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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21 21:07 수정 : 2010.04.21 21:09

인천아트플랫폼은 1940년대에 지은 대한통운 창고를 전시장과 공연장으로 쓰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자기만의 색 뚜렷한 창작 스튜디오 인천아트플랫폼·몽인아트스페이스

국내 창작 스튜디오는 비로소 전성기를 맞았다. 지난해와 올해에만 7개의 창작 스튜디오가 문을 열었고, 기존의 창작 스튜디오도 2~3년이 지나면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작가의 작업에 없어서는 안 되는 요소가 창의력과 개성이듯, 창작 스튜디오 역시 그 공간만의 성격을 갖는 게 중요하다. 그 어떤 창작 스튜디오보다 개성이 뚜렷한 두 곳을 찾았다. 인천 중구 해안가에 자리잡은 인천아트플랫폼과 서울 중구 신당동의 몽인아트스페이스, 이 두 창작 스튜디오가 그려낸 두 장의 그림이 여기 있다.

◎ 인천아트플랫폼 | 도시의 역사가 고스란히…바다 냄새가 넘실

전시장 내부

경인고속도로 끝에서 월미도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오래된 벽돌건물 여러 채가 가지런히 어깨를 맞대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인도와 건물 사이를 가로막는 벽도, 경계를 표시하는 구조물도 없다. 건물 사잇길로 들어가 보니 누군가 통유리 너머로 바쁘게 손을 놀리며 진흙을 만지고 있다. 그 위로 ‘인천아트플랫폼’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항구 특유의 바다 냄새가 남아 있는 이곳에 서 있으니, 영화 세트장에 와 있는 것처럼 기분 좋은 낯섦이 느껴진다. 그 낯섦은 도시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오래된 벽돌건물 때문이기도 하지만, 붉은색 천이 휘날리는 중구 차이나타운과 자유공원, 도시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주택가, 높다란 현대식 호텔이 공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0년에 걸친 오랜 준비 끝에 지난해 9월 개관한 인천아트플랫폼은 근대 개항기 건물과 1940~1950년에 지은 건축물 6채를 리모델링해 모두 13개 동 규모로 조성됐다. 1888년에 지은 일본우선주식회사 건물은 예술 관련 자료를 모아놓은 아카이브로, 1948년에 지은 대한통운 창고 2동은 전시장과 공연장으로 사용된다. 20개의 스튜디오를 갖춘 창작 스튜디오는 새로 지은 건물에 들어섰다. 창작 스튜디오의 20개 작업실은 1년 동안 거주하는 장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해 지난 2월 입주를 마친 1기 작가 33명으로 꽉 찼다.

“이곳에 입주한 작가들이 모이면 하는 얘기가 ‘이 동네 너무 재미있다’는 거예요.” 특정 장소를 선택해 그곳에서 거주하며 지역에 대한 설치작업을 주로 해온 작가 채지영씨에게 이곳은 ‘재미있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흥미로운 공간이다. 근대 개항장이었고 일본뿐 아니라 중국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역사성과 지역성 때문에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채지영씨에게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주로 이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지역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고 건물을 살펴보면서 하루를 보내요. 그러다가 빈 공간을 찾아냈는데, 그 공간을 활용해서 ‘빈집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채씨가 다른 장르의 작가들을 ‘꼬셔서’ 각자 이 공간에 대한 자유로운 반응을 작업으로 만드는 ‘빈집 프로젝트’는 다음달 말에 결과물이 공개될 예정이다. 채씨의 작업실에는 빈집에서 가져온 나무껍질과 커다란 수레 등이 숨겨져 있다. 이런 모든 과정이 작업이고 작품이다.

몽인아트스페이스에 입주한 회화 작가 문성식씨의 작업실 모습


회화 작가인 장진씨는 인천 지역 작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꼽았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입주 작가 3분의 1 정도를 인천 지역 작가로 선발한다. “인천 지역 작가들을 포함해 이곳에서 다양한 작가들을 만나 교류하고, 새로운 것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게 즐거워요. 몇몇 작가들과 벌써 전시도 기획했어요. 다음달 중순에 이곳 스튜디오에서 ‘몰래’ 할 생각이에요.(웃음)” 작가 간의 교류가 시각예술 작가에 한정되는 건 아니다. 이곳은 공연과 문예창작 작가들도 모집한다. 1기 작가들 중에는 마이미스트 김원범씨와 공연 단체 한 팀이 입주해 있다. 김원범씨는 공동 작업을 주로 하다가 올해 개인 작업을 하려고 이곳 창작 스튜디오에 왔다. “시각예술 분야 작가들과 교류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잖아요. 특히 마임의 특성을 살려 조각가들과 협업을 하면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 몽인아트스페이스 | 단독주택 안 4개방서 ‘혼자 또 함께’ 작업

밖에서 보면 그냥 ‘좀 있어 보이는 2층짜리 단독주택’이다. 커다란 자동차 한두대쯤은 충분히 들어갈 만큼 커다란 대문을 지나면 푸릇푸릇한 잔디가 깔린 마당이 있다. 여기까지는 일반 가정집인데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니, 반전이다. 1층에는 그럴듯하게 꾸며진 거실 대신 흰색으로 칠해진 텅 빈 공간이 나오고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방마다 캔버스가 겹겹이 쌓여 있다. 몽인아트센터에서 운영하는 창작 스튜디오인 몽인아트스페이스의 풍경이다. 서울 남산 자락 중구 신당동 약수역 근처, 사람들이 복작대는 주택가의 몽인아트스페이스는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공간의 창작 스튜디오다.

서울 남산 자락에 위치한 집을 개조해 만든 몽인아트스페이스 전경

몽인아트스페이스가 있는 이 단독주택은 1970년 세상을 떠난 애경그룹 창업주 채몽인 사장의 고택이다.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집을 개조해 2007년 창작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작업실로 쓸 수 있는 방이 네 개이기 때문에 이곳에 입주한 작가들은 네 명뿐이다. 3기 작가들인 김수영·노충현·문성식·옥정호 네 명이 지난달 입주해 이곳에 짐을 풀었다. 몽인아트스페이스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특징을 한마디로 하자면 ‘선택과 집중’이다. 입주 작가 모집 공고가 나면 작가들이 지원을 하고 심사를 해서 입주 작가를 선정하는 다른 창작 스튜디오와는 다르게, 이곳은 공간의 성격에 맞는 작가를 선정하고 직접 연락을 해 입주 작가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입주 기간은 18개월로 다른 창작 스튜디오보다 6개월 정도 더 길다.

몽인아트스페이스를 찾은 지난 14일, 이곳에서 작가들의 가벼운 프레젠테이션 행사가 열렸다. 뉴욕 소재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스튜디오 교환 프로그램으로 이곳에 단기 입주한 프랑스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소개하고, 역시 같은 교환 프로그램으로 뉴욕에 다녀온 2기 입주 작가 이호인씨의 결과 보고가 있었다. 3기 작가들과 프레젠테이션에 나선 작가들, 몽인아트스페이스의 대표와 디렉터, 큐레이터까지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작가들이 작품을 소개했고, 다른 작가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규모는 작았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과 친밀도, 소통의 밀도는 그 어떤 자리보다 높았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처음 참여한다는 회화 작가 김수영씨는 이곳에서 보낸 지난 한 달을 이렇게 설명했다. “네 명이 한 공간에 있기 때문에 더 가깝게 얘기할 수 있고, 서로의 작업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교류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작업 과정이 달라지다 보니 결과적으로 제 작업 역시 조금씩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어요.” 회화 작가 문성식씨는 앞마당이 바로 앞에 펼쳐진 1층 스튜디오를 쓰고 있다. “마당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요. 작업실은 너무 개인적이어도 힘들고, 너무 여럿이어도 스스로를 조절하는 게 힘들죠. 그런 점에서 이 공간은 작업하기에 참 좋은 환경이에요.” 앞마당의 이점을 몸소 보여주려는 듯 문성식, 이호인, 옥정호 작가는 프레젠테이션이 끝나자 공을 들고 마당으로 나가 천천히 공을 차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공놀이를 시작한 이들을 뒤로하고 몽인아트스페이스를 빠져나오다가 하교하는 학생들과 마주쳤다. 저절로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아, 여기가 서울이었지.”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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