파는 쉽지 않을 듯하니 케이블 티브이 토요일 밤 11시쯤이면 적당하겠다. 출연진은 <무한도전>의 쩌리짱 정준하와 <해피선데이-남자의 자격>의 약골 이윤석과 비덩(비주얼 덩어리) 이정진, <청춘불패>의 병풍 효민과 백지 선화, <놀러와>의 골방 보이스 이하늘, 그리고 게스트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쥬얼리정 정보석이다.

통편집당한 한을 풀어보자꾸나

프로그램 기획 의도 |
대한민국은 지금 1인자 시대! 1인자에 묻혀 원샷 한번 잡혀보지 못하고, 제대로 된 멘트 한번 날리지 못하며 통편집의 수모를 당하곤 했던 쩌리 및 병풍들! 이들이 지금까지 방송을 하며 쌓인 한을 풀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카메라 제일 왼편이나 오른편에서 옆모습만 비춰졌던 지난날은 가라! 쩌리라서 웃기지 못할 거라는 편견은 버려라! 쩌리계에서 짱이 되고 싶은 이들의 도전이 시작된다.

<쩌리짱! 병풍반란시대> 1회

#황량한 운동장에 펼쳐진 병풍 앞

-(순서대로) 이윤석, 이하늘, 효민, 정준하, 선화, 이정진 서 있다.

정준하

정준하 쩌리들이 있어 더욱 즐거운 토요일! <쩌리짱! 병풍반란시대>!

일동 (기운 없는 목소리로) 와!

정준하 목소리가 왜 이렇게들 작아요? 이러니까 사람들이 우리를 쩌리 쩌리 하는 거예요.

이하늘 (발끈하며) 근데 왜 내가 쩌리예요? 나 요즘 얼마나 잘나가는데. 그리고 지금 쩌리 중에 짱이라고 잔소리하는 거예요?

정준하 뭐 제가 겉절이 중에 최고 짱이니까, 허허허.(사람 좋은 웃음)

이윤석 그래도 첫회 시작인데 뭐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정준하 허허허.(사람 좋은 웃음) 그럼 각자 다른 프로그램에서 쩌리나 병풍으로 힘들었던 점 얘기하면서 돌아가면서 원샷 한번씩 받아보죠. 먼저 제 옆에 있는 티아라의 효민양!

위부터 효민, 이윤석, 이하늘·길.

효민 저는, (병풍을 가리키며) 얘랑 비슷했어요.

선화 (뜬금없이) 저는 이제 통편집은 옛날 얘기예요. 요즘 백지 캐릭터가 새로 생겨서 방송 분량 잘 확보하고 있어요.

이하늘 그런데 누구…?

선화 아, 맞다. 하하하.(백지 웃음) 저는 시크릿의 선화입니다.

이윤석 아 1인자 없다고 이렇게 프로그램이 정신없나. 저는 <남자의 자격>에서 지금까지 지켜왔던 약골 이미지도 거의 국민시체인 김태원 형님에게 빼앗기고 이경규 형님 모시는 것 말고는 지금 마땅히 밀 만한 캐릭터가 없어요. 요즘 울렁증까지….

이하늘 저는 뭐 국민엠시 유재석씨와 어깨를 겨루면서…(말 흐리며)라기보다 이번 개편에도 살아남았으면 하는 마음에 하루하루가 초조해요. 솔직히 타이밍을 못 잡겠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자신감이 생기네요.

정준하 저는 뭐 다들 아시다시피 쩌리짱으로 완전 캐릭터를 잡아서 이제 녹화할 때도 그렇게 마음이 편해요. 멘트 없이 그냥 웃고만 있어도 그런가 보다 하고, 카메라에서 밀려나도 그런가 보다 하고. 허허허.(사람 좋은 웃음)

일동 (침묵)

이하늘 멘트를 받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네요. 이끌어가는 사람 없이 쩌리들과 병풍들만 모여서인지 참 분위기가 애매하네요. 이거 과연 방송이나 될까요?

이정진

이윤석 저기… 한가지 잊으신 것 같아서, 저기 이정진씨가 서 있어요.

이정진 (멋쩍은 웃음) 허, 전 뭐 그냥.

이윤석 이 친구는 병풍 중에서도 비주얼 하나는 끝내주는 비주얼 병풍이에요. 한마디 안 하고 서 있어도 존재의 이유가 뚜렷해요.

이정진 저…, 요즘 비덩에서 개그덩으로…. 허허허.(낮은 톤의 웃음)


-뜬금없이 정보석 난입

정보석

정보석 (해맑은 얼굴로) 저는 언제쯤 나오는 건가요?

일동 (헉!)

정준하 게스트 분인데, 아직 좀더 기다리셔야 되는데…. 모르겠다. 오늘의 게스트 쥬얼리정 정보석씨입니다. 허허허허.(사람 좋은 웃음)

정보석 (높은 톤의 목소리로) 제가 여기 너무너무 나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저 뒤에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불러주셔서 제가 그냥 나왔습니다.

이하늘 요즘 정말 시트콤 캐릭터 중에서 쩌리로 제대로 자리잡으셨어요. 해리랑 놀다가 정신 잃고 쓰러졌는데 모두가 잠자는 줄 알고 지나치는 장면 보고 정말 미친 듯이 웃었어요. 존재감 정말 없으셔. 하하하하.(웃음)

정보석 (진지하게) 그건 제가 존재감이 없어서라기보다 아이들과 격의 없이 지내다 보니….

선화

선화 (말 끊고) 아, 맞다. 아저씨도 구구단 잘 모르죠? 저랑 통하는 데가 있으시더라구요.

정보석 모르다니요. 저를 뭘로 보고 모른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 구구단 정도는 다….

효민 쥬얼리정 아저씨, 이러다가 저랑 나란히 통편집남이 될 것만 같아요.

정보석 제가 일본에서는 보사마로 유명하긴 하지만 아직 한국 방송 환경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런데 통편집이 무슨 뜻….

정준하 (말 끊고 제작진에게) 그런데 게스트 모셔서 뭘 하라는 거예요?

1·2·3인자가 없으니 캐릭터가 안 사네

제작진 오늘의 미션은 ‘최고의 쩌리, 쩌리짱을 뽑아라’입니다. 쩌리짱으로 뽑히신 분에게는 1회 ‘1인자 권력’을 드리고, 뽑히지 못한 나머지 분들은 병풍 마일리지를 쌓으시게 됩니다. 병풍 마일리지를 가장 많이 쌓으신 분은 1회 ‘음성 및 원샷 금지’가 내려집니다.

정준하 (버럭하며) 제가 쩌리짱인데 무슨 쩌리짱을 뽑아요. (투정 부리며) 나 안 해, 이게 뭐야. 나 안 해.

이하늘 (갑자기 앞으로 나서며) 그럼 하지 마세요. 정준하씨 첫번째 병풍 당첨! 그런데 쩌리짱은 어떻게 뽑는 거예요?

제작진 테이프 갈고 가겠습니다.

테이프를 갈고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았던 <쩌리짱! 병풍반란시대> 1회 촬영은 도저히 우열을 가리기 힘든 애매한 침묵만을 남겨놓고 그렇게 끝이 났다. 병풍의 반란은, 쩌리나 병풍 캐릭터는 역시 1인자나 2인자, 적어도 3인자는 있어야 살아난다는 아픈 진실만을 남겨두고 실패로 돌아갔다.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사진제공 한국방송, 문화방송


슬그머니 갔는데 찾지도 않네

존재감 없는 이들의 고백 “나 이럴 때 쩌리나 병풍 같다”

쩌리나 병풍이 예능프로그램에만 있는 건 아니다. 실제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쩌리나 병풍 역할을 맡는 이들이 어디든 꼭 있다. 주변인들을 수소문해 ‘나 이럴 때 쩌리나 병풍 같다’는 사례를 모았다. 존재감 없는 이들의 소심한 커밍아웃이 여기 있다.

“한번은 오랜만에 대학 친구들 모임에 나갔는데 아무도 나의 근황에 대해 물어보지 않더라. 기분도 안 좋고 몸도 안 좋아 2차 호프집에 갈 때 슬그머니 빠졌는데 아무도 찾지 않았다. 어디 갔느냐는 문자도 없었다. 내가 왔는지, 갔는지 도통 무관심한 것 같았다. 바보같이 한 친구에게 ‘너네는 내가 가도 모르냐’는 문자까지 보냈다. 내가 왜 그랬을까.”(이아무개씨·33살)

“내가 겪었던 황당한 얘기를 신나게 말하고 있는데 친구가 반찬 더 달라며 아주머니 불러서 얘기가 끊겼다. 그리고 바로 화제가 다른 걸로 넘어갔다. 모임 가기 전부터 준비해간 애드리브성 농담을 던졌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심지어 그게 농담인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더라. 연습했던 성대모사까지 안 한 건 참 다행이었다. 사람들이 여럿 있을 때 꼭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반면 저쪽 테이블은 웃음꽃이 핀다.”(최아무개씨·27살)

“자매가 셋인데 내 이름만 평범하고, 심지어 촌스럽기까지 하다. 부모님에게 왜 내 이름만 성의 없게 지었느냐고 여러번 물었지만 속 시원한 대답을 들은 적이 없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존재감이 없었던 걸까.”(유아무개씨·31살)

“원래 말이 없는 편이다. 술자리에서도 조용히 술만 마신다. 대부분 술자리 끝까지 있는 편인데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이 내가 끝까지 있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겉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굳이 말하자면 병풍처럼 술자리 배경이 되는 사람인 것 같기는 한데, 나는 그게 편하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살아갈 생각이다.”(박아무개씨·29살)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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