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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2 14:12 수정 : 2011.06.02 14:12

(왼쪽부터) 1.1970년대 독일에서 건너온 압력솥은 한국에서 밥 짓는 도구로 인기를 얻었다.(휘슬러코리아 제공) 2, 3. 1960년대 등장한 양은솥과 전기밥솥<30FB>압력솥의 기능을 더한 전기압력밭솥.(<한겨레> 자료사진)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가마솥·양은솥·압력솥·전기솥…밥짓기의 변천사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밥솥을 열었지만, 비어 있을 때의 절망감이란…. 결국 1분30초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즉석밥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 일이 다반사다. 밥불을 때느라 연기가 매캐했던 부엌과 고슬고슬한 외할머니표 솥밥은 추억 속에만 존재한다. 밥도 짓고, 고구마도 쪄 먹을 수 있는 전기압력밥솥이 부엌을 점령한 지 오래다.

10명은 훌쩍 넘은 대가족이 일반적이고, 아궁이 있는 부엌에서 음식을 하던 1950년대까지는 가마솥으로 밥을 짓는 가정이 많았다. 식구 서너명의 핵가족뿐 아니라 혼자 사는 가구의 비율이 20%를 넘어선 요즘, 가마솥으로 밥을 짓는다면 제정신 아닌 사람으로 볼 터. 더구나 아궁이도 없고 전기압력밥솥의 성능은 무지 좋아졌다.

무쇠 가마솥에 갓 지은 밥은 향수이자 추억이다. 그 밥맛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부러 무쇠솥을 사서 밥을 짓기도 한다. 시간도 30분 넘게 걸리고, 불 조절을 잘해야 하니 번거롭기 그지없지만, “밥맛은 솥밥이 제일”이라는 사람들이 없어지지 않았으니, 박물관이 아닌 우리네 가정에서도 무쇠솥(아궁이 대신 가스레인지를 쓰지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1960년대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되면서 도시 서민들은 아궁이의 장작불이 아닌, 가스나 연탄불로 밥을 짓기 시작했다. 장작을 한껏 밀어넣어 센 불을 만들 수도 없었던 서민들은 가마솥을 닮은 ‘양은솥’을 찾았다. 양은은 구리에 아연, 니켈 등을 섞어 만든 소재여서 그만큼 열전도율이 높았기에 장작불보다 화력이 약한 가스나 연탄불에서 밥짓기에 알맞았다. 서울 청량리시장 한편에 즐비한 작은 밥집들은 아직도 ‘양은솥밥’을 지어 주린 이들을 끌어모은다.

양은솥에 이어 혜성같이 등장한 밥짓기 도구가 있다. 바로 유럽에서 유래한 ‘압력솥’이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돼지고기 등을 삶을 때 압력솥을 썼다. 1970년대 독일로 건너간 탄광노동자 등이 압력솥에 밥을 지어 먹기 시작한 게 ‘압력솥밥’의 유래가 됐다. 묵은쌀로 지어도 맛 좋은 밥이 되는 압력솥의 존재는 곧바로 한국에도 알려져, 독일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이 1970년대 생활용품 판매점에 등장했다.

‘일제 코끼리표 밥솥’을 기억하는지? 압력솥은 밥짓기에는 좋았지만, 따뜻한 채로 보관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의 퇴근이 늦을 때면, 뚜껑이 있는 밥그릇에 밥을 가득 넣어 아랫목에 놓아두었던 기억이 아련하다. 이런 번거로움을 덜어준 게 전기밥솥이다. 이어 국내 생활가전업체들은 전기밥솥과 압력솥의 장점을 더한 전기압력밥솥을 개발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는 시간부터 1시간이 넘던 밥 짓는 시간은 이제 최단 9분대(2인분 기준)로 당겨졌다. 압력솥은 유럽에서 비롯됐지만, 이제 한국산 전기압력밥솥은 유럽으로 수출되고 있다. 하동영 쿠쿠홈시스 마케팅팀 대리는 “2009년부터 스페인 등에서 전기압력밥솥이 ‘멀티 쿠커’로 불리며 삶는 요리 하는 데 인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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