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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12월 노년기에 접어든 달자(왼쪽)가 다른 새끼 수달의 엉덩이에 기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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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국내 3대 아쿠아리움 물길 타고 흐르는 사랑과 배신의 콘체르토
수족관 속 물길은 잔잔하지만 동물들 사이를 일렁이는 파도는 거칠다. 그들에게도 사랑과 이별, 질투와 배신의 드라마가 있다. 〈esc〉가 63씨월드, 코엑스 아쿠아리움, 부산 아쿠아리움 등 국내 3대 수족관의 아쿠아리스트(사육사)들에게 슬픔과 환희가 뒤섞인, 그 찐한 이야기를 캐물었다. 만나고 헤어지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4대 고민’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엄선한 ‘아드’(아쿠아리움 드라마) 3편을 소개한다. 앞으론 ‘이런 짐승만도 못한 것’ 같은 말은 못 하게 되리라. 영화화에 관심있는 분들은 직접 동물들에게 허락받으시라.
아침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
출연진: ‘작은발톱수달’ 알콩·달콩 부부, 달식·달자 부부
한줄평: 한 남자를 둘러싼 두 여자의 질투·복수, 그리고 화해의 대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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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발톱수달 달콩(암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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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부산 아쿠아리움으로 일본 수족관 출신의 작은발톱수달 알콩(수컷)·달콩(암컷<30FB>사진) 부부가 이민왔다. ‘엣지’ 넘치는 외모의 부부는 화끈했다. 알콩은 전형적인 마초 ‘나쁜 수달’, 달콩은 불타는 질투의 화신. 반년 뒤, 평화롭던 수달 수조에 역시 일본 출신의 달식(수컷)·달자(암컷) 부부가 이사왔다. 둥글넓적하고 수더분한 외모의 부부는 소박한 삶을 꿈꿨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달식을 못마땅해한 알콩. 급기야 달식은 알콩에게 물려 패혈증으로 숨진다. 폭력적 행동을 후회한 알콩은, 과부 된 달자를 둘째 부인으로 맞는 결단을 내린다.
남편의 축첩에 분개한 달콩은 가출해버린다. 며칠간 달콩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남편의 외도’에 항의하며 환풍구에서 ‘고공 시위’에 들어갔던 것. 3주간 꿋꿋이 단식을 이어갔다. 그러나 몰래 아마존 수조에서 피라냐를 꺼내 먹다 사육사에게 절도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달자가 수조로 압송되면서 1부2처의 ‘불안한 동거’가 시작되는데….
알콩과 달자가 함께 산 지 얼마 안 돼 새끼들이 나온다. 달콩이도 혼외정사로 낳은 새끼들을 예뻐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반목은 여전했다. 어느 날 알콩이와 다정하게 있는 달자를, 달콩은 물어뜯기 시작했다. 만신창이가 된 달자는 병원으로 갔지만 무정한 알콩은 그저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었다.
달자가 대수술을 받는 동안, 달콩이도 새끼를 낳았다. 달콩이가 산후조리차 수조 밖으로 요양을 떠난 사이, 달자의 처절한 복수극이 시작됐다. 달자는 달콩이의 새끼 한 마리를 물어죽여버렸다! 달콩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달자는 결국 사육사 숙소로 피난 겸 귀양을 떠난다. 그녀의 유배가 8년이나 이어질 줄이야…. 달자는 유배지에서 새끼를 키우며 중년을 맞았다.
2008년, 수달 나이로 노년기인 10살의 알콩은 폐렴으로 숨을 거둔다. 무책임한 그가 떠난 수조에서 달콩도 달자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짧은 화해의 시간도 잠시, 지난해 달콩이가 세상을 뜨고, 몇 달 뒤 달자도 뒤따랐다. 지금 수조 안에는 그녀들의 새끼들이 자라고 있다.
펭귄판 <연애의 기술> 3부작
출연진: 국내 3대 수족관 스타 펭귄 3인방, 청청·쫄랑·왕돌
한줄평: 펭귄판 옴니버스! 누가 펭귄을 ‘일부일처제의 상징’이라 했나
에피소드1 > 삼성동 카사노바, 공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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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펭귄 청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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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 아쿠아리움의 수컷 훔볼트펭귄 청청이(사진). 윤기 좔좔 흐르는 깃털에 세련된 매너로 젊은 암컷 펭귄들의 뜨거운 시선을 한몸에 받는 ‘인기남’이다. 그의 별명은 카사노바. 암컷들의 둥지를 자유롭게 오가는 그는 ‘일부일처제’의 펭귄 사회에서 ‘자유연애주의자’로 분류된다. 4년 남짓 짧은 생을 살며, 무려 세 마리 암컷의 마음을 흔들어놨다.
그의 치명적인 매력, 무엇일까. “은근한 날갯짓이죠.” 첫 연인 흑황이는 청청이의 매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아직 첫 만남도 기억한다. 다이빙하기 전 멍하니 서 있던 그녀에게 은근히 다가가 빛나는 날개로 옆구리를 콕콕 찔렀다. 그러나 뜨거운 교제도 얼마 가지 못했다. 흑황이는 어느 날 또다른 암컷 흑흑청청이와 함께 다정하게 수조 해변가를 거니는 청청이를 발견했다. “함께 수영하던 그날의 화려한 물갈퀴질, 이젠 잊었나요?” 흑황이의 원망도 소용없었다. 그는 카사노바였으니까.
뽀송뽀송한 둥지를 선물하겠다며 흑흑청청이를 꾀던 그의 눈이 돌아가는 일이 벌어진다. O라인의 균형잡힌 몸매에 진한 흑백 깃털을 가진 ‘5등신 미녀’ 청적이가 나타난 것이다! ‘인기녀’ 청적이는 ‘수컷 길들이기’에 능수능란한 펭귄. 청적이는 청청이의 마음을 휘어잡고 결국 ‘세기의 커플’이 돼 올해 초 결혼에 골인했다. 현재 청청이는 ‘육아’에 전념하고 있다.
막장드라마 같은 반전! 유전자 검사 결과, 첫 여인 흑황이는 수컷으로 밝혀졌다. 사육사들도 몰랐지만, 청청이는 여전히 모르고 있다.
에피소드2 > 펭귄계의 클레오파트라, 쫄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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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카스펭귄 쫄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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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아쿠아리움의 ‘바람녀’ 쫄랑이(사진)는 동물원계 명문가인 에버랜드 출신이다. 좌우 균형 완벽한 외모의 자카스펭귄인 그녀는 사육사까지도 유혹하는 ‘팜파탈’이다. 그녀의 특기는 애교. 2살 무렵부터 담당 사육사를 졸졸 쫓아다니고, 관심을 안 보일라치면 며칠이고 토라지는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다.
그녀가 어느 날부턴가 사육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기 시작했다. 연애 상대는 1살 연하의 뚱이. 외모 듬직하고 성격 우직한 자카스펭귄이었다. 서로 부리를 비비고, 함께 수영하며 사랑은 깊어만 갔는데…. 실은 그녀는 야심가였다. 퍼스트레이디가 되고 싶었다. 마침 수컷 자카스펭귄 사이에서 서열 1위였던 펭바람이 부인과 결별하고 혼자 지내고 있었다. 수조 한가운데 둥지를 틀고 온갖 암컷들에게 수작을 부리던 건달 두목 펭바람도 쫄랑이가 싫지 않았다. 쫄랑이가 살며시 날개를 흔들어대며 마음을 빼앗는 건 ‘저스트 텐 미닛’이면 충분했다.
뚱이는 그녀를 잊지 못했다. 돌아오지 않는 그녀를 둥지 안에서 밤새 기다렸다. 그러나 돌아온 건 펭바람의 날카로운 부리 공격이었다. 깊은 상처를 안고 뚱이는 결국 돌아서야 했다. 인과응보라 했던가. 끼를 주체 못하던 쫄랑이는 이웃사촌 노랑이의 둥지를 들락거리며 ‘위험한 이중생활’을 하다 파경을 맞았다. 뚱이의 저주였을까. 지금은 권력과 거리가 먼 평민 수컷과 둥지를 튼 쫄랑이의 삶은 평범할 따름이다.
에피소드3 > 여의도 연산군의 개과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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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펭귄 왕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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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씨월드의 임금펭귄 왕돌이(사진). 그는 20년 가까이 펭귄 수조의 권력을 잡아왔다. 여러 종류의 펭귄이 모여 사는 수조에서 ‘그의 부리 짓은 곧 법’이다. 누구에게도 고개를 숙여본 적 없다. 사육사쯤은 하인 정도로 생각해왔다. 일부다처제 성향을 보이는 임금펭귄의 특성상, 그는 3년마다 꾸준히 배우자를 바꿔왔다. 바람도 당당하게 피운다. 수조 속 암컷 모두 그의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남녀 사육사를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몸을 비비는 구애 행동까지 보인 적도 있다. “왜냐고? 내가 왕이니까.”
철권통치자 왕돌이에게도 시련이 왔다. 바람은 피웠지만 조강지처라 생각했던 암컷3번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다른 임금펭귄이 등 뒤에서 목을 물어 중추신경이 마비돼버렸다. 그는 이번 테러를 지하세력의 음모라고 판단했다.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식물펭귄이 된 암컷3번은 사육사의 손에 이끌려 수조 구석으로 밀려났다. 이제야 그녀의 빈자리를 느낀 왕돌이. 모든 권력을 뒤로한 채 그녀 앞에서 먹이 먹고 잠자며 병간호를 했다. 그러나 끝내 그녀는 숨을 거뒀다. 인생무상이라 했던가. 암컷3번을 잃은 뒤, 왕돌이는 방탕한 삶을 접고 독수공방에 들어갔다. 지금도 여전히.
물개쇼의 <여배우들>
출연진: 북미 출신 여류 물개 번개·홈즈
한줄평: 수족관 톱스타들의 소름 돋는 자존심 대결!
63씨월드에서 가장 인기 스타는 물개쇼의 주인공 번개(21)와 홈즈(11<30FB>사진)다. 둘 다 싱글이다. 모태 솔로가 아니라 한평생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수컷관계가 복잡해지면 공연에 집중 못 한다는 사육사들의 가르침 때문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와 화려한 쇼맨십을 위해 매일 4시간 가까이 연습하는 그녀들은 ‘톱스타’다.
10년 터울 그녀들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돈독하지 않다. 둘 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른다. 오타리아물개 가문으로 공연에 잔뼈가 굵은 터줏대감 번개는 최근 홈즈가 신경이 쓰인다. 날렵하고 민첩한 홈즈의 몸놀림에 사람들도 더 열광을 하는 듯하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물개인 홈즈도 큰 몸집으로 억누르는 번개가 못마땅하다. 몇번 으르렁대며 신경전을 벌인 적도 있다. “나 없으면 공연이 되겠어?”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 것 같아 본공연 때 거드름을 피우며, 사육사들을 골탕 먹일 때도 있다. “왜냐고? 난 여배우니까.”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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