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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18 10:47 수정 : 2011.08.18 10:59

올해 1월 안명규씨가 방문했던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의 인헤르토 농장에서 농부들이 수확한 커피의 무게를 재고 있다. 안영규 제공.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생두 찾아 대륙 탐험하는 커피 산지 전문가의 세계

커피 한 스푼에 설탕 두 스푼, 그리고 ‘프림’은 조금만. 10년 전만 해도 ‘커피’ 하면 인스턴트커피를 떠올렸다. 하지만 국내 커피 문화도 한참 바뀌었다. 유명 커피전문점에서 ‘테이크 아웃!’을 외치는 걸로는 ‘차도남’ 축에도 못 낀다. 이제는 보르도 와인 찾듯 에티오피아산, 케냐산 등 커피 산지에 따라 다른 커피를 골라 먹는 이들이 많다. 커피업계에서는 전세계에서 10%의 질 좋은 커피를 ‘스페셜티’라고 부른다. 좋은 커피는 직접 산지에서 들여와야 한다. 이처럼 새로운 커피를 발견하고 찾아내는 사람을 커피 헌터, 또는 산지 전문가라고 부른다. 가 아직은 낯선 국내의 커피 생두 산지 전문가 3명을 만나 그들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커피에서 대륙의 기질을 맛보다


안명규(48) 커피명가 대표
안명규(48·사진) 커피명가 대표의 별명은 ‘커피 전도사’다. 인스턴트커피가 대부분이었던 1990년대 대구에 원두커피 전문점 ‘커피명가’를 내고 당시에는 생소했던 로스팅(배전), 생두 산지 직거래 등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커피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오래전 ‘테이스터스초이스 수프리모’ 텔레비전 광고 모델로도 각인돼 있다.

그런 그가 커피 산지를 가야겠다 느꼈던 것은 2000년 초반이었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커피를 보급해왔다 자부했지만, 1998년 스타벅스 등 브랜드 커피숍이 국내에 상륙하고 ‘에스프레소’ 문화가 퍼지며 한계를 느꼈다. “일본 커피 서적의 번역서로만 알던 배전 기술로 이리저리 생두를 볶아봐도 그 맛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아, 재료가 중요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2002년 처음 찾아간 산지는 인도네시아였다. 당시 국내 커피업계에서는 그저 입소문으로 어디 커피 생두가 좋더라 정도 말할 수 있던 수준이었다. “커피는 3박자가 맞아야 잘 자란다고 합니다. 자연·지리적인 조건(고도·토양·위치 등), 신의 선물(일조량·강수량), 그리고 농부들의 노력. 산지를 찾는 이들도 이런 것을 보고 판단할 줄 알아야 좋은 커피를 고를 수 있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른 채 카메라와 짐만 챙겨서 떠난 답사는 2005년 중남미, 2006년에는 예멘·아프리카까지 이어졌다. 최근에도 1년에 3번은 산지를 찾는 그의 여정은 커피를 보는 안목을 넓히는 과정이다.

현장에서 값진 지식도 많이 얻는다. “책에서 봤던 것과 다른 게 너무 많더라고요. 상식을 뒤집는 것도요.” 실제로 커피가 유명하지 않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론상으로는 로부스타종 커피나무만 자랄 수 있는 해발 300m 지형에서 아라비카종 나무를 발견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서 비싼 값에 파는 ‘코피 루왁’(사향고양이에게 생두를 먹인 뒤 나온 배설물로 만든 커피)이 실제로 근처 섬 동티모르에서는 더러워 먹지 않는다는 것도 놀라웠다.


농장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아프리카의 현실도 알게 됐다. “아프리카 커피 농장의 아동 노동 착취를 많이들 이야기하잖아요. 실제 케냐에 가보니 유목민처럼 살더라고요. 착취라기보다는 부모 따라 커피 따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죠.” 그 뒤로 그는 직거래를 하는 농장을 찾을 때마다 놀이터·화장실을 지어주고 태권도 공연, 하모니카·축구공 선물 등을 준비해 가고 있다.

최근 그는 과테말라·엘살바도르·콜롬비아 등을 많이 찾는다. 질 좋고 새로운 커피를 들여오려면 쉴 틈이 없다. “최고의 커피는 과테말라 우에우에테낭고의 인헤르토 농장에서 난 커피예요. 진짜 세계 최고죠.” 처음 콜롬비아에 갔을 때 은행원에게 속아 돈 털리고 목숨을 빼앗길 뻔한 아찔한 경험도 했지만, 좋은 커피를 들여올 때는 잊게 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죠. 지금은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 할 거 같네요.”

그는 ‘커피는 거울’이라고 했다. “커피에는 그 대륙의 기질이 그대로 녹아 있어요. 맛에도 그 기질이 녹아 있거든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커피 문화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많다. “제가 한 10여년 전에는 ‘커피는 터미널 같다’고 했었어요. 소통의 공간이라는 거죠. 그런데 이제는 문화가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아요. 커피의 소비 과정 가운데 스스로 해먹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게다가 공급자 중심의 ‘빨리빨리’ 문화가 담겨 있죠. 마시는 사람이 고르고 느끼는 소통의 커피가 되는 게 진정한 커피의 문화 아닐까요?”


2009년 11월 김용덕씨가 찾았던 케냐 니에리 커피 농장에서 지역 주민이 커피를 수확하고 있다. 김용덕 제공.

산지에서 ‘커피의 진실’에 눈뜨다

21년차 은행원에서 국내에서 손꼽히는 커피 전문업체 사장으로. 강원 강릉에 커피 전문점 여러 곳을 운영하는 김용덕(53·사진) 테라로사 대표는 스스로 “커피 덕분에 나 자신을 새로 발견했다”고 말할 정도로 커피와 함께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주인공이다.

그의 커피 입문기는 그 누구보다도 치밀하다. 커피를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었던 11년 전, 커피를 보는 안목을 키우려고 와인 소믈리에 과정에 뛰어들었다. 맛의 심미안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근사한 커피 매장 인테리어를 위해 42살에 대학교 건축학과에 학사 편입까지 했던 그는 ‘해박한 사장님’으로 통한다.

그가 처음 커피 산지를 찾게 된 데에는 환경적인 이유가 컸다. “2006년 서울에 진출해 청담동에 매장을 냈었어요. 하지만 금방 문을 닫았죠. 게다가 엔화가 치솟고, 에티오피아 커피에서는 농약이 검출돼 커피 들여오는 데 어려움이 컸었죠.” 직접 좋은 커피를 구해와야겠다고 시작한 산지 방문이 ‘커피의 진실’에 눈을 뜨는 것으로 이어진 건 한참 뒤였다. “인도네시아 등 산지를 다녀온 뒤 일본에서 커피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아, 이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과정만 1년이 걸렸습니다.”


김용덕 (53) 테라로사 대표
아프리카·중남미·아시아 등 커피 산지를 돌아다니다 보니, 국내에는 좋은 커피 맛을 고르는 안목을 가진 이가 없어 제값에 커피를 들여오지 못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커피를 처음 배울 때, ‘인도네시아 만델링 지역의 커피가 커피의 왕이고 에티오피아 하라르 지역 커피가 커피의 여왕’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실제로 현지에 가보니 많이 다르더라고요. 그저 입소문에 의존해서 그랬던 거죠.” 과테말라 커피 농장은 주로 산비탈에 자리잡고 있는데, 고도가 조금만 높아도 수확일이 달라 맛도 달랐다. 브라질은 나라 안에서도 수확일이 한 달 가까이 차이가 났다. “국내에는 인도네시아 커피가 바디감(입안을 가득 채우는 진한 느낌)이 있다고 알려져 있죠. 사실 그 이유는 공정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수마트라섬에는 커피 과육을 까지 않고 삭히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죠. 그 과정에서 낀 이물질의 맛을 우리는 바디감으로 느끼는 거죠.” 커피 산지를 보지 않고는 풀리지 않던 의문들이었다.

그는 에티오피아 커피를 가장 좋아한다. “에티오피아에 가면 고향에 온 거 같아요. 제 어릴 적 같은 척박함에 대한 연민이 생기죠.” 산지를 갈 때는 현지 커피 농업 학자와 거의 동행을 한다. 엘살바도르·과테말라에서는 강도에게 납치당할 우려가 있어서 무장 경호원과 함께 산지를 찾는 경우도 있다.

그는 우리나라 산지 전문가들도 국제적인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커피 산지에 가도 안목이 없으면 안 되죠.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커핑’(커피 맛을 감별하는 것) 실력이 있어야 하고요. 외국어도 잘해야 하죠.” 이 때문에 그는 스스로 산지 전문가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가 커피 전문가로 입문을 도와줘 국내 최초로 ‘컵 오브 엑설런스’(세계적인 커피 감별 대회) 챔피언에 오른 이윤선(36) 부사장이 더 전문가라고 말했다. 실제로 테라로사 직원들에게도 “세계 수준이 되어야 한다”며 끊임없이 공부할 것을 주문한다.

그의 꿈도 국제 기준에 맞춰져 있다. “최소 3년, 최대 5년 안에 미국 유명 커피 업체인 ‘인텔리젠시아’를 이기는 게 목표입니다. 프랑스 파리에 매장을 내는 것도 꿈이지요.”


지난해 11월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에 비니엄 홍이 운영하고 있는 커피 농장에서 함께 커피 농사를 짓는 지역 주민들이 커피체리를 들고 웃음을 짓고 있다. 비니엄 홍 제공.
아프리카 커피에서 열정을 찾다

“에티오피아는 정말 매력적인 곳이죠. 이곳 커피도 알면 알수록 끝이 없어요.”

비니엄 홍(한국 이름 홍대길 48·사진)의 ‘아프리카 예찬론’은 줄기차게 이어졌다. 서울 도곡동에 커피연구소 겸 강의 공간인 ‘비니엄 인 아프리카’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실제로 한 해의 반은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예가체프)의 커피 농장에 머문다. 종합상사 직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2007년 홀연히 커피 성지 순례를 떠났다. “남에게 구속받지 않고 나이 들수록 존경받을 수 있는 직업을 택하자”던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루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커피 산지를 헤매고 다닌 그가 이제는 국내 유일의 아프리카 커피 산지 전문가가 됐다.

그의 첫 여정은 마치 영화 같다. 그만큼 순탄치 않았다. “무작정 중동 두바이로 가서 오만, 예멘을 버스로 이동하는 길을 떠났죠. 현지 한인들은 모두 미쳤다고 말렸었는데.” 원래 방랑기 넘쳤던 그는 “이왕 커피에 인생 거는 거, 현지에 가서 배우자”는 생각으로 짐을 꾸렸다.


비니엄 홍 (한국 이름 홍대길·48)
밤새 달려 국경을 넘어 들른 예멘 시밤에서는 거지 300명한테 둘러싸였고, 청해부대의 배가 머물렀다던 아덴을 거쳐 모카항까지 내려온 그는 낙타·양을 가득 태운 소말리아 배를 얻어타고 아프리카 대륙을 향하며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기도 했다.

“2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해서 깍두기·생태탕을 아예 동영상으로 찍어 왔죠. 먹고 싶을 때 보려고요.” 어려웠던 여행길이었지만, 디레다와에서 만난 에티오피아 은행의 한 지점장한테서 에티오피아 정부가 최초로 석달짜리 커피 감별사 양성과정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각 산지의 대학교수, 유지들 등 23명이 참여하는 절호의 기회였다. 외국인이라고 입학 허가가 나지 않자, 6시간 동안 에티오피아 농림부 장관 사무실 앞에서 기다려 허락을 받아내기까지 했다.

그의 여행은 유럽·남아메리카로 이어졌다. 케냐·탄자니아·우간다를 방문하면서 커피 감별사 양성과정을 거쳤으며, 유럽 이탈리아에서도 배웠다. 산지에서 좋은 커피를 찾으려면 맛 감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비판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우려고 유럽에서 일리·라바차·타차도로 등 유명한 커피 업체의 공장을 둘러봤다. 브라질에서는 바리스타, 라테 아트 과정을 배웠다. 아르헨티나, 페루, 콜롬비아의 보고타를 지나 나리뇨에서는 길 한복판에서 반군을 만나 여정을 접기도 했다.

긴 여행 끝에 그는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페 코케 지역에서 커피 농사를 짓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름도 현지인들이 부르기 쉽게 2007년 ‘비니엄’(Beaniam)으로 바꿨다. 에티오피아 공용어인 암하라어로 ‘벤자민’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철수’만큼 흔한 이름이다.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440㎞를 가면 케냐 국경과 맞닿은 곳에 이르가체페가 있다.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는 이곳에서 25년 동안 땅을 빌려 커피를 기르게 됐죠. 이르가체페는 ‘비옥한 땅을 보존하라’는 뜻이에요. 2~3년 전부터 제가 국내에 소개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이르가체페 지역 31개 생산지의 커피 맛을 세분화해 소개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처음 3년 동안은 따가운 눈초리를 받았던 그는 이제는 현지 아이들에게 교실을 짓고, 영화를 틀어주면서 이방인이 아닌 에티오피아 이웃이 되어가고 있다. “동네 사람들한테 얘기해요. ‘커피 이즈 마이 블러드’(커피는 내 피다)라고요. 커피를 향한 제 열정을 알아주었으면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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