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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개념 만화방의 원조인 ‘즐거운 작당’.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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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신개념 만화방 시대
20대 여성·데이트족이 많이 찾는 카페풍 신개념 만화방 인기
뿌연 담배 연기, 어둑한 불빛, 흐트러진 라면 그릇, 퀴퀴한 냄새…. 중장년층이 만화방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다. 하지만 지금 20대들에게 만화방은 세련된 문화공간이다. 알록달록한 카페풍의 신개념 만화방들이 젊은이의 거리인 서울 홍대 앞, 강남 등에 하나둘 생겨나고 있다. 웹툰이 등장한 2000년대 이후 거의 자취를 감춰 추억의 공간이 된 만화방이 이제 20대들의 놀이터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아저씨들이 없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만화방 ‘딩굴딩굴 알타미라’(이하 딩굴딩굴). 벽면에는 2만권이 넘는 만화가 가득하다. 1980년대 만화방의 단골인 ‘아저씨’는 찾아볼 수 없다. 미간을 찌푸렸다 폈다 하며 만화책 <신과 함께>를 넘기고 있는 김진아씨는 26살 직장인이다. “옛날 만화방하고 달라서 색다르고 좋다”는 김씨의 말에 옆에 앉은 한살 어린 직장 동료도 “옳소” 하고 맞장구친다. 다락방 같은 작은 방은 전희진(28)씨와 그의 여자친구 차지다. 전씨는 데이트 코스로 이곳을 선택했다. 여자친구와 나란히 누워 웹툰 단행본 <오늘밤은 어둠이 무서워요>를 펼쳐 들었다. 팔베개도 하고 주문한 볶음밥을 나눠 먹으며 까르르 웃음꽃을 피운다. 그는 “1만원대로 데이트 비용을 해결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이곳 이용료는 1인당 70분에 3000원, 이후 10분당 500원씩 추가된다. 딩굴딩굴 인근 만화방 ‘청춘문화싸롱’을 찾은 스무살 동갑내기 강태석·김예진씨는 4시간째 한자리다. “전에는 데이트로 청계천도 걷고 영화도 봤는데 이제는 다 지겨워졌다”며 “이곳은 카페와 별반 다르지 않아 좋다”고 말한다.
딩굴딩굴의 주인 임동현(38)씨는 “손님의 80%가 20대 여성이나 데이트족”이라고 한다. 주말에는 10~20분 정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다. 여성이 주고객층이라 해서 순정만화가 가장 인기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오산이다. 임씨는 “요즘은 구분이 없다. 여성들이 오히려 액션, 스포츠 만화를 더 찾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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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장소로 인기 많은 ‘딩굴딩굴 알타미라’.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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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자취 감췄다가
알록달록 세련된 문화공간으로 부활
간식도 색다른 메뉴로 업그레이드 만화‘방’ 안에 ‘방’이 또 있다! 언뜻 시설 좋은 도서관처럼 보이는 즐거운 작당을 둘러보다 “오호!” 하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왔다. 책들이 빽빽이 꽂힌 서가 사이에 자리한, 한평도 안 돼 보이는 방들과 시골 외할머니댁 대청마루 같은 공간 때문이다. 직장인 박찬희(29)씨는 방에 콕 박혀 있다. 그야말로 ‘방콕 휴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아늑한 방에서 유일한 친구는 열권 넘는 만화책이다. 그는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독립적으로 가질 수 있어 좋다”며 “하루 이틀, 짧은 휴가를 여기서 보내고 나면 힐링이 된다”고 한다. 직장인 이소연(25)씨도 지난달 30일 하루 휴가지로 이곳을 선택했다. 그는 지난 여름휴가도 이곳에서 보냈다. “다리 쭉 뻗고 앉을 수 있는 대청마루 같은 공간이 없었다면 찾지 않았을 것”이라는 그는 1주일에 2번 이상 직장 동료들과 맥주 한잔 하는 대신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이씨를 따라온 직장 동료 현예진(25)씨는 “담요를 덮고 방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고 말한다. 상 5개를 펼쳐놓은 즐거운 작당의 대청마루는 만석이다. 마루 반대편 계단을 오르면 빼곡한 책들 옆에 작은 방이 또 있다. 대청마루에서도 들머리에서도 이 방을 볼 수 없다. 미로를 여행하듯 찾아 들어가야 발견할 수 있다. 20대 여성 둘이 벽에 등짝을 붙인 채 만화책과 수다를 즐기며 나른한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 신사동 섬의 방은 이층침대를 닮았다. 아래층과 위층이 붙었으면서도 독립돼 있다. 이층침대 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홀도 커다란 방처럼 꾸며져 있다. 폭 파묻히는 1인용 빈백소파 8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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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문화싸롱’의 아파트형 방.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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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만화카페’는 흰색과 푸른색으로 밝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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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작당’에는 <심야식당>에 등장했던 명란버터라이스가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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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문화싸롱’의 비만세트(비빔면+만두).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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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굴딩굴 알타미라’의 볶음밥. 사진 박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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