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6.30 20:48 수정 : 2010.07.03 12:14

사진 왼쪽부터 〈천사와 악마〉 〈본 콜렉터〉, 〈용의자 X의 헌신〉 〈이태원 살인사건〉.(〈한겨레〉 자료사진)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셔터 아일랜드’부터 ‘이태원 살인사건’까지 추리영화 추천작

 미스터리를 영화로 보는 것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다. 추리 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잘 알겠지만, 미스터리의 즐거움 하나는 추리의 과정이 세세하게 밝혀지는 그 순간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하나 둘씩 무심하게 단서를 던져주고, 때로는 역정보도 흘리면서 독자와 게임을 벌이다가 결정적인 순간 이건 저렇고, 저건 어떻고 등등 증거와 이유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바로 한순간 말이다. 소설에서는 때로 서술 트릭도 활용하면서 작가가 자신의 페이스대로 모든 것을 유도할 수 있지만, 영화에서는 어쨌건 눈에 보여야만 한다. 그러니 영화에서는 모든 것이 밝혀질 때 주로 플래시백(회상 장면)을 쓰지만 대개는 긴장감이 떨어지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하여 미스터리 영화에서는, 트릭 자체보다 액션을 위주로 풀어가거나 멜로 라인을 강조하는 등으로 변형되는 경우가 많다.

‘셔터 아일랜드’ 완벽한 화면+현란한 연기 뛰어나

하지만 모든 미스터리영화가 그런 것은 아니다. <미스틱 리버> <비를 바라는 기도>의 데니스 러헤인이 쓴 <살인자들의 섬>을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가 각색한 <셔터 아일랜드>는 정통적인 방법으로 미스터리를 다룬다. 연방 보안관 테디 다네일스는 동료인 척과 함께 고립된 섬에 위치한 정신병원 내에서 벌어진 실종 사건을 조사하러 간다. 의사, 간호사, 병원 관계자들은 뭔가 숨기고 있고, 폭풍우까지 몰아치기 시작하자 섬 자체가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테디가 느끼는 불안감과 공포 그리고 정신병원을 포함한 섬 전체에 드리워진 거대한 비밀을 어두운 미로처럼 구성하여 관객이 중압감을 느끼게 유도한다. 마치 ‘셔터 아일랜드’란 제목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겨놓은 듯하다. 완벽하게 짜인 화면과 배우들의 현란한 연기는 <셔터 아일랜드>를 중후한 스릴러로 이끌어간다. 다만 너무 무거워서 부담스러운 게 흠.

 국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의 하나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오키상 수상작을 각색한 <용의자 X의 헌신> 역시 원작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소설에는 없고, 드라마에서 등장했던 여자 형사 우쓰미가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점만 다르다. <용의자 X의 헌신>은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가는 일반적인 미스터리와 달리 처음에 범인을 제시하고 그의 트릭이 무엇인지 밝히는 과정으로 전개된다. 야스코와 딸 미사토가 돈을 갈취하며 폭력을 휘두르던 전남편을 정당방위로 죽이게 되고,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수학교사 이시가미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며 그 누구도 깰 수 없는 알리바이를 만들어낸다. 난관에 부닥친 우쓰미는 물리학자 유카와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고, 배후에 유카와의 대학 친구이며 수학 천재였던 이시가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엔지니어 출신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하나의 주제를 직선으로 파고들어가는 작가다. <용의자 X의 헌신>에서는 모든 것을 배제하고, 한 사람의 마음속으로만 들어간다. 우리들이 범죄라고 말하는, 그러나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한 이시가미의 행동의 근원을 파고들어간다. 수학과 과학은 하나의 답을 위해 필요 없는 모든 것을 버린다. 냉정해 보이지만, 그 순수한 탐구에는 인간의 열정과 온정이 숨어 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과학도의 냉엄한 시선으로 세상을 지켜보면서, 그 안에 숨 쉬는 인간의 체온을 찾아내는 탁월한 작가다. 영화로 각색된 <용의자 X의 헌신>은 그런 이시가미의 마음과 함께 수학과 과학의 ‘논리’를 통해 펼쳐지는 대결을 멋지게 그려낸다.


댄 브라운 원작들은 영화로 보는 재미도 ‘쏠쏠’

 요즘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범죄 드라마는 ‘과학적 증거’와 감식을 생생히 보여주는 <시에스아이>(CSI) <엔시에스아이>(NCIS)이다. 베스트셀러 작가 제프리 디버 원작의 <본 컬렉터>는 전범죄현장에 가지도 않은 채 사건을 풀어내는 ‘안락의자 탐정’에 <시에스아이>를 결합시킨 듯한 작품이다. 범죄학자 링컨 라임은 안드레아 색스 경관이 범죄 현장에서 모은 증거와 현장 사진 등을 통해서 사건을 파헤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범인 신발에서 떨어진 흙을 조사하여, 맨해튼 어느 지역에서 19××년대에 공사할 때 쓰인 성분이 있음을 밝혀내는 것이다. 링컨 라임 시리즈는 국내에도 8권이 나와 있고, 적어도 재미라는 점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작품이다. 영화는 원작의 서스펜스에 미치지 못하지만, 덴절 워싱턴과 앤절리나 졸리의 미묘한 조합만은 원작 이상이다.

 댄 브라운 원작의 <천사와 악마>는 <다빈치 코드>보다 먼저 출간되었지만, 영화는 그 이후인 것으로 그려진다. 이번에는 일루미나티가 악역으로 등장하고, 반물질 개발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의미도 물어본다. 하지만 댄 브라운의 소설을 굳이 영화로도 보고 싶은 이유는, 원작에서 설명하는 그 수많은 기호와 상징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재하는 수많은 정보와 역사적 사건, 건축물과 예술품 등을 통해 전개되는 소설이었기에, 영상의 강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니 최신작 <로스트 심벌>도 당연히 영화로 보고 싶다. 그밖에 미스터리의 고전을 보고 싶다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에 빛나는 <양들의 침묵>이 있다. 수수께끼를 적절히 던지면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연출력도 탁월하지만 <양들의 침묵>의 최고의 매력은 역시 한니발 렉터다. 가장 잔인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살인자 한니발 렉터. 한국의 미스터리 영화를 보고 싶다면 <이태원 살인사건>을 추천한다. 아직도 미궁에 남은, 이태원에서 벌어진 대학생 살인사건의 재판 과정을 그린 <이태원 살인사건>은 현재 한국의 ‘범죄 수사’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투박하긴 하지만, 스릴러를 표방한 대부분의 한심한 한국 스릴러영화보다는 훨씬 더 긴장하게 된다.

 김봉석/대중문화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ESC : 커버스토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