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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에서 재활용이 어려운 일회용컵 사용을 줄여보자. 텀블러나 머그잔을 쓰면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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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esc VS 작심삼일|김미영 기자의 ‘지구사랑 매혹녀’ 실천 보고서
이게 다 만화가 ‘메가쑈킹’ 때문이다. 어느 날이었다. 메가쑈킹이 트위터에 “샴푸와 비누를 쓰지 않는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저도요. 샴푸 안 쓴 지 ○○일째” “맹물샤워해요” 같은 리플이 줄줄이 붙었다. 메가쑈킹이 그들에게 말했다. “지구를 사랑하는 매혹녀들.” 새해부터 ‘지구를 사랑하는 매혹녀 되기’(줄여서 지구사랑 매혹녀) 계획은 여기서 시작됐다. 호기심이 일었다. 피부의 기름기가 온통 두피로 몰린 나는 매일 머리를 감는다. 안 그러면 하루가 못 돼 떡이 지고, 간지럽다. 샴푸, 보디샴푸 같은 화학세제가 환경적으로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포기하고도 문제없다는 이들을 보니 이참에 한번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환경보호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노 임팩트 맨>)나 다큐멘터리(북극·아마존·아프리카의 눈물 시리즈)를 보며 죄책감도 느꼈던 터다. 샴푸로 머리 안 감기와 보디샴푸 안 쓰기가 지구사랑 매혹녀가 되는 첫 강령이라면 실천 옵션은 탤런트 공효진이 쓴 환경에세이 <공책> 따라 하기다.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환경보호를 하되 그 범위를 넓히려고 노력하는 공효진의 친환경적 생활수칙이 마음에 들었다. 2011년 새해를 앞두고 지구를 위해 ‘더럽고 꾀죄죄하게 살기’를 결심한다. 2010년 12월30일 | 습관은 무섭다. 전날 밤 머리를 안 감기로 결심하고 잤는데 첫날부터 실패다. 아침에 샤워하다 무심코 손바닥에 샴푸를 덜어버렸다. 샴푸를 용기에 다시 담을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그냥 감았다. ‘낼부터 하지. 뭐.’ 세상의 모든 지키지 못할 약속은 내일이란 핑계가 있어서다. 대신 앞으로 샴푸를 쓰지 않아도 머리가 덜 기름질 수 있게 평소 쓰던 헤어제품을 안 썼다. 파마 컬을 살려주는 헤어젤, 머리에 윤기를 주는 헤어에센스만 안 써도 기름기가 덜할 것 같았다. 다행히 보디샴푸는 쓰지 않고 물샤워만 했다. 오전 11시 | 취재원을 사내 커피숍 ‘짬’에서 만났다. 커피를 주문할 때 “일회용컵 대신 제 머그잔을 쓸게요”라는 말을 못했다. 지구사랑 매혹녀 행동강령 중 하나인 ‘일회용품 안 쓰기’ 실패다. 회사 안이니 사무실의 내 자리에서 머그잔을 들고 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심지어 짬에선 일회용컵 안 쓰기 운동을 하는 중이다. 개인 머그잔을 쓰는 이들이 쿠폰 도장을 다 찍으면 한 잔을 공짜로 준다. 머그잔을 쓰면 쓰레기도 줄이고 돈도 벌 수 있다. ‘정신 차리자’고 다짐한다. 저녁 7시 | 일과를 마치고 2010년 마지막 송년회 자리에 갔다. 평소 고기를 사랑하는 육식녀 세 명이 연탄불로 고기를 굽는 고깃집에 모였다. 담배 냄새와 고기 냄새는 치명적이다. 머리와 옷에 달라붙어 여간해선 사라지지 않는다. 공중으로 튀는 기름은 어쩔 텐가. 입에선 꽃등심과 갈매기살, 돼지껍데기가 살살 녹는데 내일이 살짝 걱정된다. 2010년 12월31일 | 세수만 하고 출근 준비를 서두른다. 평소엔 머리를 감고 헤어드라이기로 말린 뒤 손가락빗으로 컬을 만들었지만 오늘은 그냥 빗으로 엉킨 파마머리를 빗는다. 머리에서 연탄불냄새, 담배냄새가 심하게 난다. 섬유탈취제 ○○○○가 생각난다. 머리냄새 탈취제가 있다면 당장 사서 뿌리고 싶다. 냄새만 빼면 상태는 양호하다. 아직 간지럽지도 않고 비듬도 없다. 샴푸를 안 써 수질오염을 줄였고, 헤어드라이기를 안 써 에너지 낭비를 막았다는 자부심에 뿌듯하다. 그러나 힘없이 늘어진 머리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고, 밤이 되면 떡이 될 머리 상태가 불안하다.오후 2시 | 달달한 믹스커피가 생각나 머그잔을 들고 탕비실에 갔다. 믹스커피 옆에 종이컵이 쌓여 있다. 바나나맛 우유는 항아리 모양의 플라스틱 용기에, 커피맛 우유는 삼각뿔 용기에, 믹스커피는 종이컵에 담겨야 맛이 난다고 느끼는 나다. 그러나 일회용 종이컵에 숨은 진실을 알고 나니 종이컵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든다. 종이컵의 내부 코팅은 기계를 이용해야만 벗길 수 있다. 구기지 않고 자판기 옆 종이컵 전용 수거함에 모아야 재활용이 가능하다. 머그잔에 믹스커피를 탄다. 믹스커피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데 아차 싶다. 종이컵 쓰레기는 줄였는데 또다른 쓰레기가 발생했다. 유리병에 든 커피·프림·설탕을 쓰면 쓰레기를 더 줄일 수 있는데 안타깝다. 저녁 8시 | 친구를 만나 커피숍에 갔다. 날씨가 추우면 따뜻한 핫초코가 생각난다. 커피숍에서 묻는다. “머그잔과 일회용컵 중 어디에 드릴까요?” 뭘 묻나. 당연, “머그잔이오.” 지구사랑 매혹녀 계획을 들은 친구는 “신년계획이 더럽다”며 웃는다. 머리 상태는 기름기가 생기고 살짝 간지러웠으나 참을 만하다. 찬바람 덕분인지 담배냄새, 고기냄새는 덜 나는 듯하다. 그래도 집에 오는 길에 탄 전철에서 털모자를 꾹 눌러쓴다. 2011년 1월1일 | 새 아침이 밝았다. 머리 안 감기 이틀째다. 새해 첫날마다 집 안 대청소와 목욕을 빼놓지 않는데 잘 씻지를 못해서인지 첫날부터 영 개운치 않다. 오늘은 샴푸 없이 손가락으로 두피를 박박 문지르며 헹궈냈다. 미리 ‘이엠(EM)환경센타’나 ‘초록마을’ 같은 친환경쇼핑몰에서 샴푸 대용품인 이엠(효모, 유산균 같은 유용미생물) 효소로 만든 친환경 세제를 구해둘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물로만 씻는 게 개운치 않은 이들에겐 이런 세제가 도움이 될 터다. 두피마사지를 한 덕인지 간지러움은 없다. 탈모가 진행되는 이들에게 샴푸 없이 머리 감기가 효과적이라더니 이 때문인가 보다. 저녁 8시 | 짐이 있어 차를 몰고 나갔다.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지만 직접 운전해야 할 때도 있다. 환경오염은 올바른 운전습관으로도 막을 수 있다. 연료소모량을 줄이기 위해 과속·급발진하지 않기, 신호대기 때 기어를 중립에 두기, 정차 시 시동 끄기 등을 생활화하면 된다. 지켜보니 어려운 일도 아니다. 2011년 1월2일 | 샴푸 안 쓰기 3일째. 슬슬 간지럽다. 머리는 참기름을 바른 듯 윤기가 흐른다. 물로만 감아도 괜찮던 전날에 비해 오늘은 상태가 심각하다. 외출 포기. ‘방콕’이다. 대신 <공책>을 보고 집에서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 생활수칙을 점검·실천해본다. 먼저 냉장고에서 자석 떼기다. 자석이 전기를 흡수해 전력이 낭비된단다. 각종 중국집에서 보낸 자석 광고지, 조카가 좋아하는 거북이, 딸기 모양의 병따개를 떼어내 부엌 서랍에 넣는다. 잘못된 설거지 방법도 바꾼다. 설거지를 끝내고 개수대 거름망을 비우면 세제가 묻은 음식물 쓰레기가 동물들의 사료로 사용될 터다. 개수대 거름망을 먼저 비운 뒤 세제로 설거지를 하면 이게 환경설거지다. 엄마에게도 신신당부를 한다. 친환경 생활수칙 지키기는 늘 어제보다 오늘이 나았다. 습관적으로 하던 일은 한번에 고칠 수 없었지만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똑같은 행동을 할 때 제동을 걸었다. 사내 커피숍 짬에 머그잔 쿠폰을 만들었고, 화장실에선 더는 종이수건을 쓰지 않는다. 내가 변해야 우리가 변한다. instyle@hani.co.kr·참고도서 공효진 <공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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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지구를 사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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