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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시 삼수동 하사미마을 가리골의 골짜기인 큰조릿골.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평범한 골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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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생태숲 해설가 김부래씨와 함께 한 태백 가리골 생태 탐방
김부래(69·사진)씨는 태백시 생태숲 해설가다. 40년 넘게 강원도 구석구석을 누벼온 오지산행 전문가이기도 하다. 아무 꽃이나 나무를 가리키면, 그 내력이 줄줄 흘러나오는 김부래 ‘대장’(산악인들이 부르는 별명)을 따라 태백시 삼수동 가리골마을 큰조릿골로 야생화 탐방을 다녀왔다. 평범한 산길을 걸었으나, 그가 보여준 길은 평범하지 않았다. 꽃과 나무 곁을 지나며 묻고 들은 이야기를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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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래(69)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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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골은 태백시 삼수동 하사미마을에 속하는, 세 가구가 사는 골짜기 마을이다. 민가 밭 옆에 차를 대고 물길 건너 큰조릿골로 올랐다. 대장은 스틱 두 개를 양손에 들고 천천히 앞서 나갔다. 지형이 조리 모양이어서 또는 자생하는 조릿대가 많아 조릿골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기자 : 야생화 탐방지로 큰조릿골을 추천한 이유는?
김부래(이하 김) : 스스로 철마다 피고 지는 게 야생화다. 어느 산이든 꽃이 있다. 이름난 군락지, 화려한 꽃밭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무리 지어 피든 홀로 피든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다. 큰조릿골엔 무리 지어 피는 경관은 없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라. 다양한 꽃들을 만날 수 있다. 인적이 뜸해 훼손이 전혀 없는 골짜기다. 더구나 탐방길 끝에는 내가 좋아하는 바위굴(용혈)이 기다린다. 깨끗한 물이 사철 그 구멍에서 쏟아진다. 가보면 안다.
(왼쪽에 작은 물길을 두고 이어진 연초록 숲길을 걷는다. 초입에서 흰 꽃송이를 무성하게 드리운, 아까시나무를 닮은 꽃나무를 만났다.)
기자 : 꽃송이가 아까시꽃보다 깔끔하고 향기는 덜한데.
김 : 귀룽나무다. 한방에서 구룡목이라 부르고 간 해독제로 쓴다. (꽃을 한줌 훑더니 입에 넣고 씹는다) 먹어 보라. 숙취가 있다면 좀 나아질 것이다. 이 나무엔 나비들이 알을 많이 낳는다. 새가 잘 앉지 않는다는 걸 나비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나무에서 나는 독특한 냄새를 새나 동물들이 싫어한다. 나뭇가지를 꺾어 두더지 굴 앞에 놓으면 얼마 뒤 두더지가 이사 간다.
(흰 꽃을 탐스럽게 피워낸 조팝나무 무리를 지나며, 데쳐 먹으면 맛있다는 개미취와 여름에 우산 모양의 흰 꽃을 피운다는 약용식물 구릿대를 본 뒤 앙증맞게 핀 제비꽃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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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동에 꽃을 피우는 족두리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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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이 꽃이 태백에서 발견된 태백제비꽃이다. 제비꽃에는 남산에서 발견된 남산제비꽃과 잔털제비꽃 등 6종이 있다. 아주 어여쁜 토종 꽃들이다. 그러나 이 제비꽃을 제대로 연구하는 학자가 아직 없다고 들었다. 일반인 중엔 제비꽃을 외래종으로 아는 이도 많다. 아쉽고 안타깝다.
기자 : 이건 식용나물 어수리 아닌가?(전날 산자락에서 어수리 뜯는 아낙네를 만났다)
김 : 맞다. 여기 사투리로 으너리·어느리라고 한다. 맛도 좋고 향기도 좋은 산형과에 속하는 산나물이다. 데치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다. 산나물 중에서도 고품질 나물에 속한다. 왜냐. 날로 먹으면 곰취·당귀·누리대·참나물 등 다섯 가지의 맛을 내기 때문이다. 조금만 맛보자.(어수리 잎 서너장을 뜯어 배낭에 넣었다)
(물길엔 물이 말랐다. 석회암 지대여서 물은 수시로 땅밑으로 복류한다. 수줍게 고개 숙인 보라색 꽃들을 만났다.)
기자 : 얼핏 보면 그저 그런 꽃인데, 들여다볼수록 예쁘다.
김 : 예쁘지 않은 꽃이 어디 있겠나. 벌깨덩굴이라는 거다. 잘 보라. 벌, 늘어진 꽃잎 아랫입술은 벌이 앉으라는 곳이요, 깨, 깻잎을 닮은 잎에선 깨 향이 나며, 덩굴, 뻗어가기는 덩굴식물처럼 뻗는다. 그래서 벌깨덩굴이다. 참 쉽지 않나.
(물길 건너 비탈길을 느릿느릿 걷는다. 물소리가 잦아들자 검은등뻐꾸기의 맑은 울음이 골짜기를 메웠다. 안 보이던 꽃들도 대장이 스틱을 갖다 대는 순간 자태를 드러냈다.)
기자 : 이건 고사리 종류 같은데.
김 : 음, 양치식물인 고사리류가 많이 눈에 띈다. 검은빛이 도는 이건 참새발고사리, 둥글게 원형으로 돋아난 저건 관중이라는 것이다. 관중은 깔대기 모양 안으로 쌓인 낙엽에서 영양을 섭취한다. 참새발고사리는 고급 고사리다. 옛날 할머니들은 ‘흑고사리’라 부르며 최고의 나물로 쳤다. 이걸 삶아 냄비 밑에 깔고 고등어·꽁치를 조려 놓으면, 열이면 여덟이 생선토막을 헤치고 이것만 집어 먹는다. 부드럽고 고소하기 이를 데 없다.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던 대장이 마침내 찾을 것을 찾았다는 듯 스틱으로 길섶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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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조릿골에서 자주 보이는 양치식물 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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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자, 이 꽃에 대해 할 얘기가 있다.
기자 : 꽃이라니, 잎만 있지 꽃은 보이지 않는데.
김 : 밑동을 보라. 줄기 밑 땅에 붙어 핀 족두리 모양의 붉은빛 도는 꽃이 보이지 않는가. 이름도 족두리풀(족도리풀)이다. 항균작용이 강해 뿌리를 약재로 쓰는데 한방에서 ‘세신’이라 부르는 게 이것이다. 꽃이 왜 땅에 붙어 필까. 벌과 나비가 드문 이른 봄에 피기 때문이다. 꽃에선 생선 썩는 냄새가 난다. 땅에 사는 곤충과 벌레들이 냄새를 맡고 모여들어 수정을 시킨다. 재밌는 얘기가 있다. 이른봄애호랑나비라는 멋진 나비가 족두리풀 잎 뒷면에 알을 낳는다. 딱 하나만 낳는다. 옛날 약초꾼들이 족두리풀(세신)을 마구 캐가 한때 희귀종이 됐었다. 그런데 중국산 세신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다시 족두리풀이 흔하게 됐다. 이른봄애호랑나비의 개체수도 늘어났다. 이것이 자연이다. 참고로 이른봄애호랑나비는 한번 짝짓기한 암컷은 다시 교미할 수 없다. 수컷이 암컷에 교미 방지 주머니를 채워놓기 때문이다. 일종의 정조대다. 이렇듯 꽃을 알려면 숲 속의 다른 동식물 생태도 알아야 한다.
(갈증이 느껴질 무렵 아담한 이끼폭포에 이르렀다. 대장은 ‘잘 먹겠소’ 하며 폭포물을 받아 마셨다. 물길 옆 언덕을 넘어가자 절벽이 나타나고 그 아래쪽에 뚫린 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로 60㎝, 세로 1m가량의 굴에서 물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용혈’로, 폭포 옆엔 제단이 마련돼 있다. 폭포에서 내려와 물가에 앉아 김밥을 먹었다. 대장이 뜯어뒀던 어수리를 찬물로 씻어 김밥에 곁들여 먹는 맛이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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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깨덩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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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숲이 주는 혜택은 무궁무진하다. 그것을 잘 살피고 느껴야 한다. 하산이다.
(내려오면서 잎이 아름다운 까치박달나무, 알코올 해독제로 쓴다는 산겨릅나무, 재질이 강해 나무못으로 썼다는 고추나무, 뼈에 좋다는 딱총나무 등 나무를 만났다. 올라갈 때 들은 꽃 이름이 아득해질 정도로 무수한 풀·꽃·나무의 설명을 들었다.)
기자 : 짧지만 알찬 숲 탐방이었다. 풀꽃 한 포기가 다시 보이는 느낌이다.
김 : 처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접하면 소유욕이 생긴다. 그러나 숲을 자주 찾아가 꽃·나무를 만나고 그 이름을 자꾸 부르면, 욕심이 사라지고 그 식물을 사랑하게 된다. 새소리·바람소리가 그것을 돕는다. 꽃이 듣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꽃이 안 피었어도, 졌어도 그 식물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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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쪽지
개미취에서 딱총나무까지 다 있네
◎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영동고속도로~원주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제천나들목~38번 국도~영월~정선 사북~두문동재터널~태백시. 시내 들어가기 전 검룡소 팻말 보고 35번 국도로 좌회전, 삼수령 넘어 검룡소 입구 지나 하사미마을로 간다. 미동초교 하사미분교 터 옆길로 가리골 팻말 보고 좌회전 3㎞ 마을로 들어간 뒤 세번째 집 부근에 차를 세우면 물길 건너 돌밭 옆으로 큰조릿골 들머리가 보인다. 용혈까지 약 1.5㎞. 길이 뚜렷하지 않으므로 안내를 받는 게 좋다.
◎ 여행문의 | 태백시청 관광문화과 (033)550-2584. 생태숲 해설가 김부래씨 011-9919-3267.
◎ 큰조릿골 봄 산행에서 만난 식물 | 개미취·수리취·앉은부처·황기·구릿대·태백제비꽃·잔털제비꽃·남산제비꽃·벌깨덩굴·고사리·참새발고사리·관중·속새·개별꽃·큰개별꽃·갈퀴현호색·점현호색·꿩의다리·홀아비바람꽃·연복초·족두리풀·쥐오줌풀·괭이눈·누른괭이눈·선괭이눈·애기괭이눈·산당귀·땅두릅·여우오줌·속새·사방오리나무·산겨릅나무·마가목·다릅나무·고추나무·딱총나무·소나무·신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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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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