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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07 20:17 수정 : 2010.04.07 20:17

esc를 누르며

[매거진 esc] esc를 누르며





프랑스 극작가 장 콕토는 개보다 고양이를 훨씬 더 좋아했는데, 그 이유는 ‘경찰 고양이’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양치기 고양이, 사냥 고양이, 썰매 끄는 고양이도 없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지요.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게 누구에겐 ‘기피’의 이유인데 누구에겐 ‘매혹’의 이유가 되나 봅니다. 고양이가 썰매까지 끌진 못하더라도, 만약 집이라도 지킬 줄 알았더라면 한국에선 그 처우가 확 달라졌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가까운 일본만 해도 고양이 사랑은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6년 전 교토 여행을 갔을 때, 상점 현관 앞에 대자로 뻗어 잠을 자고 있는 고양이를 깨울세라 조심히 피해가는 손님들, 아기 길냥이들을 데리고 우아하게 산책하는 엄마 길냥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고양이 팔자도 어디서 태어나느냐가 이렇게 중요하다니! 한국에서 길냥이들의 신세란, 낮에는 사람들 눈을 피해 주차된 자동차 아래 숨어 있다 밤에나 조심스레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에서 눈칫밥을 먹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지금 불쌍하고도 처량한 한국 길냥이 팔자라도 제 팔자보단 낫겠다는 심정입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이번호부터 ‘esc’ 팀장을 맡게 된 김아리 기자입니다. 사실 제 본업은 이번 인사로 정치부로 옮긴 고나무 기자 후임으로 요리 기사를 쓰는 것인데, 출산·육아휴직을 떠난 김은형 팀장의 공백까지 책임지게 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창간한 esc는 독자 여러분이 빡빡한 일상에서 잠깐 한숨을 돌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나도록 안내하겠다는 취지로 시작됐습니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의 미로에서 허둥대다 ‘Esc’를 누르면 휘리릭 빠져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탈출(escape)이자 휴식인 이 지면이 누군가에겐 멀쩡한 등골을 빼먹게 생겼습니다. 그래도 독자 여러분이 이 지면을 보면서 순간의 휴식을 취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있는 등골 다 빼내겠습니다. 그리고 빼낸 등골을 푹 고아서 매주 곰탕 한그릇씩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일주일의 피로를 시원하게 풀어주는 원기 회복 자양강장제가 되도록 말입니다.

김아리 <esc> 팀장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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