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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8.01 18:13 수정 : 2012.08.03 16:12

연구소에서 시베리아허스키를 키우는 명호-장지영씨 부부. 매일 헤어지지 않고 함께 지낼 수 있는 마당있는 집이 꿈이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서울에서 진돗개·시베리아허스키 키우는 사람들의 애환…마당 있는 주택이 꿈

서울 마포구 주택가에 자리잡은 생태지평연구소 대문에는 “큰 개 조심” 종이가 붙어 있다. 문을 열자 송아지만한 시베리아허스키가 달려들었다. 보호자 장지영씨는 “순해서 물지는 않아요”라며 껑충 뛰어오르는 ‘큰 개’를 진정시켰다.

20년 전만 해도 그냥 ‘개조심’이었다. ‘도선생’은 들어올 생각도 말라는 의미다. 오히려 개도둑을 부르는 역할을 했지만. 2012년 현재 개를 길러도 ‘개조심’ 표지를 쓰지 않는다. 소형견이 천하통일한 마당, 개는 더이상 집지킴이가 아니라 식구와 다름없는 ‘반려’가 됐다는 방증이다. 개는 개가 아니다. 큰 개만 개다. 그것도 손님이 놀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달리 표기할 방법이 없어서다.

장씨가 워시를 데려오기는 2009년 2월, 3개월 새끼 때다. 워시의 고향은 지리산, 장씨의 집은 서대문의 연립주택. 멋모르고 데려온 워시는 장씨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다.

새끼때 데려온 시베리아허스키
개털과 짖는 문제로 항의
대중교통에서도 배척

워시를 키우는 것은 장씨의 몫이었다. 남편은 긴 출장으로 집을 비우기 일쑤. 시장바구니에 워시를 담아 지하철 또는 버스를 타고 연구소로 출퇴근했다. 아침 일찍 나와 저녁 늦게 귀가하니 이웃과 마주칠 일이 없었다. 어느 날 1층 새댁이 3층 장씨 집으로 올라왔다.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데, 집 안에 개털이 들어와 곤란하다며 어떻게 해 달라고 말했다. 개를 키우는 걸 모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털갈이 때 빠지는 터럭은 하루 한차례 오르내리는 계단에도 표를 낼 만큼 양이 많았다. 워시는 급속하게 자랐고 이웃한테서도 대중교통에서도 배척당했다. 집에 가지 못하고 연구소에서 잠을 자는 일이 잦아졌다.

그해 말 갑자기 임차한 사무실을 비워달랬다. 워시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 발품을 팔았다. 일순위 고려 대상은 마당 있는 집. 겨우 찾아낸 곳이 지금의 주택이다. 연구실로 2층을 쓰면서 좁기는 하지만 1층 마당을 거느리는 조건이다. 두말 않고 계약서를 썼다. 그때부터 워시와 낮 동안 함께 지내고 밤이면 헤어지는 연습을 했다.

부부가 함께 출장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울 때가 문제였다. 워시를 맡길 곳을 찾았다. 인터넷을 뒤져 찾아낸 곳이 강원도 횡성의 애견위탁소. 이용 후기를 보고 운영자와 통화를 한 끝에 멀기는 해도 믿고 맡길 만하다고 보았다. 산골이라 마음놓고 짖어도 상관없었다. 다른 무리와 뒤섞여 서열다툼을 벌이며 야생성이 살아났다. 연구소로 데려오면 팔팔해진 성격을 눅여야 했다. 풀었다 죄었다, 그렇게 4년을 되풀이했다. 못할 짓이다.

작년 여름, 여느 날처럼 워시를 두고 퇴근을 했다가 출근한 아침. 옆집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잠 설친 눈으로 찾아왔다. 개에 대해 ‘근본적인 조처’를 요구했다. 전날 밤 천둥번개가 무척 심했다. 생판 처음 보는 낯선 자연현상에 워시가 엄청 짖었던 모양이다. 게스트들의 불평이 속출하자 옆집 주인은 연구소 문을 두드렸다. 개가 짖지 않도록 해달라고. 빈집에 반응이 있을 리 만무. 개한테 조용히 하라고 윽박지르고 돌아갈 수밖에. 장씨는 무조건 미안하다고 사죄했다. 개를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 전기충격기와 향 분사기 사이에서 고민했다. 컹컹 짖을 때마다 전기충격기는 찌릿 전기를 통하고, 향 분사기는 자극적인 액체를 뿜어 짖지 못하도록 하는 것. 충격기는 일종의 전기고문. 차마 손이 가지 않았다. 이후 장씨는 퇴근할 때마다 분사기를 채웠고, 워시는 컹컹-칙칙 어김없는 대응에 분사기를 차는 동안은 짖으면 안 된다는 걸 체득했다. 영리한 개는 다른 방법을 찾아냈다. 컹컹 소리 대신 가늘고 긴 우우~ 하울링으로 향 분사를 피하면서 의사를 표현하는 것. 이웃들은 귀신 나올 것 같다며 그조차 싫어했다. 컹컹이나 우우나 개 자체가 마뜩잖은 것이다.

워시를 키우면서 변한 게 있다. 차가 생겼다. 환경운동을 하는데다 굳이 필요를 못 느끼다가 워시를 마냥 묶어두는 게 미안했다. 남의 차 조수석에서 꾸벅꾸벅 졸기 일쑤고 지청구를 들어도 무심하던 남편이 운전면허를 땄다. 지방출장 때는 손수운전에다 워시를 동반한다. 그리고 부부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차례 함께외출을 한다. 주로 일요일 오후 4~5시, 한강 둔치. 갇혀 지내 운동이 부족한 워시의 비만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가양대교 아래쪽 사람 드문 풀밭에서 워시는 노루처럼 뛰고 부부는 그 김에 치였던 일에서 헤어나 숨통을 틔운다.

최근에는 김포 어름에 집을 알아보고 있다. 매일 헤어지지 않고 워시와 함께 살, 아무리 짖어도 뭐라 할 이웃이 없는, 워시가 마음놓고 뛰어놀 마당이 있는 집이다. 언젠가 옮겨갈 것이다.

서울 충무로1가 카페개네 명동점에서 키우는 개들
다른 개와 으르렁거리는 진돗개
산책도 새벽이나 늦은 밤에만
어색해진 이웃만 여럿

송파구에서 ‘진순이’라는 이름의 진돗개를 키우는 임아무개씨 역시 마당 있는 집이 꿈이다. 5년 전 지방에서 단독주택 같은 아파트에 살다가 상경하면서 이곳 아파트로 옮겨왔다. 바로 산 밑인 점이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들어와야 하는 불편함을 이겼다. 11층과 3층 가운데서 두말없이 3층을 골랐다. 지상과 가까워 짧은 시간 안에 밖으로 나갈 수 있고, 계단을 이용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 집 안에서 절대로 볼일을 보지 않는 진순이를 위해서다.

이사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스물네 가구를 오르내리며 떡을 돌렸다. 개를 키우는 집의 이사 턱이다. 혹시 마주치더라도 놀라지 말라, 순해서 사람을 물지 않으니 걱정 말라고 일렀다. 엘리베이터는 특별한 때를 빼곤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는 인기척과 앞뒤 거리를 두어 이웃과 마주치지 않도록 한다.

쉬를 보일 겸 산책 나갈 때도 조심스럽다. 시간도 남들이 깨지 않은 새벽이나 식사를 하는 정오, 마감뉴스를 보는 밤 11시 무렵이다. 산책길에서는 사람이라도 마주치면 행여 놀랄까 줄을 바투 잡고, 동반한 개가 있으면 진순이 겨드랑이를 안는다. 흥분해서 무슨 일을 벌이기 전에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힘이 장사인 진순이를 두어 번 백허그 하고 나면 온몸이 땀범벅이 된다.

상대편 개가 줄을 매고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풀어놓은 작은 개가 반갑다고 달려들면 대책이 없다. 아파트 생활 5년여 동안 이웃 개를 물어 위로금으로 나간 돈이 50만원이다. 돈도 돈이지만 개 때문에 어색하게 된 이웃이 여덟 집이나 된다. 어색함은 진순이가 물어뜯은 상처의 깊이에 비례한다. 산책을 가도 어떤 집 앞은 에둘러 간다. 그런 탓에 지금도 줄 안 매고 개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제일 밉다.

진순이의 뛰어난 사냥 감각이 쓸모없어 아깝다. 이웃집 개나 고양이, 새, 청설모 따위에 귀를 곤두세우고 한밤중 가로등 주변에 몰리는 꼽등이를 잡는 데 소비될 뿐이다. 언젠가 진순이가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다. 진순이가 편한 곳이면 사람한테도 살기 좋은 곳이지 싶다.

글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사진 박미향 기자 mh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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