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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지브이(CGV) 압구정 상영관에서는 오페라 공연 실황을 담은 <메트 오페라 온 스크린>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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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손 뻗으면 닿을 듯…소극장·영화관에서도 즐긴다
오페라하우스에 들어서며 나도 모르게 발뒤꿈치를 든다. 거대하고 화려한 오페라하우스의 위용에 몸은 잔뜩 긴장감을 품는다. 아는 것 하나 없는데도 안내책자 들여다보며 허리 꼿꼿이 세우고 고개 끄덕여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 오페라극장 입구에선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사람들끼리 품위 넘치는 포즈로 인사를 나눈다. 사회지도층의 사교 장소라도 되는 양.
팝콘·음료 먹으며 스크린 오페라 관람
오페라가 귀족의 전유물이라도 되나? 그렇지 않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물론 오페라 보기에 돈이 많이 들긴 한다. 그러나 오페라 대중화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으며 대중의 관심 역시 확산되고 있다. 큰돈 들이지 않고 기죽지 않으면서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이유다. 그 대표적 공간, 바로 영화관과 소극장이다.
지난 1일 저녁 7시30분 압구정 씨지브이(CGV) 5관. 편안한 차림의 관람객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중년의 부부부터 10대로 보이는 학생들까지 각양각색이다. 혼자 자리를 잡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블록버스터 영화만큼 자리가 꽉 들어차지도 않으니, 자리 몇 칸을 남겨두고 앉으면 방해받지 않고 공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막이 오르자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 공연 실황이 널따란 영화관 스크린 위에 펼쳐진다. 보통 2시간을 넘지 않는 영화와 달리 이번 오페라는 무려 3시간30분짜리다. 팝콘을 우적거리며 탄산음료를 들이켠다. 그러다 문득 걱정이다. 화장실은 어쩌나? 조금만 참으시라. 실제 오페라 공연 때처럼 공연시간 사이에 2차례 쉬는 시간(인터미션)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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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오페라 <목소리&전화>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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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 오페라…>는 쉐라톤그랜드워커힐 시어터와 호암아트홀에서도 상영중이다. 워커힐과 씨지브이는 메트 오페라와 해설, 한 끼 식사까지 곁들인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워커힐은 브런치와 오페라 관람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메트 오페라 브런치’를 매달 6~7회 진행중이다. 유명 오페라 전문가들한테 작품 해설까지 들을 수 있다. 씨지브이는 6월부터 압구정 상영관 내 ‘씨네드쉐프’에서 ‘오페라톡’을 연다. 팝페라 가수 임형주씨가 오페라를 해설해주는 오페라톡은 기업 브이아이피 고객 대상 이벤트로 시작해 일반 관람객 대상으로 확대했다.
작은 무대 쩌렁쩌렁 울리는 노랫소리
오페라 공연 실황도 볼만했지만 그래도 공연의 참맛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음악’에 있을 터. 스크린 아닌 무대에서도 오페라와 친근하게 만날 길은 있다. 소극장이다. 지난 6일 저녁 서울 대학로 스타시티의 ‘오씨어터’를 찾았다. 장 콕토의 비극을 오페라로 만든 <목소리>와 잔 카를로 메노티의 희극 오페라 <전화>를 각각 40분씩 엮어낸 <목소리&전화-혹은 삼각관계> 공연이 여기서 열렸다. 창작집단 소음과 폭스캄머앙상블이 함께 기획·주최한 오페라다.
입장료는 3만원(학생 2만5000원). 120여 객석은 만석이었다. 가장 뒷자리에 앉았는데도 무대 위 오페라 가수가 닿을 듯 가깝다. 20여m 앞 무대 위 주인공의 목소리가 작은 극장을 가득 메웠다. 소극장 오페라의 가장 큰 특권이다. 위엄 어린 오페라하우스에서 저 꼭대기 가장 싼 자리였다면 망원경으로 무대 따라가기만도 바빴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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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의 쉐라톤그랜드워커힐 시어터에서는 브런치를 먹으며 오페라 공연 실황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어 가고 있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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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싱싱하고 소박한 오페라도 있다. 게다가 표값은 공짜거나 싸기까지 하다! 음대생들이 신명나게 꾸미는 정기 오페라 공연이다. 대부분 음대에서 때마다 이런 정기 공연을 연다. 서울에만 음악대학이 20여곳이나 되니 오페라 공연도 그만큼 자주 열린다. 특히 대학의 정기 오페라 공연에는 널리 알려진 작품이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페라 입문자의 나들이 코스로 안성맞춤인 셈이다. 오페라는 멀다고? 멀고 멀었던 오페라는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지금, 여기’ 우리 곁에 있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30FB>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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