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25 12:58
수정 : 2010.11.27 12:12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잘못된 집 구조가 범죄인 만든다” 건축의학 일본서 인기
남향에 배산임수. 풍수지리에서 집의 위치를 정할 때 삼는 중요한 기준이다. 지맥과 기운을 논하지 않아도 남향과 배산임수는 사람 살기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배산임수 역시 우리나라 전통 촌락 입지의 중요한 원칙이었다. 산은 겨울나기를 위한 땔감을 얻고 먹을거리를 채집할 주요 원천이었으며 하천은 벼농사에 핵심적인 물을 얻는 데 필수적이었다. 과학적 근거가 있었다는 것이다.
삶의 여건이 많이 바뀌었지만 남향집은 여전히 유효하다. 주택 시세는 집의 방향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난다. 빛이 건강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다. 계절적인 우울증이 겨울에 많이 나타나고 봄과 여름이면 증상이 완화되는데, 햇빛을 덜 쬐면 마음과 몸에 모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 일조권 보호를 법률로 규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오늘날 주거 환경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더욱 구체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나라에는 덜 알려져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꼽히는 ‘건축의학’이다. 2006년 말 일본 건축의학협회가 설립됐을 정도다. ‘21세기 풍수지리’로 부를 만한 건축의학이란 ‘인간의 질병은 주위 환경의 영향을 받아 생긴다’는 것을 전제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도록 주택을 설계·시공하는 것’으로 구현된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집의 구조가 인간의 뇌에 직접 영향을 준다는 주장까지 담겨 있다. 나라에 따라 여러 다른 변수가 있을 수 있지만 설명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일본의 한 건축의학자는 범죄자나 비행 청소년의 집 구조를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논문을 내놨다고 김재관 소장이 전했다. 이 논문을 보면, 집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계단이 있는 집에선 비행 청소년이 나올 개연성이 크다고 한다. 자녀가 귀가하자마자 계단을 통해 제 방에 들어가버릴 여지가 커서 그렇다는 것. 부모와의 대화 부족이 청소년 일탈의 주요인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범죄자를 낳는 집 구조로, 현관과 화장실이 나란히 배치된 경우를 들기도 한다. 화장실을 드나들며 사람들을 마주할 일이 빈번하기 때문에 서서히 수치심이 사라지고 더불어 죄책감까지 차츰 줄어드는 두뇌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에 딱 들어맞는 얘기는 아니라 해도 집 구조가 사람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집수리를 제대로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다. 집수리를 주거가치의 향상이 아닌 자산가치의 배가로 인식하는 경향이 큰 우리나라에선 더욱 그렇다.
주거 빈곤층의 집을 수리하는 데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홀몸노인이나 빈곤가정의 경우 열악한 주거환경 탓에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기도 하고 잠재적 범죄자가 양산되는 일도 벌어지기 때문이다. 저소득 홀몸노인의 상당수는 불건강한 주거환경에 노출돼 질병에 시달리면서 사회적 비용이 늘어나고 있다. 노후화된 주택 밀집 지역에서 청소년들이 범죄에 빠져드는 일도 발생한다.
홍인옥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위원(지리학 박사)은 “사회적 문제나 열효율 등 환경문제를 생각해도 낡은 집들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가 필요하다”며 “일부 극소수 빈곤층에게만 몰려 있는 정부나 기업의 시혜적 차원의 집수리는 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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